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촌집 구하기 : 왜 하필 그집?
'촌스럽다'는 형용사는 보통 뒤떨어지고 후지다는 뉘앙스로 쓰인다. 네이버 사전엔 "어울린 맛과 세련됨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는 설명과 "복장이 촌스럽다"는 예문이 나온다. 그러나 예전엔 그랬겠지만, 국민소득 3만불 시대 촌 실정을 모르는 소리다. 촌에 가보라. 집 앞 골목길까지 대기업 택배 트럭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지나다닌다. ‘어울린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세련됨' 넘치는 사람도 지천이다. 비주얼이든 멘탈이든.
결정적으로,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봄부터 낚시에 홀려 바다로 나다니는 나로선 촌이 아니고는 불가한 핵 장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달, 바람, 산, 바다, 나무, 꽃, 새, 심지어 고양이(반론의 여지는 있지만 나로선)까지…….
--- p.16~17
5. 마을의 입지와 촌집의 좌향(하)
우리나라 농촌 전통 마을의 입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산촌이나 어촌은 좀 다르고, 같은 농촌이라도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농촌 마을은 너른 들판과 산비탈이 만나는 경계선 언저리에 형성된다. 들녘이 끝나고 산자락이 시작되는 곳에 마을이 들어선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농지를 벗어나 마을을 형성함으로써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던 농토 잠식을 피했다. 아울러, 산자락 언덕배기가 시작되는 위치는 농지를 관리하기에 유리한 지형이기도 하다. 산자락을 끼고 있으면 산에서 나는 임산물을 채취하기도 쉽다. 무엇보다도 산에서 내려오는 지하수와 계곡물을 식수로 쓸 수 있다.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는, 산은 매서운 바람을 막거나 흩어 놓으니, 허허벌판보다는 산자락이 감싸는 지형이 안온하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는 지형도에 뒤로 진산과 주산, 좌우로 좌청룡 우백호, 앞으로 안산과 조산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p.38~39
돌담 쌓기에 관한 한 '달인'에 가까운 실력의 동료가 선임 작업자로서 책임을 맡았다.
사실 돌만으로 담장을 쌓으면 일이 더디다. 돌끼리 견고하게 물고 물려 쌓아야 하므로 사춤(돌담 등을 쌓을 때 빈틈을 메우기 위해 흙이나 모르타르 등의 재료를 넣는 일) 재료를 사용한 쌓기 방법보다 정밀해야 한다. 시간이 더 소요되니 비용도 늘어난다.
그러나 이질 재료 없이 돌만으로 쌓은 담장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단 하나도 같을 수 없이, 크기와 형태가 천차만별인 자연석을 일일이 끼우고 맞추는 공정이 돌담의 천연스러운 멋을 만든다. 이렇게 생긴 돌담의 입면은 대체불가능한 아름다움이 있다.
--- p.92~93
돌담의 원초적 아름다움
돌담 작업 중에 문득 생각했다. 인류가 건축행위를 시작한 선사시대 이래 지금까지 지속해온 가장 원시적인 건축재료로 하는 가장 원시적인 건축행위. 돌담에 매혹되는 것은 원시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일까? 돌담이 뿜어내는 포스가 강렬하다.
--- p.98~99
4. 안동 번남고택 중편 _ 기둥수리
기둥 보수는 고택 수리의 단골 공사다. 초석의 변형에 따른 이탈이나 기둥 자체의 썩음과 흰개미 피해 등으로 훼손이 잦기 때문이다.
기둥의 훼손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부분 부식과 전체 파손.
일부만 못쓰게 된 기둥은 구조 안정성이 확보되는 한도 내에서 해당 부위를 잘라내고 새 자재를 이어붙인다. 이를 ‘동바리 이음’이라 한다. ‘동바리’는 짧은 기둥이라는 뜻이다.
기둥이 전체적으로 갈라지거나 파손되어 부분적인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 새로 만들어 전체를 교체한다. 안동 번남고택 공사에서는 두 공법으로 수십 개의 기둥을 수리했는데, 여기서는 동바리 이음 사례를 소개한다.
--- p.146~147
쪽마루
건물 바깥 기둥 외부에 마루가 설치된 쪽마루다. 쪽마루는 별도 초석을 놓고 동바리 기둥을 세워 받친다. 바깥 귀틀 밑에 작은 기둥과 초석이 보인다.
벽체에 붙여 설치한 귀틀은 접귀틀이라 한다. 건물 하인방에 연정이나 철물을 박아 구조내력을 확보하여 귀틀을 설치한다.
추운 북부 산간지방에는 마루가 설치되지 않은 예도 있지만, 한옥에서 마루는 필수적이다. 특히 쪽마루나 툇마루는 실용적이면서도 운치 있는 전이공간이다.
--- p.21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