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엄마의 말이 맞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식물은 사람이 아니야. 식물도 먹고 자라고 숨 쉬지만, 웃고 노래하고 궁금해하지 못하잖아’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 웃고 노래하고 궁금해하지 못하는 건 엄마다.
‘돌아와’ 하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쩌면 엄마가 속으로는 웃고 우는 그런 일을 다 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가 사랑하는 식물들처럼. 그러니까 누군가 다시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밀어 주기만 하면 엄마는 다시 속에서만이 아니라 겉으로도 웃고 노래하고 궁금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 p.35
“우리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래도 지금은 엄마한테 혼자만의 시간을 좀 주지 않을래?”
그렇게 나는 그 방에 더는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아빠는 행복한 척하는 얼굴로 ‘평소의 아빠’가 되려 했고 엄마는 어두운 침실 속으로 사라져 ‘엄마 아닌 사람’이 되었고 “엄마한테 혼자만의 시간을 좀 주자”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되었다.
--- p.41
아빠는 ‘상담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털리, 네가 꼭 알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엄마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너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야.”
바로 그게 문제인데. 내가 엄마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는 게. 그건 나와 너무나 관계있는데. 물론 나는 아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신경 쓰지 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아빠는 갈등하는 것 같았지만 나를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방의 어둠과 아빠 사무실의 가짜 밝음 사이에서 꼼짝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 내 방으로 가서 엄마의 책을 집어 들고 곧바로 바깥으로, 엄마의 온실 안으로 갔다.
--- p.55
차가운 자석이 사실상 가장 자력이 좋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꼭 여러해살이식물이 겨울에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저 다 괜찮아지는 때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차가움 속에 그런 힘이 있다는 게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자신이 다시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아는 일이, 그래서 햇빛 속으로 다시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이 때로는 그 무엇보다 강한 일인지도 모른다.
--- p.113
우리는 양치식물과 나뭇가지를 모아서 우리만의 ‘과학 실험’을 했고, 그 실험으로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들은 항상 대단한 치료제였다. 딸꾹질을 멈춰 주는 치료제! 숙제 치료제! 자러 가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치료제!
슬픔 치료제.
물론 우리의 치료제는 언제나 효과가 좋았는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법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그 누구도 우릴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과학자들이었다.
--- pp.176~177
엄마가 다시 엄마 자신처럼 보였다. 엄마의 ‘일할 때 머리 모양’과 흙 묻은 손과 불꽃이 담긴 두 눈. 하지만 전과 똑같지는 않았다. 나는 슬픈 버전의 엄마도 몰랐지만, 지금 버전의 엄마도 모른다. 지금의 엄마는 희망과 절망, 호기심과 용기, 실패와 투지가 다 담긴 사람이다. 완벽하지 않다. 세상 모든 걸 알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내 엄마고, 여전히 여기에 있다. 여전히 내가 사랑한다.
--- p.299
어쩌면 언젠가 우리는 뉴멕시코에 있는 그 신비로운 파란 들판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그 부자연스럽도록 선명한 꽃들 속을 걸으며 지난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년 동안의 모든 일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언젠가 엄마는 복잡하고 산란한 자신의 진실을 내게 이야기해 줄 것이고, 나는 이 탐구의 마지막 관찰 내용을 분석할 것이고, 우리는 앞을 향해 흔들릴 것이다. 항상 변하는, 항상 성장하는 우리 자신에게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때 이 온실에서, 생명과 빛과 두 번째 기회들로 가득한 곳에서, 우리는 괜찮았다. 깨어지는 것들을 언제나 지킬 수는 없다. 마음도 달걀도 부서지고 모든 것은 변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왜냐하면 과학이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p.31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