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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계승

맛있는 계승

김성연 | 가하 | 2012년 05월 1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6.7 리뷰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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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446g | 128*188*30mm
ISBN13 9788966472437
ISBN10 89664724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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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다 빠져나간 텅 빈 가게 주방에서 진하는 빠네또네에 들어가는 스꼬르쩨떼 깐디떼(scorzette candite)를 만들기 위해 오렌지 껍질을 설탕시럽에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12월을 맞아 삐꼴로 자르디노에서는 이탈리아에서 크리스마스에 먹는 대표적인 빵 두 가지, 빠네또네와 빤도로를 후식으로 내고 있다. 특히 별 모양으로 생긴 빤도로는 얇게 잘라서 사등분을 하면 예쁜 하트 모양이 나와서 연인들의 후식으로 효과가 만점이었다. 밤에 혼자 남아서 반죽을 미리 해둘 때면 하얀 설탕 파우더가 눈처럼 뿌려진 하트 모양의 빤도로를 보고 우와, 탄성을 지르며 행복해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흐뭇했는데 오늘은 사장님과 여자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남선녀란 말이 꼭 어울리는 커플이긴 하지만, 두 사람한테는 그냥 별 모양 그대로 서빙해주고 말 것 같다.

설탕시럽이 바싹 졸아들자 진하는 얼른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넓적한 접시를 꺼내서 설탕을 붓고 있을 때 가게 문이 벌컥 열렸다.

휴, 오늘은 정말이지 취객을 상대할 여력이 없는데.

진하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순간 거짓말처럼 현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맙소사. 아직 이렇게 마주 보고 서서 대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한다. 절대로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자.

“뭐야. 일 잘하고 있었네.”

현우가 카운터에 기대서서 빙글거렸다. 매혹적인 미소가 그녀의 심장을 아프게 두드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요.”

진하는 일부러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접시에 설탕을 듬뿍 부었다. 상관하지 말자. 난 내 일을 하는 거야.

“화났어요?”

화가 났느냐는 질문이 그녀를 조금 화나게 만들었다. 왜 함부로 남의 가게에 들어와 채 진정되지 못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들쑤셔놓는 것인지.

“피곤해요. 얼른 일 마치고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

“나 보면서 얘기하기도 힘들 만큼 피곤해요?”

나쁜 사람. 개구쟁이 같은 목소리로 이러면 착각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이러는 걸까. 농담처럼 건네는 말에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설렌다는 걸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네. 피곤해요.”

“잠깐 나 좀 봐요.”

진지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진하는 고개를 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까닭도 없이 가슴이 쿵쿵 뛰었다. 바보처럼, 정말로 얼간이같이.

“아까 그 사람, 내 여자친구 아니에요.”

진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오늘 처음 봤어요. 어머니 친구 분 조카인데 얼마 전부터 자꾸 한번 만나보라는 걸 바쁘단 핑계로 거절했더니 가게로 보냈더군요. 약속시간 30분 전에 전화를 걸어서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는 바람에 거절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함부로 설레지 말자. 그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일 뿐,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으니까.

“어머, 그래요? 두 분 굉장히 잘 어울리던데요. 전 당연히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요.”

진하는 어설픈 연극배우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진심인 양 내뱉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구멍까지 차오른 감정들을 들켜버릴 것만 같다.

“아니라고 하니까, 좋죠?”

장난 같은 질문에 가슴이 면도칼에 베인 것처럼 서늘하게 따가웠다. 오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장님이 밉다.

“제가 좋을 게 뭐 있어요.”

“진심이에요?”

진하는 한숨을 속으로 삼킨 채 진지한 눈빛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하였다.

“사장님, 그런데 제가 오늘은 정말 피곤해서요, 일찍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만 돌아가달란 의사를 완곡하게 표현하자 현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 아직 하고 싶은 얘기 꺼내지도 못했어요.”

“그럼 지금 말씀하세요.”

“그 사람하고 만나고 있는 내내 진하 씨가 생각났어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진하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쿵쿵 뛰었다. 아무 의미 없이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라면, 그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다.

“왜요?”

상처 받을지라도 확인하고 싶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을 확실하게 들어야 뜬구름 잡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

“진하 씨 입술에 설탕 묻었어요.”

뜬금없는 지적에 진하는 자신이 설탕 묻은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흠칫 깨달았다. 손등으로 입술을 대강 털어내고 진하는 그와 똑바로 시선을 마주한 채 다시 한 번 물었다.

“대답해주세요. 왜 저한테 찾아와서 굳이 그런 얘기를 하세요?”

“입술에 아직 설탕이 남아 있어요.”

질문은 듣지도 못한 것처럼 현우는 그녀의 입술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딴청을 피우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가 야속해 진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대답해주세요. 왜 지금 저한테 와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고요.”

진하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물러서기는 싫다. 속마음을 들켜서 관계를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고 싶다. 그녀가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을 때 현우가 쉰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모르겠어요? 나 지금 당신한테 키스하고 싶다고.”

그가 카운터에 허리를 기댄 채 긴 팔을 뻗어 진하의 턱을 강하게 붙잡아 끌어당겼다. 서늘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치고는 집요할 정도로 세심하게 입술을 핥았다. 윗입술, 그리고 아랫입술,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뜨거운 혀가 그녀의 입술을 함부로 벌리고 거침없이 깊은 곳을 헤집었다. 진하는 오렌지 껍질 대신 제 손바닥을 설탕에 파묻은 채 가슴이 저밀 정도로 황홀한 행위에 온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가 나에게 키스하고 있다.

그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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