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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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256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39674 |
ISBN10 | 8937439670 |
발행일 | 2019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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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256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39674 |
ISBN10 | 8937439670 |
문(門) 이야기 하이드 씨를 찾아서 지킬 박사는 여유 만만 커루 살인 사건 편지 사건 래년 박사와 관련한 특이한 사건 창가의 사건 마지막 밤 래년 박사의 편지 사건 전모에 대한 헨리 지킬의 진술 옮긴이의 글: 점잔 떠는 사회의 ‘위선’을 고발하다 |
20대 초반 삶의 방향을 두고 고민하던 시절, 나는 나의 이중적 성격과 많이 싸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항상 게으름, 나태, 오만, 낙천이 이겼다. 물론 그것들이 이기기까지 마음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속 갈등의 치열함이 승부의 결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었다. 갈등은 치열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단순했다.
당시 머릿속에 떠돌던 것이 있었다. 나의 이중적 삼중적 자아를 드러내는 무엇, 내 속에서 나를 시끄럽게 하는 무언가. 내 속의 또 다른 나의 목소리, 먼저 튀어나오는 생각의 주인공이 나인지 저 뒤에 침묵하는 내가 나인지, 그래서 이기는 내가 나인지 지는 내가 나인지 몰랐던 시절에, 나는 항상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무수한 나와의 싸움을 겪으며 그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30대의 중 후반 어느 시점에, 여전히 복잡한 나를 그대로 표현해 주는 노래가 들려왔고, 그것이 조성모가 리메이크해서 부른, <가시나무 새>였다. 입 안에서 맴돌던 무수히 많은 나를 가지런하게 표현한 노랫말에 화가 났다. 솔직히 말하면 질투가 났다.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느새 노랫말로 가져다 썼는지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한참을 입안에서 맴돌던 노래였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무지했던 소산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늘 자신과 싸우고 자신의 내면의 또 다른 자아와의 충돌에서 오는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확신에 차서 입밖으로 나오는 것을 행동은 따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솔직한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중 삼중의 나를 숨기기 바빴고 그럴듯한 나를 내놓으려고 노력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가진 여러 개의 가면 중 되도록이면 번듯한 것으로 하나는 벗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면을 벗고 나면 초라한 현실은 부랴부랴 막이 올랐다. 내가 담긴 그릇의 형상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다형성의 존재, 무형성의 존재가 되었다. 내 속에 내가 아주 많은데,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때로 혼란을 겪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한가. 그들에게 하는 말, 위로가 진심인가. 나의 진심을 드러내는 내 목소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소리를 가다듬는 것은 결국은 거짓으로 꾸민다는 것일까.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가면을 쓰고 역할에 충실한 것이 낫지 않을까. 가면의 역할에 몰입하면 어떨까.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가면을 벗을 때 더욱 솔직하지 않다. 오히려 가면을 쓸 때 더 솔직하다."는 것이 진실이었으면 했다.
문학 작품을 가지고 인간 내면의 다양성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인간의 복잡한 정체성에 대해 그맘때에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과도 얘기하고 싶었다. 고전의 재해석, 사건 비틀어 보기, 인물 바꿔 생각해 보기 등, 인간 내면의 더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길 바랐다.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문학작품 재구성의 차원이 아니었는데 효과는 컸던 것 같다. 아이들도 무척 재미있어하는 시간이었다.
고전에서의 '착한 나'와 '착한 나를 바라보는 나', '악한 나'와 '악한 나를 바라보는 나'로 나누거나 주로 작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물의 행위는 과연 효일까, 인물의 선택은 오로지 희생이었을까, 게으름은 악일까, 노동의 크기는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하는 소수의 '용기' 또는 다양한 생각의 목소리를 나누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전승희 옮김, 민음사)에서는 한 인간 내면의 이중적 면을 부각해서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하이드 씨의 악한 본성보다 오히려 지킬 박사의 위선을 당대 현실에 비추어 고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킬 박사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지킬 박사의 고뇌와 내면을 향한 사투가 그려지지만, 작가는 오히려 아무 입장 표명 없이 그려지는 하이드 씨의 모습이 정직한 본성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하이드)는... 맙소사! 단순한 쾌락주의자가 아니야... 쾌락주의자는 해를 끼치지 않아... 해로운 건 지킬이지, 위선자니까... 사람들이 너무 어리석게도 도착적인 욕정에 가득 차 있어서 성적인 것밖에는 생각할 줄 모른다니까."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지킬박사는 오만한 욕망과 경박한 쾌락 사이에서 갈등한다. 스스로를 심각하게 이중적이라고 얘기하지만 둘 다 아주 진지했기 때문에 위선이 아니며, 그렇게 열심히 둘 모두에게 충실했다고 말한다. 진실이란 인간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지만 작가는 지킬 박사의 궤변을 혐오하는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품에서 인간의 양면이 모두 진실하다는 말은 긍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모두 진지해서 위선은 아니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긍정과 인정은 행위의 방향이 스스로를 향할 때에만 가능하다. 욕망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때에는 이중적 행위를 긍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심각하게 이중적인 인간이기는 했지만 나를 위선자라 부를 수는 없었네. 내 양면은 둘 다 아주 진지했기 때문이지. 나는 절제를 벗어던지고 수치스러운 일에 덤벼들 때나, 밝은 대낮에 지식의 향상이나 슬픔과 고통의 경감을 위해 열심히 일할 때 모두 나 자신에게 충실했거든.
작품에서 지킬 박사는 자신의 선의 위장과 밝음의 지향을 위선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은 진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킬 박사의 행위는 계산된 착실함이고 하이드 씨의 행위는 본능이다. 그러나, 하이드 씨의 행위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지킬 박사다. 그렇기에 지킬 박사인 하이드 씨나 하이드 씨인 지킬 박사는 이중적 자아 모두에 진지하고 충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된 진지함이다. 가장된 진지함으로 극단을 향한 것에 대해, 그리하여 파국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지킬 박사는 다시 변명한다.
선과 악의 영역 사이에 더 깊은 골이 파인 것은 내 실수가 특히 더 악질이어서가 아니라 내 소망이 엄격해서였네.
사회의 다양성만큼이나 인간의 욕구도 다양하다.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한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기준에 따라 타인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한다. 꽤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궤변이다. 사회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기준이 있다. 사회의 기준의 범위 내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이중적 자아, 대립적 자아는 충돌은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역자는 작품이 점잖 떠는 사회의 위선을 고발한다고 분석한다. "선의 화신의 추하고 사악한 이면을 보여주고 파멸을 그림으로써, 작가가 빅토리아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실제로는 위선을 부추길 뿐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라고 말한다. 결국 사회가 위선적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 인간의 다양한 모습 중 어느 하나를 모범으로 제시하는 시대를 비판하고 있다고.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여러 개의 다양한 본성이 모두 존중되는 사회일까. 여전히 고전적 '모범생'은 좋은 의미이며 반듯함을 드러내는 적합한 표현이다. 그러한데, 한 인간 내면의 선과 악, 사회의 소수와 다수의 화해로운 공존은 가능할까.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고 사회는 더 완고한데, 요구하는 가치는 이중, 삼중의 인간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지킬 박사의 말대로 소망이 엄격해서 경계의 골이 더 깊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19세기 영국 스코트랜드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독자들에게 "보물섬"(Treasure Island)로 더욱 유명한 작가이다. 또한 "보물섬"이 대박을 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작가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보물섬"의 성공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이야기"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독자들에게느는 사실 이 작품이 중고등학교시절에는 개인적인 독서광들에게 인기있는, 그리고 대학생쯤 된 이후에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탐독자들에게 인기있는 고딕소설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로 더욱 익숙해진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인간의 이중성"이라든가, '선과 악'의 문제로만 다루는 경향이 뚜렸하다. 그 이유는 아마 10개의 챕터 상당수가 지킬박사에 관한 것이고, 그의 에고인 하이드 또한 작품 후반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약혼자를 비롯한 여성인물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충분히 젠더이슈의 소제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첨언하자면 이 책의 가격은 책의 구성에 비해 다소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