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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시선 16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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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92쪽 | 150g | 104*182*15mm
ISBN13 9788972759638
ISBN10 8972759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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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박을 들고 무더운 길을 걷는다. 이 수박이 특별한 맛을 냈으면 좋겠다. 수박이 우리의 오전을 오후로 금방 바꾸어주면 좋겠고, 그래서 네가 오늘과 여름을 미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예배의 지루한 순서처럼, 위안이 되는 익숙한 형식처럼, 현관에 서서 나는 아이를 받아 안는다, 너는 아이와 바꾸어 수박을 들어 안는다. 서로에게 먼저 들어가라 권한다. 진짜 우리는 친구 같다. 거짓말같이 선명한 줄무늬처럼,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한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이 수박을 들고 너를 찾아가고 싶다」중에서

그래, 사실 나는 지금과 다르게 살 수도 있었지, 고작 그 정도 생각에 빠지는 시간. 그런데 슬프다 마는 그렇고 그런 생각이 이마를 들쑤시기 시작하는 시간. 아까 눈꺼풀을 통과한 빛은 아래로 아래로 한참을 더 내려가는 중인데, 여전히 친구는 연락이 없는 시간. 그렇다고 다 큰 어른이 놀이터에서 놀 수도 없는 시간. 울음을 짜낼 수도 없는 시간. 잠시 갇힌 시간. 갇힌 김에, 빛보다 빠르게 나의 생각이 빛살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 동시에 세 번째 빛이 두 번째 빛을 놀이터 밖으로 밀어내는 시간. 어차피 빛이란 균일한 것인데…… 감상을 돌이키기 직전의 시간. 친구는 분명히 오고 있고 이따 술을 먹든 밥을 먹든 하게 될 시간. ---「두 번 만난 친구에게 벌써 섭섭해지는 시간」중에서

어느 날 도둑이 그 담장을 넘어 빈집을 넘봐도 나의 영혼은 힘도 못 쓸 것 같다 도둑도 마음도 아까 놓쳐버린 것 같다 다 큰 자식도 못 알아볼 것 같다
아내를 잊고 싶지 않다 그녀를 깨워서 같이 밥 먹고 물 마시고 키스하고 싶다
하지만 어느 날 끝내 잠에서 못 깨어난 그녀가 스르르 담을 타고 집을 나가도 모를 것 같다 내가 기다리는 것들 다 사라졌는데 영원히 휘날리며 기다릴 것 같다
개 짖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몇십 년에 걸쳐 조금씩 더 찢어지는 것 같다 ---「도둑도 마음도 아까 놓쳐버린 것 같다」중에서

내가 숲, 이라고 말하면 누군간 멀리 떨어진 곳을 상상하지만
사실 숲, 이라는 곳이 꼭 외지고 울창한 것만은 아니다
하루에 열 시간씩 노동하고
어쩌면 옆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시간과 마음마저 다 끌어모아
나는 잘하고 있다, 점점 나아진다, 하며 자기 생각을 다잡아야 하는 나의 친구는, 근교 공원 인공으로 조성된 숲이 없었다면 벌써 미쳐버렸을 것이다

해변,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주 고요하고 어느덧 쌀쌀한 바람 불어오는 바닷가를 떠올리지만
사실 해변, 이라는 곳이 꼭 낭만과 사색을 즐기기 좋은 곳만은 아니다
스무 살 넘어 처음 바다란 걸 봤다, 내가 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는 탁상 달력 속,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해변 사진을 바라보며, 그렇구나? 했다 8월 말 늦은 여름 어쨌든 우리는 잠시 바다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사랑도 낭만도 챙길 겨를이 없던 그가, 어느 날 도시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무변한 바다를 쳐다보며 자기와 타인을 돌아보았다, 같은 엔딩을 누군간 생각하지만
우린 짧은 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조용히 달력을 한 장 넘겼으며, 각자가 가진 숲, 바다, 친구란 말의 의미를 잘 간수하고 있었다
---「, 같은 엔딩을 누군간 생각하지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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