돌아보면 두 아이를 낳고 희은이를 입양해서 세 아이를 키운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더 많은 아이를 입양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내가 아이 하나 입양했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마는, 입양된 아이의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희은이를 입양하기까지의 과정과 아이를 키우면서 좌충우돌한 경험을 솔직하게 적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기에 얼마나 부적합한 사람인지,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그대로 표현했다. “좋은 일 하셨네요. 훌륭하십니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이고 싶었다.
--- 「들어가는 글」중에서
그렇다면 입양을 하자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작정 한 입양 기관에 전화를 했다. 내 몸 상태가 이러저러한데 입양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쪽에서 내 건강을 문제 삼아 거절해 준다면 아주 가뿐하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상담사는 상냥하게 답변을 했다. “어머니, 그런 상황에서도 두 아이를 낳아 키우셨으니 입양하는 데 건강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1장. 희은이를 만나기까지」중에서
입양은 출산과는 분명 다르다. 내가 낳은 아이는 아무래도 나와 남편의 유전적 특징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희은이는 자기가 언니들만큼 키가 크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생모의 키가 크지 않다는 입양 기관의 기록을 보았기 때문이다. 입양아는 친생자와 달리 낳아 준 부모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우리가 가족으로 사는 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희은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알고 있다. 입양 가족이어서 더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순간 저절로 마법 같은 힘이 생겨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 안에서 한 아이가 안전하게 또 안정적으로 성장하여 건강한 성인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감사하고 족할 따름이다.
--- 「2장. 선택과 운명 사이에서」중에서
“근데 엄마, 진짜 웃긴 질문이 뭐냐면요, 애들이 ‘그 엄마가 너를 사랑해 줘?’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얘들아, 집에서 나는 막내야. 막내가 제일 사랑받는 거야. 그리고 사랑해 주려고 입양하는 건데 당연히 사랑해 주지, 안 사랑하겠어?”
--- 「3장. 두려움을 내쫓는 사랑」중에서
내가 낳은 아이가 아무래도 더 예쁘지 않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디서도 이런 이야기는 못 들어 보셨을 텐데요. 저는 단연코 제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제일 좋아요. 내가 낳은 아이든 입양한 아이든, 제 말을 안 듣거나 심하게 고집을 피우면 끌리기는커녕 외계인을 보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희은이는 입양을 했어도 저와 성향이 비슷해요. 그래서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어요. 저는 피에 마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의미 없는 수다를 떠는 시간을 포함해서 일상을 함께하면서 세월을 쌓아 가죠. 그렇게 친해진다고 생각해요. 양질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추억이 없는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면 그것만큼 힘든 관계가 있을까요?
--- 「4장. 입양, 묻고 답하다」중에서
출산을 하든 입양을 하든 그건 각자가 선택할 몫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한다. 또한 모름지기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을 잘 양육할 사명을 받은 청지기들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와 아이를 얻지 못한 부부가 만난다면, 그들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이 말한 것처럼 서로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한국전쟁 후 60년이 넘도록 우리 정부는 해외 입양을 민간 기관에 위탁해 왔다. 2012년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면서 비로소 법원 허가를 받아야 입양이 가능하도록 절차가 바뀌었고, 친생부모를 찾는 해외 입양인이 늘면서 입양인들의 알 권리에 대한 논의도 많아졌다. 한 해 7-8천 명이 해외로 입양되었던 1980년대를 지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2천 명 이상이 해외로 입양돼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입었던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과오로 당분간 우리 사회는 예상하지 못했던 진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5장. 얽히고설킨 실타래, 어떻게 풀까」중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우리 부부는 아이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타고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입양한 아이 역시 그러하리라 예상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내 마음에 쏙 들게 살아 주지 않는다는 점도 배웠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엄마인 나는 실패도 했으나 나 자신을 많이 돌아봄으로써 다행히 성장도 했다.
--- 「6장.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가족」중에서
희은이 네가 아빠교 교주였던 거 기억나? 네가 다섯 살 때였지. 차를 타고 가다가 엄마랑 언니들이 아빠 과속한다고 난리 부릴 때 희은이가 배에 힘 딱 주고 “나도 무서운데 참고 있거든!” 이렇게 한마디 해서 평정시켜 준 것, 아직도 고맙게 생각해. 3학년 때 쓴 글에서 “아빠는 내 애교면 뭐든지 다 해 준다”고 한 것, 까미 산책시킬 때 제일 기쁘게 따라나선 것 모두 고마워. 자전거 좋아하는 아빠 따라 한강에 제일 많이 간 사람도 희은이고, 몇 년 전 어린이날에는 무려 40킬로미터를 꿋꿋하게 달려서 아빠를 놀라게 했지. 희은이 자전거가 아빠 것보다 무거웠는데도 말이야. 그런 희은이를 아빠는 사랑해.
그런데 아빠가 고백할 게 있어. 네가 아빠랑 데이트할 때면 아빠 손 잡고 재잘재잘 네 이야기를 풀어놓잖아? 운동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친구들이랑 있었던 짜증 나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니 아빠가 이해는 해.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네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때도 많았어. 그때는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고백한다.
--- 「희은이에게 띄우는 아빠의 편지」중에서
이 책에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나눈 대화들이 나온다. 엄마가 그걸 다 기억하고 기록해 두었다가 글을 썼다는 것이 약간 감동적이다. 내가 3학년 때 쓴 “우리 가족”이라는 글도 나오는데 거기에 “엄마와는 다르게 아빠는 단점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아빠도 엄마 못지않게 단점이 많다”로 정정한다. 엄마의 책이기 때문에 내가 길게 쓰지 않으려고 한다. 입양에 대한 저의 이야기 2탄이 궁금하다면 따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이 책의 주인공 희은이입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