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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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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3쪽 | 48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120256
ISBN10 89701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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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야' 하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 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되고 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을 얼마 안되는, 극히 얼마 안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 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 하자구. 알겠니?'

'응, 알았어.'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오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말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의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주일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몽땅 잃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 속은 마치 D.H.로렌스의 소년 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 두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의 여자 아이를 만나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니,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라 마치 우주의 공허를 그대로 삼켜 버린 것같이 속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도넛 구멍처럼 작은 공백이었던 것이, 날이 감에 따라 우리 몸 안에서 자꾸자꾸 커져서 마침내는 바닥 모를 허무가 되었다. 공복(空腹)이라는 장중한 BGM(background music)이 달린 금자탑인 것이다.

공복감은 왜 생기는가? 물론 그것은 식료품의 부족에서 온다. 왜 식료품은 부족한가? 적당한 등가(等價) 교환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등가 교환물을 갖고 있지 못한가? 어쩌면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 공복감은 상상력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어때. 신(神)도, 마르크스도, 존 레넌도 죽었다.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고, 그 결과 악(惡)으로 달리려 했다. 공복감이 우리를 악으로 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 공복감으로 하여금 우리를 달리게 하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실존주의 같은 것이다.
--- p. 92
아까부터 자네들의 체험담을 듣고 있자니까 말이지. 그런 경우의 이야기엔 몇 가지의 패턴이 있지 않을가 하는 느낌이 들거든. 우선 한 가지는, 이쪽에 삶의 세계가 있고, 저쪽에 죽음의 세계가 있어서, 그것이 그 어떤 힘에 의해 어디선가 교차한다는 형식의 이야기란 말이지. 예를 들면 유령이라든가 하는 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3차원적인 상실을 넘어선 어떤 종류의 현상이나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다시 말해서 예지라든가 예감이라든가 하는 거 말이야.
--- p.194
삼가 아룁니다. 추위도 하루하루 스그러져 햇살속에 희미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어제오늘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날 주신 편지 반갑게 받아보았습니다. 햄버그 스테이크와 향신료의 관계에 대한 대목은 생동감 넘치는 상당히 훌륭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방의 따스한 향기와 양파를 써는 싹둑싹둑 칼질 소리가 생생히 전해져 왔습니다. 그런데가 한 군데라도 있으면 편지는 살아납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고 있으려니까 햄버그 스테이크가 못견디게 먹고싶어져 그날 밤 당장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했지요. 그 레스토랑에서는 실로 여덟 종류나 되는 햄버그 스테이크가 있었습니다. 텍사스 식이랄까. 켈리포니아 식이랄까. 하와이 식이랄까. 일본식이랄까 하는 것입니다. 텍사스 식이라는 것은 아주 크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그런 것을 안다면 텍사스 사람들은 깜짝 올라겠지요. 하와이 식이라는 것에는 파인애플이 곁들어져 나옵니다. 캘리포니아 식이라는 것은....잊어버렸습니다.
--- p.121
그래도, 나는 과거의 충실한 외야수로서의 작은 보람을 트렁크 속에 챙기고, 항구의 돌층계에 걸터앉아, 공허한 수평선 위로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중국행 화물선을 기다리자, 그리고 중국 거리의 휘황한 지붕들과 그 푸르른 초원을 생각하자.

상실과 붕괴 뒤에 오는 것이 비록 무엇이건, 이제 나는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리라. 마치 명타자가 내야의 수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신념에 찬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그것이 가능한 것이라면.... 그러나 친구여, 중국은 너무나 멀다.

- 중국행 화물선 .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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