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후 경희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 객원교수를 거쳐, 경북대학교, 경희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림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프랑스 제3공화정 연구》(1976), 《현대역사사상》(1978), 《전환의 역사》(1978), 《현대사의 길목에서》(1978), 《민중시대의 논리》(1979),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1980),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1991, 《자유주의의 역사》의 초판본), 《함석헌 다시 읽기》(2002)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현대세계사》(1964), 《역사의 연구》(축약본 전2권)(1976), 《서구문화와 종교》(1977) 등이 있다. 대표 저서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는 1992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했다.
다른 이데올로기들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자유주의 이처럼 그 이념이 현실 생활의 밑바닥에 널리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자유주의의 강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 약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자유주의가 특유한 정치 형태를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형태가 흐릿하게 희석되어 있다. 그리고 보수주의와 사회주의도 자유주의의 전제와 태도를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사실은 바로 자유주의의 우세를 입증하는 것이기는 하나 동시에 우세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적 원리는 이제 주요한 정치 운동과 정당 활동에 날카로운 활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리들은 자유주의의 왼쪽과 오른쪽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다 같이 흡수되고 만 것이다. 자유주의 이외의 다른 정치적 전통들이 자유주의의 원리를 제 것으로 흡수하여 자기 변모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자유주의는 혼합과 희석에 의해 힘이 약해진 것이다. ---p.25 중에서
근세 문화의 가장 중요한 새 사상, 자유주의의 탄생 자유주의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새것이었는데, 이는 이른바 서양 중세의 봉건 질서와 가톨릭 문화의 붕괴 과정을 통해 새로 형성된 근세 문화의 가장 중요한 새 사상이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의 시작은 이 새 문화가 대두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면 새 문화는 언제 대두했을까?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보여준 현상이 이른바 르네상스라는 문예 부흥 운동이며, 이보다 더 분명한 형태의 것이 종교개혁이고, 동시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그에 뒤따른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여기에 하나 더해야 할 것으로 앞의 세 가지보다 시기적으로 늦고 또 사람들의 의식에 직접 지각되기도 어렵지만, 역사적 영향력 면에서는 앞의 것들보다 막강했던 과학혁명이 있다. 과학혁명은 인간과 우주를 보는 사람들의 눈을 중세적인 것에서 180도 바꾸어놓은 소리 없는 정신 혁명이었다. --pp.106~107 중에서
자유주의, 프랑스 혁명을 통해 도처로 전파되다 계몽사상의 자유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낳았고 프랑스 혁명은 국민국가라는 새 나라를 낳았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이제부터 국민국가 안에서 활짝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 사상이 가는 곳마다 전제군주 국가를 타도하고 국민국가를 만들었을 때, 그 자유주의는 이민족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민족에게는 자신의 독립 민족국가 건설의 이념이 되었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의 이념과 19세기의 자유주의는 피지배 민족에게는 독립운동의 원리로서의 국민주의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근대 내셔널리즘도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도처에서 민족 감정과 민족주의 운동을 자극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첫째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이고 둘째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세 나라에서 세 번에 걸쳐 완전히 분할되어 버린 폴란드의 독립운동일 것이다. --pp.215~216 중에서
매카시즘의 선풍과 자유주의 매카시즘의 선풍 속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유주의의 원리를 일단 양보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자유주의의 바탕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에 가서는 자유주의자들도 혐의와 공범의 올가미를 쓰게 마련이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 공명자의 구별을 무시하는 조사 위원들이라면, 사회 개혁가와 사회 혁명가의 구별, 민주사회주의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구별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리버럴’이라는 말은 좌익이거나 모든 일에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에 “리버럴 즉 자유주의자는 공산주의와 오십보백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는 자유주의자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되었다. ---p.224 중에서
평등주의에 가까운 롤스의 자유주의 롤스의 자유주의론은 기본적으로는 평등주의에 가깝다. 이 점이 종래의 자유주의와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특색이다. 그는 평등은 선엄적인 법칙이고, 불평등은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태도는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동정심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점이 자유 시장론자들과 다른 점이고, 그가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자유주의자로 간주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그는 불평등이 사회의 가장 불우한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그 불평등은 용납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불평등관을 실제 정책에 적용하면 그것은 당연히 매우 급진적인 부의 재분배 정책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 못지않게 복지국가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