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침묵은 하나님을 침묵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와 피해자의 인격과 사생활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의 회복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직면과 진실한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이러한 바로잡음에 미숙한 교회가 많아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체적인 방법과 이를 위한 진리의 기반을 함께 가르치고 있으며, 그 가르침을 따라서 아프게 성장해가는 공동체가 실제로도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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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어서 복을 받는 기독교’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런 기독교는 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복을 주십니다. 빈곤할 때 자족할 줄 알고, 넉넉할 때도 자족할 줄 아는, 그런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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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원하십니다. 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메시아를 주로 모실 때 주어진 복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도 ‘우리’라는 표현을 모두 사용하지 않습니까? 실인즉 그 기도는 나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 영성입니다. 모든 종교가 기도를 개인의 영적 활동으로 보지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홀로 하나님을 독대해도 언제나 ‘우리’를 전제하고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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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기독교의 배타적 진리를 받아들이되, 자신을 박해하는 원수까지 사랑하며 포용적으로 산다면, 다원 사회에서 기독교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그리스도인들처럼 자신과 다른 가치나 믿음을 가졌다고 타인을 함부로 대접하고 무시한다면, 그리스도인인 역시 그렇게 대접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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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공동체는 여성과 남성의 차별 없이, 하나님을 닮은 건강한 권위와 그리스도를 닮은 건강한 순종으로 건강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2천 년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성차별 철폐 사상이, 인류의 오랜 관습과 잘못된 권위주의,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편파적 성경 해석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퇴색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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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기다리면서, 원래 가졌던 생각이 바뀔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다른 삶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참고 기다리셨듯이, 시공간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셨듯이,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그들의 입장이 되어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그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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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현대의 십일조’는 10분의 1이 아니라 소득에 따라 일종의 누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득 상위 1%는 아마도 수입의 90% 이상을 헌금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당신이 얻은 경제적 이득 중에서 얼마를 당신과 당신이 직접 부양하는 가족을 위해 쓰고, 얼마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야 할까요? 각자 하나님 앞에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받은 모든 경제적 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청지기로 잘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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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들로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훈련장입니다. 사랑을 연습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랑을 연습하는 교회 안에서는 속한 이들의 역량도 강화됩니다. 사랑하는 역량이 강해져야 세상에 나가서 다른 이들도 사랑하고, 갈등 구조 안에서 평화도 이뤄 내고, 마침내 세상의 제도와 문화까지도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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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교회가 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입니다. 투명하지 않은 교회는 교회이기를 거부하는 종교 집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그의 그러한 성품을 배워서 시간이 갈수록 따르는 이의 마음도 청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 악을 멀리하기 시작하면 그분을 볼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소망하면 그분이 내 앞에 계시는 듯이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며 준비하게 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독교 공동체라면 투명함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투명하지 않은 교회는, 투명함을 거부하는 교회는, 교회이기를 거부하는 종교 집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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