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으로 칠해진 술잔의 그림만 보고 있으면 흰 바탕에 그려진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흰색의 바탕만 보면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만 검은색의 술잔이 보이지 않는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사람들의 이중적 시각은 동물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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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충(사람)은 다른 동물에 대해서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반려견을 기르면서 개를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 돼지, 닭고기를 먹으면서 동물복지를 주장하며, 동물실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한 의약품을 복용하면서 동물실험의 잔인함과 무익함을 주장하기도 하고, 살아 꿈틀거리는 생선을 날로 먹으며 동물의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려동물에게 고기를 주며 돼지는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이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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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식량이나 의복, 사역 등에 이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동물에 대한 불쌍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갈등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동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서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동물이 누릴 수 있는 복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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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학자 Sato는 랫드가 동정심을 갖고 곤궁에 처한 같은 케이지에 있던 다른 랫드를 돕는지를 실험하였다. (...중략...) 같은 케이지에 사는 랫드가 물이 채워진 구역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어, 물에 갇힌 랫드를 구해주는 방법을 재빠르게 터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랫드는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한 학습 여부와 관계없이, 고통스러워하는 랫드를 도운 다음에야 사료를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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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많은 반려견과 주인의 이야기이다. 필자는 낮에 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가 무료해할 것을 생각하여 양방 통화가 가능한 캠코더를 설치하였다. 혼자 있을 때의 강아지는 저녁에 가족이 모여있을 때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방석 위에 낮게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저녁에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활발하게 돌아다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캠코더를 통하여 부르는 소리에 반응을 하였지만 이내 다시 방석으로 돌아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강아지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었다. 아침에 주었던 사료를 거의 먹지 않고 있다가 그제서야 먹기 시작했다.
--- p.117
스웨덴의 한 과학자가 반려견을 소유한 사람들이 심혈관 질환에 이환될 위험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중략...)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반려견 소유자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낮았으며, 12년의 추적 관찰 기간 동안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 위험성도 낮았다고 발표하였다. --- p.142
동물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며, 심지어는 감정적인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동물 역시 공포를 느끼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며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갈망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동물에게 고통과 갈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p.194
최근에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자 인간과 동물 사이의 키메라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 기술은 2006에 Daylon James등이 마우스의 배반포에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를 주입하여 인간의 줄기세포가 동물에게서 어느 정도 분화하는지를 관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p.219
시설전임수의사는 동물실험 연구자를 비롯한 동물의 관리와 사용에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에게 적절한 사양관리, 동물의 취급, 의료 조치, 보정·진정·진통·마취 및 안락사 등의 처치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동물과 관련된 수술과 수술 전후의 전반적인 관리에 대한 지침 역시 제공하고 감독할 의무가 있다.
--- p.214
기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동물실험이 윤리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또는 연구자에게 안전한 과정인지 등에 대해 계획서 내용을 검토하며, 연구자는 이의 승인이 이뤄진 후에 동물실험을 수행하게 된다.
--- p.236
동물로부터 얻는 정보는 사람에게서 수집된 정보에 비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축적된 사람에 대한 임상연구, 임상시험, 공중보건학적 역학정보, 유전자 해석 등을 통해 막연하게 의지해왔던 동물실험의 정보를 대체해나가는 것이 앞으로 진행될 동물실험 대체안의 중요한 과제이다.
--- p.260
가수 이효리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한 일간지에 실렸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생선은 먹으며,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는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러한 그녀의 갈등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수의사로서 동물실험을 하고, 또한 대학에서 실험동물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르쳐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낯설지 않다. --- p.269
올바른 삶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깊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특출한 사람들의 비범한 삶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바른 길을 찾지 않고 오히려 멀리한다면, 이는 올바른 삶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은, 다른 나라의 법이나 형이상학적 논리 속에 숨어있지 않다. 해답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로 우리가 동물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