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다. 이 둘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유럽을 배회하고 있었으며, 유럽의 사회와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쳤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세계화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권력 economic power이 더 광범위한 인간의 행복 human good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규제와 공공정책을 통해 세계화를 인간의 통제 아래 두기를 요구해야 한다.
---「한국어판 서문」중에서
이것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격하기 전에 이미 견고하게 확립된 익숙한 대립들이다. 전자의 시나리오에는 배후에 사회민주주의자들, 그 외 평등주의자들과 집단적 노력 collective endeavours의 신봉자들, 환경주의자들이 있다. 후자의 배후에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규제 없는 시장 및 사회정책 최소주의의 신봉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 팬데믹은 어떤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러한 대립들이 제시한 선택들을 더욱 심화시키고 뚜렷하게 만들었다.
---「서문」중에서
이 두 가지 해로운 방식을 모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을까? 이 방식들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이기심과 혐오는 인간 행동의 매우 강력한 동기이며 이 두 동기에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방법은 다수의 사람을 흔드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사심 없이 행동하고, 타인을 혐오하기보다는 생산적인 평화 속에서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 과제는 이들 다수를 위한 건설적인 정치적 표현 articulation을 찾아 주는 것이다.
---「사회적 유럽의 쇠퇴와 민주주의의 파편화」중에서
여러 해 동안 중도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법치와 헌법적 올바름 constitutional rectitude의 주요 수호자라 자처해왔다. 그러나 여러 국가 - 헝가리, 폴란드, 영국, 최근까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 외부에서는 미국 - 에서 이들과 극우파의 행동이 별다르지 않다는 게 밝혀지면서 수호자라는 명성도 무색해졌다. 이 모든 국가들 그리고 다른 몇몇 국가들에서 준법적인 정부의 주요 수호자 역할은 때로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중도보수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 좌파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사회적 유럽의 쇠퇴와 민주주의의 파편화」중에서
실제로 내가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으로 설명하는 이기심과 혐오에는 강력한 도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재분배적 과세와 공공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은 가난이 대개 무기력과 게으름에 기인하며, 자칭 ‘노력해서’ 성공한 부자들과 중산층들의 재산은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심지어 혐오조차도 종종 도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종교의 역사는 신성한 가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극도의 폭력 행위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진정한 동기(만약 우리가 이것이 무엇인지 결정할수 있다면)가 무엇이든, 사람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행동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제시할 필요성을 느낀다.
---「사회적 유럽의 쇠퇴와 민주주의의 파편화」중에서
국내 정치에서도 흔히 그렇듯이, 우파든 좌파든 유럽 정책 결정자들은 시장과 공공정책 조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더 많은 시장을 원한다면, 더 적은 사회정책을 가져야 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그 반대가 진실이며 둘 다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수용에 대한 투쟁」중에서
심지어 가장 열성적인 친유럽연합 정치인들조차도 유럽연합의 정책 중 자국에 긍정적인 것들에 관해서는 온갖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부정적인 것들에 관해서는 유럽연합을 비난한다.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행동이며 동시에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외국인 혐오 정당들이 유럽연합을 관료적인 규칙을 강요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수용에 대한 투쟁」중에서
현재 유럽연합 표준들은 생산 공정에서 최종 제품 품질에 관한 것이 주류다. 유럽연합 표준들은 공정들 processes 그 자체의 품질에 대해서는 거의 중시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1980년대에 노동 환경의 품질을 표준에 포함시키려는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의해 단일 유럽 시장에 대한 초기 토론에서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는 주로 낮은 가격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이익보다 제한된 수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구실로 기업 로비와 보수주의 정당 및 자유주의 정당에 의해 무산되었다. 근시안적이었던 이런 결정은 되돌릴 필요가 있다.
---「사회적 유럽의 확대와 표준의 역할」중에서
세계화는, 만약 규제만 이루어진다면, 전 세계 번영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에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는 다시 우리로부터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우리의 성장은 시장 범위의 확대에 달려 있지, 우리가 우리의 작은 공간에서 계속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세계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보호주의적인 조치에 달려 있지 않다. (...)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사실상 탈규제적 세계화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사회를 손상시켰다. (...) 선진국에서 세계화는 일자리 상실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었다. 이는 주로 자동화와 로봇화의 결과였으며, 산업 활동의 노동 생산성이 서비스 활동의 노동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진보함에 따라 산업 활동에서 서비스 활동으로 고용이 전환된 결과였다. (...)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불친절한 감소 중 하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필요성에 의해 가장 위협받는 것이 바로 그러한 개인적인 연결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유럽의 확대와 표준의 역할」중에서
거의 모든 유럽과 기타 선진 사회들은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된 심각한 분노 표출과 우발적인 폭력 행위를 경험하고 있다. 추악한 제로섬 갈등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여성들과 다양한 소수집단들에 관한 관심이 감소하거나 심지어 반전시키는 정책 반발 policy backlash을 볼 수 있으며, 이는 그들 지위의 새로운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외국인 혐오적이고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정부들이 이러한 반발을 주도할 경우, 이들은 실제로 남성 이전 산업노동자 계급 male ex-industrial working class의 경제적 쇠퇴를 반전시키는 데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 정부는 보통 불평등을 줄이는 데 관심이 없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의제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뒤처진’ 사람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은 배제 문제가 최근에 공인된 집단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표출하기 위한 면허뿐이다. 그러한 면허를 부여하는 것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과세는 필요하지 않다.
---「사회적 유럽의 확대와 표준의 역할」중에서
노동시장이 어려운 시기에 시민들의 존엄성을 위한 최종 지원은 법정 최저임금이다. 엄격하게 시행된다면, 이것은 임금을 낮추기 위해 이민자를 활용하는 것 - 이는 이민자들에게 적대감을 유발하려는 단체들의 빈번한 주장이다 - 을 방지하는 이차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의 가난한 국가들로부터의 불공정한 경쟁 및 가난한 국가들 내에서의 노동자들의 착취를 막기 위해 유럽 전역의 (물론 지역 생활비에 맞게 조정된) 최저임금 전략이 필요하다. 잘 조직된 제도들을 가진 국가들의 경험은 그것들이 실업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반대는 국가가 최저임금을 정하고 시행하면 자신들의 역할이 약화될 것이라고 느끼는 강력한 노동조합들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들이 약화될 때까지는 영국과 독일의 경우가 그러했지만, 그 이후 그들은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사회적 유럽의 확대와 표준의 역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