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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세이초, 반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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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34g | 128*188*15mm
ISBN13 9788976966438
ISBN10 8976966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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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흔여섯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여든아홉까지 사셨다. 외아들인 나는 부모에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구속당했다.
내가 형제가 있었다면 조금은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집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이 ‘자서전’ 비슷한 것도 틀림없이 더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는 부모의 애착 때문에, 열여섯 살 쯤부터는 가계를 거든다고, 그리고 서른 즈음부터는 처자식과 부모를 부양하느라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게 즐거운 청춘이 있을 리 없었다. 칙칙하고 어두운 반생半生이었다.
--- p.28

결국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신문에서 와세다 대학에서 나온 중학 강의록의 광고를 보고는 그것을 주문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지출마저도 그 이상 오래가지는 못했다. 끝내 장사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 p.49

유치장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내 책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아버지는 입으로는 정치가 어떻고 하면서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소심했다. 이런 책을 읽으니까 불순한 사상에 물든다면서, 그 뒤로 내가 소설을 읽으면 쫓아다니며 막았다.
나 역시 문학 따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생계를 안정시키지 않으면 온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고 마음을 잡았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더욱 그렇게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71~72

당시 아사히 신문사에서는 직급에 따라 대우가 달랐다. 예를 들어 월급날이 사원과 준사원은 25일이었고, 임시직 사원은 26일이었다. 국경일이나 회사의 기념행사에는 사원과 준사원만 강당에 모였고 임시직 사원은 참가 자격이 없었다. 그런 차별이 얼마나 임시직 사원들의 열등감을 부채질했는지 모른다.
--- p.110

식구들이 바글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긋지긋했지만, 밖에 나가 돌아다닐 곳이 없었다. 만약 그때 내게 조금만 더 직접적인 동기가 주어졌다면, 어쩌면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주변으로는 그런 강한 동기조차 없었고, 그저 불쾌한 타성에 온몸이 젖어 있었다. 신경은 곤두서 있는데도 몸이 나른하고 머리는 무뎌지고 있었다.
책 한 권 읽을 기분도 들지 않았다. 독서를 하는 것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빗자루 장사를 하느라 야간열차를 타고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와 사가 일대를 왕복하던 것도 어느새 먼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 p.207

만년필이 없던 나는 샤프와 종이 질이 형편없는 수첩을 사서, 집과 신문사에서 틈틈이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첩과 샤프는 항상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잘될 때는 신문사에서는 원고지 한두 장을 채우기도 했지만, 대여섯 줄밖에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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