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토네이도예요!” 미나가 소리치면서 마도카의 팔을 잡아 옆의 책상 밑에 몸을 밀어 넣었다.
그 직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뒤흔들렸다. 폭풍爆風 같은 것에 휘말려 마도카가 숨은 책상이 옆으로 빙글빙글 회전했다. 맨바닥에 엎드렸던 미나의 몸이 붕 떠올라 어딘가로 멀어져가는 게 보였다.
“엄마!” 마도카는 비명이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유리 파편과 잔해 조각이 휘날렸다. 분진 때문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마도카는 눈꺼풀을 꽉 감고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 p. 12~13
바짝 마른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깨까지 길게 자란 머리, 깊게 파인 뺨은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였고 턱이 뾰족했다. 치사토는 순간적으로 예수상과 아귀餓鬼를 동시에 떠올렸다.
남자는 제단의 영정 사진을 지그시 바라본 뒤, 천천히 향을 피웠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 누구도 말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분향을 마치고 남자가 치사토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그러자 남자가 작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렸다. 얼핏 알아듣지 못해 치사토는 얼굴을 들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불운이었을까.” 남자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황화수소를 마신 게 정말로 단순한 불운이었을까요.”
--- p. 57
손목시계를 보았다. 4시가 넘었다. 주위는 슬슬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산책길 끝으로 시선을 던졌다. 합류하라고 한 걸 보면 반대 스태프가 온다는 것이리라. 손전등을 들고 오지 않으면 난처하겠네, 라고 묘한 것이 걱정되었다.
다운재킷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고 했을 때였다.
온천 냄새가 났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달걀 썩은 듯한 냄새, 라는 그것이다.
온천지니까 이런 냄새가 나는 것도 당연한가.
멍하니 그렇게 생각한 직후, 입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
--- p. 115
“세 개 남아요.”
“응?”
마도카가 저거 보라는 듯이 레인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바라보니 오른편 레인 끝에 핀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지금 볼링 얘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
하지만 마도카는 시선을 왼편으로 옮겨 “저쪽은 네 개가 남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던져진 공은 아직 레인 중간쯤을 굴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주르륵 늘어선 핀에 명중했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정확히 네 개의 핀이 남았다.
아오에는 조금 전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세 개 남아요”라고 말했었다. “세 개 남았다”가 아니다. 즉 아까도 공이 레인을 한창 굴러가는 중에 쓰러뜨리지 못한 핀의 수를 맞혔던 것이다.
“의미가 없어요.” 마도카가 말했다. “교수님이 나와 겐토 군에 대해 알아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니까요. 오히려 모르시는 편이 나아요.”
--- p. 314
“한 가지만 더 질문해도 될까요?” 아오에는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마도카를 라플라스의 마녀로 만든 것에 대해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물음에 우하라는 한동안 침묵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언젠가 마도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 이 세상은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 라고.”
--- p. 455
마력의 태동
“그래, 알았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뛰어주지. 어디, 네 신호대로 한번 해보자.”
“약속했죠? 약속 안 지키면 이길 가망은 없어요.”
“그래, 약속할게, 약속해.” 내뱉듯이 말하고 사카야는 발길을 돌렸다. 쓰쓰이와 나유타에게 “이렇게 되면 내가 오기로라도 뛰어야겠어”라면서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눈에는 요즘 들어 거의 보이지 않던 날카로운 기백이 서려 있었다.
나유타와 쓰쓰이는 서로 마주 본 뒤에 마도카를 돌아보며 말했다. “잘했어, 잘했어.”
“뭘요?” 그녀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사카야 씨를 잘 설득해줬다는 얘기야.”
“저런 바보 아저씨는 어찌 되건 상관없어요. 문제는 슈타라고요. 자, 가요.” 마도카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코치석으로 갈 생각인 모양이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유타는 조금 전 그녀가 내뱉은 말을 되새겨보았다. 바람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바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마도카의 어머니가 토네이도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라는 얘기가 생각났다. ---「저 바람에 맞서서 날아올라」중에서
와아, 굉장하다, 라고 나유타는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마구魔球야. 어디로 갈지 전혀 예측이 안 되잖아.”
그러자 마도카가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그 표현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단어를 찾는지 잠시 틈을 둔 뒤에 말을 이었다. “예측이 늦는다고 해야죠. 아, 나유타 씨의 경우는 예측을 못 한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예측 방법을 모를 테니까.”
“마도카는 그걸 알고 있다는 얘기야?”
“단순한 물리현상이니까요. 예측하지 못할 물리현상 같은 건 없어요.” ---「이 손으로 마구를」중에서
“간단히 말하자면, 악성이 되지 않게 유전자 조작을 거친 암세포를 뇌의 손상 부위에 심는 거예요. 나아가 그 세포를 자극하기 위한 극소 전극과 전류 발생기, 배터리를 삽입해요. 아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수술이라서 우하라 수술법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잘은 모르겠지만, 힘든 수술이겠네. 과거에 수술한 실적이 있어?”
“몇 번이나 있었죠. 단 어느 특정 부위에 대한 시술은 인정되지 않아요. 라플라스 코어라는 부위인데, 다행히 미나토의 손상 부위는 거기서 떨어진 곳이라서 별문제 없어요.”
“그 라플라스인지 뭔지 하는 부위에의 수술은 더 위험한 모양이지?”
“위험하다고 할까, 뭐,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얘기죠. 괴물이 많아져봤자 귀찮기만 하고.”
“괴물이라니?”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은」중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세상은 일부의 인간들만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낸다. 인간은 원자다…….”
마도카는 나유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멋진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범용한 인간이라도 살아만 있으면 이 사회의 흐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아사히나 씨의 말을 듣고 약간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회라는 것은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죠. 무자각한 편견이나 차별 의식의 집적이 잘못된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사히나 씨가 커밍아웃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얘기야?”
마도카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걸 알아보려는 거잖아요.” 끝이 치켜 올라간 눈으로 나유타를 빤히 응시했다.
“맞아, 그렇지.”
나유타는 앞을 보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중에서
아오에는 좁고 긴 골짜기 저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조건들이 다 갖춰져야 이곳에서 사람이 중독사할 정도로 황화수소 가스의 농도가 높아질까.
불행한 우연이 겹치면서, 라는 간단한 말로 처리해도 괜찮은 것인가.
하지만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인위적인 것이 관여되었을 여지는 전혀 없다. 이 세상에 마력魔力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마력의 태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