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
노트 안에는 유미코 아줌마가 보호하고 있는 버림받은 개나 고양이의 사진과 그 동물이 어디서 어떤 식으로 구조됐는지 등의 경위와 특징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주실 분은 연락을…….” 하며 꼼꼼히 집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을 정도였다.
소위 일종의 ‘입양 부모 찾기 노트’라는 거겠지.
이런다고 버려진 동물을 키우겠다는 사람을 쉽게 찾을 리가 없잖아. 이딴 노트나 만들고 있는 걸 보면 시간이 썩어나는 거야……. --- p.11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히로무도 쭈뼛쭈뼛 다가와 고양이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 녀석…… 귀엽다.”
“응, 그러네. 쓰다듬어줘.”
“할퀴지 않으려나?”
“할퀼 기운이나 있겠냐?”
히로무는 고양이의 풍성한 회색빛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포근해…….”
그리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히로무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녀석, 왜 안 울지? 보통 쓰다듬으면 야옹, 하지 않아?” --- p.25
“그럼.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지? 여행을 보내면 한 아름 두 아름 더 성장한 내 자식이 돌아온다. 돈도 똑같아서 잘 키운 돈을 여행 보내면 잘 커서 돌아와. 장사라는 건 돈을 키우는 거나 마찬가지야. 네놈들한테 준 돈이 장사 목적은 아니라고 해도, 도둑맞아 없어진 돈은 아니지. 분명 어딘가에서 살아남겠지. 뭐, 내가 살아 있는 사이에 돌아올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한 세상 한 바퀴 죽 돌고 오게 하면 되는 거야.”
강렬한 눈으로 말하는 가도쿠라 씨에게서 말 그대로 ‘사장’다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p.45
3년 전, 후쿠시마에서 생이별한 반려동물 고양이를 찾고 있습니다. 한 눈이 불편한 검은 고양이로, 이름은 시로(シロ)라고 합니다. 피해를 입은 동물들이 전국 보호 단체에 나뉘어 보내졌다고 듣고, 여기에도 기록을 남깁니다. 혹시나 소식을 가지고 계신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 주세요. 0237-XXXX-XXXX 간호 시설 오페라 --- p.167
“고로, 나 있지……. 태어나길 잘한 걸까?”
히로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우리는 시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무엇을 망설인 것일까. 당연하지, 하고 왜 말해주지 못했을까. 히로무가 태어난 게 죄는 아니다. 나도 잘 안다.
--- p.219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것
질질 질질, 니코는 앞다리로 유미 쪽을 향해 기어갔다. 알에서 깨어난 아기 바다거북이가 모래밭을 헤쳐나가 바다로 향하듯 몇 번이고 다리가 미끄러지기를 거듭하면서도 앞으로 향했다. 오직 유미만을 향해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고 반짝임이 사라지는 일도 없다. --- p.29
소파에 엎드려 있던 메르가 자기 이름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아주 좋아하는 유토 모습이 비치고 있는 듯했다. --- p.47
나는 2년 동안 여러 가지를 배웠어. 처음 왔을 때는 시마 누나나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 반항만 했지. 밥도 안 먹고 방구석에 숨어서 가만히 있었어. 시마 누나랑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온 힘을 다해 돌봐주었고 난 여기가 무서운 곳이 아니라는 걸 겨우 알게 되었지. --- p.115
“다무라 씨, 오늘 있었던 일 너무 신경 쓰지 마. 미키도 그런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말하자면 ‘다무라 씨는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데도 남들이 몰라줘서 손해 보는 것 같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니까. 그래서 곁에서 보기 안타깝다, 그런 말이야.” --- p.136
데루코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토이 푸들인 푸린이 가장 좋아하던 담요. 하지만 담요 위에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어야만 할 푸린은 이제 곁에 없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광경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 p.178
이제 그만 울어요.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방긋 웃어요.
그러면 우리도 기뻐져요.
그리고 언젠가 꼭 우리를 마중 나와주세요.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천천히 해도 돼요.
우리는 언제까지나 재밌게 싸우지 않고 지내고 있을게요.
---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