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각형의 뚜껑을 열자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락 한가운데 새까만 김으로 싼 삼각형 주먹밥 두 개. 주먹밥 주위로 한겨울이라 매우 값비쌌을 새빨간 딸기가 하트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순간 너무 창피했다. 다른 수험생들의 도시락을 슬쩍 보고는 곧바로 뚜껑을 덮어버린 기억이 난다. 집으로 돌아와서 도시락통을 후다닥 씻으며, 얄미운 아버지께 도시락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마도, ‘가고 싶은 대학의 시험이니까 먹기 쉬운 주먹밥이랑 딸기를 한 손으로 먹으면서 점심시간에도 마지막으로 점검하라’ 하는 뜻이었을 것이다. 값비싼 딸기는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응원가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점심시간의 충격 탓이었는지 그 여대 시험에는 떨어졌다.---pp.45~46, 「빨간 장미 도시락통」에서
벌써 4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도, 독일 햄과 하드롤빵을 보면 아직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 시절 남동생의 손을 잡고서 햄과 소시지를 샀던 내 모습까지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맛은 평생 잊히지 않는 법이다. (…) 내가 어릴 때 독일에서 맛본 햄과 소시지 맛을 잊을 수 없듯, 내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도 잊지 못할 맛을 간직한 채 자랄 것이다. 엄마로서 나의 역할은 미각을 깨우고 건강한 몸을 만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다. 음식에 대한 지식이나 환경, 식문화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아버지가 ‘먹는 것’과 관계된 직업에 종사했기에, 부모님은 음식에 대한 교육을 통해 어른으로 키우는 일을 남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엄마지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pp.69~71, 「그리운 햄」에서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께 크리스마스이브는 가장 바쁜 날이다.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이브 식탁에는 자리를 비운 아버지 대신 양쪽 다리를 붉은 리본으로 묶어 노릇노릇 구운, 특유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로스트 치킨이 커다란 은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남동생과 내가 먹을 로스트 치킨은 아무리 바빠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pp.80~81, 「크리스마스의 풍경」에서
아버지의 애플파이는 마법의 요리다. 바삭바삭한 겹겹의 파이로 감싼, 시나몬 향이 밴 사과조림의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플파이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애플파이를 대접하면 반드시 한 번 더 만들어달라는 소리를 듣는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본 집에 다녀오면서 이 애플파이를 싸온 적이 있다. 맛에 예민하지만 말수가 적어 요리에 대한 평가를 거의 하지 않는 시아버지께 선물로 드렸다. 시아버지가 이 파이를 드시고 “이런 맛은 태어나서 처음이구나. 또 먹고 싶다” 하시는 게 아닌가! 그 감상을 듣고 남편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후로 나는 일본에 가면 반드시 아버지의 애플파이를 소중히 싸 들고 온다.---p.93, 「마법의 애플파이」에서
그 당시 나는 현대사 속 동서 대립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동독 사람들과 만나는 것의 어려움 등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반대편의 독일’이 보고 싶어서 유학할 곳을 정했고, 나의 눈으로 본 동독이 나중에 취직 활동이나 대학원 시험에 도움이 되리라고만 생각했다. 함부르크 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독으로 한 걸음 들어서서 지금껏 본 적 없는 풍경을 마주하자, 앞으로 1년간의 유학 생활이 몹시 걱정되었다. 감정적으로 동독을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아, 이런 곳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식생활이 무엇보다 우선인 나에게는, 동독의 식료품 사정이 선배들이나 교수님들께 들었던 것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독일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먹을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식료품 배급제였던 동독에서는 매일 손에 넣을 수 있는 식재료가 한정되었던 것이다. 양파, 양배추, 감자, 고기, 햄과 소시지, 달걀, 버터, 우유, 사과, 빵, 동독 맥주밖에 없었다. 비타민 부족이 염려되는 식재료 배급이었다. 그때까지 가리는 음식이 조금은 있었지만 대부분 잘 먹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영양 밸런스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pp.127~128, 「낯선 나라, 달콤한 아펠쿠헨」에서
언제나 싱글벙글 미소 짓던 로사. 순수한 카탈루냐 사람이었던 로사. 로사가 쓰던 카탈란어카탈루냐 지방에서만 쓰이는 언어 발음은 공용어인 스페인어보다 드세어서, 외국인인 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리를 배울 때에도 절반도 못 알아들어 서로 미소만 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요리 교실에서 모두가 행복해하는 스페인 요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로사 덕분이다.---p.189, 「로사의 뚝배기 요리」에서
커다랗게 깍둑썰기 한 삼겹살이 젓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워지면, ‘사러가’에서 사 온 마주앙 화이트와인(지금처럼 세계 각국의 와인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과 맥주를 넣는다. 이때쯤이면 어제의 먹보들이 벨을 누른다. 화이트스튜의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을 볼이 미어지도록 먹으며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그렇지만 “아, 맛있다!” 하는 칭찬과 모두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지금도 떠오른다.---p.203, 「‘사러가’와의 인연」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새로운 요리를 접하면 ‘이 요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하고 궁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내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요리는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요리를 잘하게 된 이유는 집안 내력이라는 둥, 어릴 때부터 단련된 미각 덕분이라는 둥 여러 이야기를 듣지만, 사실은 내가 단순히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이 맛있다고 즐거워할 때나, 요리 교실에서 배운 음식을 집에서 만들었더니 가족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다. 왠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매번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요리의 즐거움 아닐까.---p.252,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에서
지금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꿈을 실현하자. 요리하는 행복, 누군가 내 요리를 먹는 행복을 앞으로도 계속 느낄 수 있다면 꿈은 실현될 것이다. 요리 교실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배우고, 만들고, 먹는 일.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맛있는 음식과 만난 행복을 맛보여주는 기쁨. 남편과 아이들이 나의 요리를 정신없이 먹을 때의 즐거움. 다섯 시간을 들여 묵묵히 만든 요리가 5분 만에 없어질 때. 이런 일들이 지금의 내게는 요리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
---p.261, 「행복을 맛보여주는 기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