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진짜 이상한 여행이다. 어렵게 일상에서 벗어나 놓고선 부러 천막으로 집을 짓고, 버너와 코펠로 밥을 짓고 고기를 굽는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여행에서 일상을 즐기다니, 이야말로 부조리 아닌가. 여행과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는 캠핑은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확실히 그렇다.
--- p.8, 「들어가며-술 한잔 먹어보겠다고, 홍천」 중에서
캠핑은 취향의 발견이다. 그 많은 취미 중에 캠핑이란 취미를 골랐겠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이 바닥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그럴 땐 항간에 유행인 철학적 질문을 던지시라, ‘캠핑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생활하는 거, 조금 범위를 좁히자면 자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게 캠핑이다. 뭐가 됐든 잠깐의 일상을 누려보시라. 그게 다라는 게 아니다. 그게 바람직한 시작이란 얘기다. ‘장소 더즌 매러’다.
--- p.22, 「캠핑의 어떤 시작-강화 함허동천 × 퇴근박」 중에서
우리는 준비한 줄을 봉에 걸치고 배낭을 묶어 최대한 높이 끌어올렸다. 배낭은 나무와 나무 사이 중앙에 위치해야 했다. 곰이 나무를 타고 올라도 배낭에 이르지 못하도록. 이 지난한 과정을, 살아보겠다고 일일이 하고 나니 어두워진 이후에는 숲으로 등을 돌리는 게 무서워졌다. 저 으슥한 숲은 곰이 한 마리도 없다는 말이 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울창했으니까.
--- p.47, 「광활한 대지 위에 오로지-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 백패킹」 중에서
잠자리에 대한 고민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그러니까 아직 여명이 남아 있을 때 끼니까지 다 해결하고 잠자리에 든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4시가 넘어가면 괜찮은 박지가 있는지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그런 곳은 수두룩했고 조금만 공을 들이면 근사한 사이트가 나타나곤 했다. 자락길이 산과 마을과 도로를 두루 갖춘 덕에 산속에서도 자고 마을에서도 자고 도로변에서도 잤다. 개인적으로 산속이 제일 좋았고 그다음은 마을이었다.
--- p.67, 「걷다 보면-영주 소백산자락길 X 백패킹」 중에서
이왕 걸을 거면 좀 쉽고 풍경도 좋은 길을 걷자 했고, 생각난 곳이 태안이었다. 아웃도어 잡지를 만들 때 첫 출장이 태안이었고 배낭 메고 걸으면서 ‘참 좋다, 다음에 이리 모여 한 번 오고 저리 모아 또 오고 그래야지’ 생각했다. 땅 자체가 높은 산이 없을뿐더러 태안반도의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은 완전히 평지 그 자체였다. 고저가 없는 심심함은 풍경이 지워준다. 내가 걷고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기준으로 한쪽은 끝없는 바다가, 다른 한쪽은 빼곡한 송림이 있다. 수평의 공간과 수직의 공간을 가르는 선을 따라 걷는 셈이다.
--- p.79,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태안반도 × 비박」 중에서
한 시간에 4km를 걷는 여행과 20km를 보는 여행은 다르다. 자전거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도 있지만 걷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나은 길도 있다. 속도의 효율이 아니라 길의 풍경을 말하는 거다. 샅샅이 살피는 대신 안장 위에서 유람하듯 구경하는 재미가 더 좋다는 거다, 어떤 풍경은. 게다가 걸으면서 곁눈질만 하던 곳을 자전거를 타고는 한 번 가볼 수 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하룻밤 머무는 거지. 그런 맛에 자전거 캠핑을 하는 거다.
--- p.96, 「다시 보자, 오키나와-일본 오키나와 × 자전거 캠핑」 중에서
나아가면서도 배는 계속 흔들릴 것이다. 흔들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흔들림이어야 한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간 물에 빠지기 십상이다. 얼음판에서는 안 미끄러지려고 아등바등대기보다 슥슥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현명한 법이다. 다만 머리부터 배꼽 사이 어디쯤 있는 중심만 무너지지 않으면 된다.
--- p.112, 「짐 싸들고 무인도, 언젠가-통영 연화도 & 삼척 장호항 × 카약 캠핑」 중에서
트레일러는, 말하자면, 캠핑의 치트키다. 차를 세우면 집이 생기니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된다. 텐트 한 쪽에 폴을 고정하고 반대쪽으로 움직이다 잘못 건드리면 고정해둔 폴이 빠지는 시트콤 안 찍어도 된다. 언 땅에 페그 박았다가 철수할 때 30분 동안 씨름을 해도 결국 빼지 못해 더 깊이 때려 박고 올 일도 없다. 비 맞으면서 텐트를 치거나 걷을 필요도 없고, 결로로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뭉치고 뭉쳐 한밤중에 내 코에 떨어질 일도 없다. 이런 장점은 차라리 사소하다. 네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캠핑의 질이 달라진다. 결정적으로 똥을 쾌적하게 쌀 수 있다. 캠핑하지 않는 자는 모른다, 내가 똥 눌 장소와 시간을 내가 정한다는 게 얼마나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지.
--- p.121, 「창밖에 눈보라가 몰아친다 해도-평창 & 나키진 × 트레일러 캠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