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엔 군사적 침공은 인류에 대한 범죄로 정의되며, 그 문제가 심판의 대상이 될 경우 국제재판소들은 보통 침략자들에게 배상을 요구한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이라크는 1990년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배상금을 지금도 쿠웨이트에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다가스카르와 볼리비아, 필리핀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는 그와 정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제3세계의 채무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때 유럽 국가들의 공격을 받았거나 점령당한 국가들이다. 부채는 승리자의 정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승리를 해서는 곤란한 승리자를 처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아이티의 역사이다. 부채상환의 짐을 영구히 져야 했던 첫 빈국이 바로 아이티이지 않는가. 아이티는 옛 플랜테이션의 노예들이 세운 나라였다. 이 노예들은 보편적 권리와 자유의 선언이 나오는 가운데 반란을 일으킬 용기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다시 속박하기 위해 파병된 나폴레옹 군대를 격퇴한 결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1980년대를 시작으로, 제3세계 부채상환에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던 미국이 제3세계의 부채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부채를 쌓았다. 주로 군사비 지출의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이 부채는 상환하지 않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문이미지
1694년에 영국 금융가들의 컨소시엄은 120만 파운드를 왕에게 융자해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독점권을 얻었다. 그 독점권의 실제 의미는 그 금융가들이 국왕이 자신들에게 진 빚의 일정 부분에 대한 차용증서를 왕국 내 거주자들에게 빌려줄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새로 생긴 왕실의 부채를 화폐로 만든 것이다. 그 금융가들에게는 대단한 거래였다(그들은 왕에게 원금에 대해 매년 8%의 이자를 물리고 동시에 그 차용증서를 빌려간 고객들에게도 이자를 물렸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원래의 융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작동할 수 있었다. 이날까지, 이 융자는 상환되지 않았다. 아니 상환될 수 없는 융자였다---본문이미지
문제는 경제학이 오늘날 사회과학 분야에서 아주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도 있다. 경제학은 여러 면에서 일종의 지배적 학문으로 대접받고 있다. 미국에서 중요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면 으레 경제이론을 공부했거나 적어도 경제학의 기본에는 훤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 결과 경제학의 기본원칙들이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당연한 지혜로 대접받기에 이르렀다(어떤 원칙이 당연한 지혜로 받아들여질 경우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사람들은 그저 그 의문을 무시하려 든다. “당신은 ‘래퍼 곡선’(Laffer Curve:세율과 조세수입의 관계를 보여주는 곡선)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것 같군요.” “경제학원론 강의를 들으실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경제학의 이론들이 너무나 명백한 진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어떤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무척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과학적 지위”까지 주장하는 사회이론들, 예를 들어 “합리적 선택이론” 같은 것들은 인간심리에 관한 터무니없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인간 존재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계산하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행위자들이라는 전제가 그 이론들의 바탕에도 깔려 있는 것이다. 최저의 희생이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이나 쾌락, 행복을 챙기는 것이 인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실험 심리학자들이 거듭 실험을 통해 이 전제가 틀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정말 흥미로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본문이미지
경제이론에서는 모든 인간의 상호작용은 종국적으로 비즈니스 거래이며,또 우리 모두는 최소의 노력이나 비용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자유시장 경제이론가를 값비싼 만찬에 초대할 경우 그 경제학자가 나에게 빚을 진 데 대해 불편해 하면서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누렸는데도 말이다. ---본문이미지
어떤 사회가 진정 얼마나 평등한 사회인지를 판단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단지 재분배의 도관인지, 아니면 지위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지를 확인하면된다.---본문이미지
우리는 관료주의적 개입을, 특히 독점과 규제를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제한으로 보는 데 익숙해 있다. 물론 시장을 저절로 탄생한준 자연적인 현상으로, 정부를 시장을 짓누르거나 빨아먹는 일 외에 다른 역할이 없는 조직으로 보는 편견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시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점을 누차 지적했다. 중국이 놀라운 예를 제시하고 있다. 유교 국가라면 아마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가장 오래된 관료조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조직이 실제로는 시장을 촉진시켰으며, 그 결과 중국의 경제활동은 곧 세계의 어느 곳보다 훨씬 더 세련되었고 시장도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유교 이념이 상인들에게,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동기 자체에 공개적으로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업적 이익은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만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다.말하자면 상인들이 재화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시키고 받는 대가만 정당했다는 뜻이다. 투기의 과실은 절대로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는 중국이 실제로 친시장, 반자본주의 정책을 취했다는 의미이다.---본문이미지
이슬람권의 일부 이야기들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신의 섭리의 손이기도 하다)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스미스가 제시한 구체적인 주장과 예들 중 많은 것들이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페르시아의 경제논문까지 직접 닿는다. 예를 들어 보자. 교환은 인간의 합리성과 언어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주장은 가잘리(Ghazali)(1058-1111)와 투시(Tusi)(1201-1274)의 글에 이미 담겨 있었다. 가잘리와 투시는 똑같은 예를 들었다. 개 두 마리가 뼈를 교환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더극적인 부분이 있다. 스미스가 분업의 예로 든 것은 핀 공장이었다. 핀하나를 생산하려면 18가지 작업을 별도로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예도 가잘리의 『종교학의 소생』(Ihya Ulum-id-din)에 이미 나타난다. 이 책에는 바늘 공장이 예로 제시되며, 바늘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25가지 작업을 거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본문이미지
자본주의와 결부시키는 금융조직의 거의 모든 요소들, 즉 중앙은행과 채권시장, 공매도, 증권거래소, 투기 버블, 증권화, 연금 등이 경제학뿐만 아니라 법인과 공장, 임금노동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 같다. 이는 우리의 사고에 그야말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공장과 일터를 “진짜 경제”로 생각한다. 그 나머지는 그 위에 세워진 ‘상부구조’로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상부구조가 먼저 생길 수 있는가?---본문이미지
미국 재무부 채권의 경우 낮은 이자율과 달러화 가치 하락이 함께 작용하며 차용증서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 가치하락 또한 세금이나 마찬가지다. 앞에서 내가 그것을 “공물”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제국적 권력은 상환할 필요가 전혀 없고 또 절대 상환될 수 없는 부채에 바탕을 두게 되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자국 국민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국가들도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약속이 되어버렸다.달러의 글로벌 지위는 1971년 이후 석유 수출입의 결제에 쓰이는 유일한 통화라는 사실에 크게 기인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이 달러 이외의 통화로 거래를 시도하다가 역시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강력한 저항에 번번이 실패했다. 사담 후세인이 2000년에 과감히 달러를 유로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이듬해 이란이 거기에 동참했다. 그 직후 미국의 폭격과 군사적 점령이 있었다. 달러를 버리려던 후세인의 결정이 그를 축출하려던 미국의 결정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를 알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노력을 펴고자 하는 나라는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특히 미국과 대결하는 국가들의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 공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본문이미지
“금융의 민주화”에서부터 “일상의 금융화”까지, 새로운 분배를 묘사하기 위한 용어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미국 밖에서는 “신자유주의”로 알려졌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는 시장만 아니라 자본주의(독자 여러분들에게 시장과 자본주의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고 싶다)도 거의 모든 것들의 조직원칙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하나의 작은 법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투자자와 회사 간부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그 법인으로 말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내면엔 은행가의 냉철한 수학이 있고 또 빚에 눌려 개인의 명예를 몽땅 팽개치고 일종의 기계로 변해버린 전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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