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결혼 잔치」
마당에는 커다란 솥에서 걸쭉한 국물이 끓고 있었는데, 솥 옆 통에 담긴 한국식 마카로니(국수)를 이 국물에 넣어 내놓는답니다. 마카로니 통은 파리를 막느라 신문지로 덮여 있었고요. 줄줄이 놓인 한국식 식탁 위에는 고기와 한과와 파리 떼가 소복했어요. 도와주러 온 사람도 여럿이었는데, 이 사람들과 신부 어머니가 풍성한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바쁘게 움직일 때면 파리 떼도 덩달아 들썩였죠.---pp.33~34
「왕릉 앞에 선 시골 선비」
한국 사람들은 예절이 아주 바르답니다. 눈이 내린 어느 날엔가는 제가 평소보다 오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노선비가 극구 먹을거리를 대접하겠다고 했어요. 자기네가 먹는 대로 주는 건 예의가 아니니 외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해야겠다 생각했는지, 삶은 달걀 네 개를 놋그릇에 담아 내오더군요. 얼음같이 찬 달걀을 놋숟가락으로 먹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리러 간 날 아침, 노선비는 손자들을 가리키며 “왜 저 여자는 늘 나만 그리려 하는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통역더러 “선비님이 워낙 잘생겨서 그렇다고 전해주세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웃었어요.---p.49
「금강산 절 부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넓은 사찰 부엌은 참으로 매력적이에요. 벽을 등진 곳에는 무쇠나 동으로 만든 커다란 밥솥이 설치돼 있고, 부엌 용품은 구리나 놋으로 만들죠. 우연히 문이 열려 있을 때 부엌 앞을 지나친 적이 있는데, 마침 해 질 녘이었어요. 하얀색 옷을 입은 사내아이가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 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고, 아이의 등 뒤로는 햇빛이 비추었지요. 다른 한 사내아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는데, 아이의 하얀 옷에 아궁이 불이 반사돼 주홍색으로 반짝였어요. 상투를 튼 지긋한 나이의 남자는 커다란 밥솥을 휘휘 젓고 있었고요. 흰 바지와 초록색 윗도리 차림에 모자도 쓰지 않은 걸로 봐서 그 사내는 하인인 듯했어요. 솥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왔고, 벽 위 에는 부엌 수호신의 형상이 아름답게 채색돼 있었어요. 어느 부엌에나 밥솥 위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예스러운 디자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답니다.---p.58
상해에서 쓴 편지 중에서
중국에서 제일 고되게 일을 하는 사람은 외바퀴 손수레에 승객을 태우고 끄는 사람이에요. 다루기가 쉽지 않은 그 커다란 손수레 양 에는 각기 세 사람이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죠. 어떨 땐 양 에 세 사람씩 앉아 다리를 내리고 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땐 한쪽에만 두 사람이 앉아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가고 있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 을 비우고 앉아서 균형이 안 맞으면, 그렇잖아도 힘든 인력거꾼은 더 힘이 들 수밖에요. 목에는 손수레의 끈을 둘러매고, 양손에는 손잡이를 움켜쥐고,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과 불거져 올라온 근육, 땀구멍마다 차오르는 땀, 인력거꾼의 얼굴 표정……. 이 정도 인물이라면 호가스의 좋은 연구 대상이 됐을 거예요. 하지만 전 인력거꾼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수레에 탄 손님들의 무심한 듯 평온한 표정. 그 두 얼굴 간의 극단적인 대조가 더 묘하게 느껴졌어요!---pp.95~96
소주에서 쓴 편지2 중에서
중국 여자들의 옷은 극동 어느 나라의 옷보다 몸에 꼭 맞고 기능적이에요. 바지는 보통 푸른색 계통으로 두 색을 섞어 만드는데 얌전하고 단정해요. 상의는 몸에 꼭 맞게 만드는데, 앞섶이 벌어지고 소매 뒤를 잡아 맨 기모노나 치마 폭이 넓고 저고리 길이가 우스꽝스럽게 짧은 한국 여자들의 옷과 비교하면 배에서 일하기에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배에 사는 중국 (소주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진정한 조력자가 아닐까 싶어요. 종종 노도 젓고 일도 곧잘 하니 분명 성평등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테죠.---p.102
소주에서 쓴 편지2 중에서
명주실을 감아올리는 공장에 그 여자와 같이 갔었어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여자들이 열을 지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가슴이 납작했고 낯빛은 노란 밀랍 같았어요. 노상 뜨거운 물에서 명주실을 만지다 보니 손가락은 쪼그라들었고요. 일하는 엄마 곁에는 너덧 살쯤 됐을까 싶은 조막만 한 아이들이 높은 의자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다 여자애들 같아 보였어요. 이 아이들의 임무는 뜨거운 물에서 죽은 번데기를 건져 올리는 일이었어요. 끝없이 반복되는 일을 하느라 아이들은 그 작고 슬픈 얼굴을 연신 아래로 떨구어야 했죠. 우리가 방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쳐다보았는데, 그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에 어린 표정은 정말이지 가슴 뭉클하게 와닿았어요. 아이들은 우리를 감히 오래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험상궂게 생긴 감독관이 계속 열 사이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의 그 작은 손을 작은 대나무 갈퀴로 내리쳤거든요.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밀랍 같은 낯빛의 여인들과 아이들이 증기가 꽉 찬 비단 공장에서 노동을 해야만 한다면, 그래야만 입구를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하고 만족한 표정의 손님들로 붐비는 이 근사한 비단 상점이 유지된다면, 이 오래된 질서가 하루 빨리 사라지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p.110
「라나노 호숫가의 모로 시장」
장이 서는 언덕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었어요. 하늘은 마치 지붕처럼 펼쳐져 있었고, 어디를 보나 흥에 들뜬 사람들과 물건들이 가득했죠. 사람들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요리하는 여인들을 둘러싼 채 서거나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코코넛 주스를 마시고 있었고요. 초록색, 빨간색, 하얀색 케이크도 있었어요. 카사바 뿌리며 다른 열대 과일과 채소도 있었어요. 옷도 한 보따리씩 쌓여 있었고 넓은 챙을 아래로 늘어뜨린 모자도 있었어요. 다투(족장)들도 여럿 눈에 띄었어요. 점잖은 행동거지, 우아하게 떨어지는 윗도리, 이곳 사람들이 사롱(Sarong) 또는 말롱(Malong)이라고 부르는 옷을 조심스레 두르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다투라는 걸 알 수 있답니다. 윗도리는 파란색이나 노란색이 많은데, 반짝이는 단추가 여러 개 달려 있어요. 버섯 모양의 모자는 빨간색인 경우가 많지만 초록색이나 까만색 칠을 하기도 해요. 이 모자는 결이 고운 대나무를 납작하게 펴서 만들어요. 남자들은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데, 지팡이 끝에 달린 은 장식은 모로 족의 솜씨예요. 여자들은 직접 짠 아름다운 색깔의 천과, 남자들의 사롱 밑단으로 쓰이는, 무늬가 들어간 긴 비단을 팔고 있었어요. 참 멋진 장면이었어요.---p.141
모로랜드에서 쓴 편지 중에서
시중드는 여자들은 체구가 작고 맨발이었는데, 서양 문화를 아는 공주들의 도움을 받으며 뜨거운 물 등을 내왔다 다시 가져갔다 하더군요. 시중꾼들이 문을 여닫을 때마다 보여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성싶은 지저분한 방이 보이곤 했어요. 방 안에서는 여남은 명의 호기심 어린 눈길들이 천국 같은 이 방을 훔쳐보고 있었죠. 그 모습이 참 딱해 보였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서양식 티파티를 위해 동원된 용품들을 보니 어찌나 부자연스럽던지요. 말로는 ‘고국에서처럼’ 편히 있으시라고 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죠. 술탄은 서양식 옷을 입고 뻣뻣하게 경직돼 있었어요. 자기네 고유 옷을 입었더라면 훨씬 더 편안했을 텐데 말이에요.---p.151
북해도에서 쓴 편지 중에서
아이누 족에게 배첼러 부주교님이나 먼로 박사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먼로 박사님은 의약품을 많이 기증하셔서 아이누 족들이 무척 좋아해요. 이들은 정말 다양한 의료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여기선 늑막염이 아주 흔해서 겨울에는 늑막염으로 죽는 여자들이 많아요.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푼돈을 모아 외국인이 가져온 약을 사죠. 이 척박한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아주 기묘한 장면 중 하나는, 코 끝에 안경을 걸친 X 씨가 근엄한 표정으로 남루한 옷차림의 원주민들에게 나눠줄 약을 저울에 다는 모습이에요. 원주민들은 존경해 마지않는 X 씨가 약을 나눠주길 기다리면서 매일 저녁 문 앞에 줄을 선답니다.---p.176
도쿄에서 쓴 편지 중에서
요코하마가 최악의 순간을 맞던 그날 늦은 오후,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커멓고 더럽고 행색이래봐야 누더기 차림이거나 반쯤 벗은 상태였어요. 허리까지 진흙탕이 차오른 곳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기름기가 잔뜩 낀 바닷물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었어요. 이 이야기는 ○○ 부인이 제게 들려준 것인데, ○○ 부인 일행이 서 있는 근처로 한 일본 청년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들고 있던 커다란 보따리를 풀어놓더랍니다. 보따리 안에는 작고 보드라운 질감의 네모난 새 비단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아무 말 없이 사람들에게 비단 조각을 한 장씩 건네더래요. 그러자 이 가엾은 사람들은 감사히 여기며 그 비단으로 얼굴과 몸을 닦았죠. 비단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재와 땀을 닦아내게 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답니다. 그 청년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그들은 청년이 누구인지 몰랐고, 청년도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어요. 작은 비단 조각을 수건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진정 일본인다운 발상이었지요. 그렇게 큰 위안을 준 소중한 비단 꾸러미가 어떻게 불길을 피할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p.189
「다나카 씨」
얇은 야회복을 맞추러 손님들이 올 때면,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어깨 위로 옷감에 핀을 꽂느라 조심스레 발뒤꿈치를 들던 다나카 씨의 모습은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안경 너머로 《보그Vogue》나 《웰던Weldon's》같은 잡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서양 여자들의 변덕스러운 유행을 이해하려고 애쓰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네요. 가봉 중인 손님들에게 살짝 기댄 자세로, 과하게 낙낙하다 싶은 부분을 손으로 잡고는 “스꼬시 모아주고”, “스꼬시 집어넣고” 하며 사이즈를 맞추던 모습도요! 또 인내심은 얼마나 대단하던지요. 한번은 아침에 다나카 씨가 가봉을 하러 찾아왔기에 제가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을 전했어요. 마침 서둘러 그림을 그려야 할 모델이 와 있던 터였는데, 제가 그만 그 연로한 재단사를 깜박하고 말았답니다. 저녁 때 보니 여태 다나카 씨가 부엌에서 녹차를 마시며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제 편의를 봐주느라 종일 기다렸지 뭐예요!
---p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