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일, 내게는 가장 친한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친구’이자 존경했던 동역자이며, 목회의 선배이자 사역의 스승이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의 10주기를 맞았다. 그동안 내가 미약하나마 ‘한국교회 호스피스 전인치유’ 사역에 발판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항상 나의 사역을 격려하며 지켜봐주셨던 옥한흠 목사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그 분을 생각하며 이 책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더불어 호스피스와 전인치유 사역에 쓰임 받게 된 내 배경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싶다.
1991년 11월 어느 날, 교회의 중진들이 모이는 120인 기도회가 사랑의교회 소망관 4층에서 열렸다. 옥 목사님은 사랑의교회의 박모 권사님께 간증을 제안하셨다. 그때까지 교회에선 한 번도 없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당시 박 권사님은 암으로 투병 중인 한 권사님의 남편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는 교회 초기 교인 중 한 분이었다. 권사님은 간증 말미에 “우리들의 섬김에는 한계가 있기에 암환자들을 섬길 수 있는 목회자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셨다.
박 권사님의 간증을 듣고 도전(!)을 받았는지, 나는 다음 날 아침 패기 있게 옥 목사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뜸 “제가 환자들을 위한 사역을 해보겠습니다”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잔뜩 긴장하고 드린 제안이었는데, 옥 목사님은 너무나 쉽게 “그래, 해봐!”라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뛸 듯이 기뻤다. 박 권사님께 바로 연락을 드렸고, 사랑의교회 초창기 교인 몇 분과 함께 호스피스 전인치유 사역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중략)
그로부터 25년 후, 옥 목사님은 폐암으로 투병하시게 되셨다. 나는 병실이든 가정이든 거의 매일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옥 목사님께서 고통 중에도 평안하게 투병하시며, 날마다 매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25년 전에 나에게 시범을 보이셨던 환자 심방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다소 뜬금없었지만, 나는 옥 목사님께 그날의 일을 말씀드렸다. 이제야 목사님이 생각하시던 심방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지금도 심방할 때마다 항상 기본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명불허전 ‘고수’의 심방이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자주 떠오른다.
옥 목사님이 숨이 너무 가빠져 중환자실로 옮기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환자실 입구에서 목사님의 침대만 들어갈 수 있던 마지막 순간, 목사님은 내게 손을 흔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 목사! 너는 건강을 조심해야 해! 너는 건강을 조심해야 해!”
두 번이나 같은 말을 하시며 나를 쳐다보셨다. 그 눈빛 속에 담긴 수많은 말과 애정과 신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눈빛이 내게는 지금도 선명하다.
침대가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을 때, 나는 목사님이 사라진 중환자실 문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를 향해 “건강 조심하라” 하시던 그 말씀이 육성으로 들려주신 마지막 유언이라는 것을 눈치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게 저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옥 목사님이 중환자실로 옮겨간 지 3주쯤 흘렀을까? 폭풍이 몰아치던 9월 2일 새벽, 목사님의 큰아들 성호 집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 목사님, 아무래도 속히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부름이 내가 옥 목사님께 마지막 선물을 드릴 기회라고 여겨졌다.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옥 목사님의 절친이신 손OO 목사님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계셨다. 잠깐 목례로 인사한 후, 내가 먼저 서둘러 병실에 들어갔다. 곧이어 손 목사님이 들어오셨다. 이미 들어와 계시던 사모님과 두 아들과 함께, 다섯 명이 침대에 둘러서서 누워계신 옥 목사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씀도 할 수 없으셨지만, 인공호흡기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얼마나 평안한 얼굴로 누워 계시던지….
나는 임종을 지키는 것이 목사님께 마지막 선물을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존경했던 목사님의 임종을 함께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도리어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목사님의 마른 발을 붙잡고 목사님이 항상 좋아하셨던 시편 23편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찬송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손 목사님께서 기도와 위로의 말씀을 마치자마자 임종을 알리는 계측기 신호음이 들렸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죠! 오늘도 참 좋으신 일로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시던 옥 목사님의 심방 철학을 기억한다. 그 분의 신뢰와 사랑에 큰 격려를 받았던 자로서, 한국의 목회자들과 심방으로 봉사하는 모든 이들이 환자들을 섬기는 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기록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저자 서문」중에서
‘환자 심방’이란 사람들, 특히 교인들 중에서 현실적으로 건강에 염려가 되는 문제가 생긴 상황을 전제로 한다. 환자 심방은 환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또한 낙심한 감정을 영적으로 회복하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생각을 키워나가도록 교회가, 특히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도구로 삼아 전인적인 위로와 섬김을 통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p.28
인간은 병이 들어 힘든 시간을 보낼 때라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그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업어주심’을 환자가 경험하는 통로가 바로 환자 심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환자 심방은 약해진 환자가 힘들어할 때 업어주는 일과 같다.
---p.33
‘환자와의 소통’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마음가짐이다. 심방자는 심방 받는 환자 또는 사별자들이 자신을 압도하는 여러 가지 불안감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입장에 있음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특히 말기 환자는 죽음과 고통(통증)은 물론 치료비까지 불안해한다. 환자 또는 사별 가족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별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심방자가 한두 번의 대화로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일소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p.39
기차가 탈선한 것처럼, 병에 들거나 삶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모든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먼저 대상자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뿐이다. 그것이 대상자라는 기차를 기찻길에 다시 올려놓는 일이다. 기차가 탈선된 것처럼 무너진 인격이 존중받고, 이것이 긍지를 갖는 것으로 이어져 심방대상자 스스로 투병 생활을 잘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심방자는 ‘(환자인)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신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p.53
필자에게 가장 나쁜 심방자를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갈급한 환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이다. 성도들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환자나 그 가족에게 접근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설프게 조언하려다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심방대상자에게 어떤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은 충동이 들거든 먼저 이런 광고 문구를 기억하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심방자들의 사명은 영적인 심방 전문가가 되는 것뿐이다. 환자들의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문가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심지어 심방자의 직업이 의사라 하더라도 자신이 그의 주치의가 아니라면 조심해야 한다.
---p.76
심방대상자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는 일상적인 일, 사실, 의견, 감정, 기대(혹은 욕구) 중에서 상대방이 어느 수준에서 이야기를 하는지에 맞추어 같은 수준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자를 만날 경우,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은 그날의 자연 현상(날씨, 외부 환경, 심방대상자를 만나러 오는 길의 풍경 등)으로 말문을 트는 것이다. 심방대상자와 대화할 때 대상자가 말문이 트이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대상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즉, 경청하기다. 경청을 그저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여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듣기만 하면 양방향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상자의 말을 경청할 때는 자신이 경청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하고 긍정적인 반응 신호로 머리를 끄덕이는 방법이 있다.
---p.89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육체적으로 죽어야만 죽음을 겪을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작은 죽음을 숱하게 겪는다. 작은 죽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강을 잃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앞세우는 것, 젊음을 잃는 것 등이 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상황도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병들거나 늙어서 유용성(쓸모)이 떨어지는 상태도 그렇다. 젊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도 그러하다. 삶에서 이런 심리적 변곡점들을 겪었다면, 이미 작은 죽음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낭만적으로 말하지만, 성경은 죽음이 친구인 양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작은 죽음뿐 아니라 실제의 죽음에 직면하면 신앙적으로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할까?
---p.94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이런 환자들을 섬기는 것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고 천직으로 알았다. 무엇이 그리도 행복하냐고? 글쎄…. 세상에는 정서적,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 모두가 ‘죽음’이라는, 골리앗과 같은 큰 상대 앞에 선 것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죽음처럼 큰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이 일부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이들을 찾아갈 때마다 감사와 삶의 희열을 느낀다. 그 분들이 나의 섬김을 통해 마치 재앙과도 같던 고통의 삶에서 하나님의 평안과 소망을 가진 삶으로 옮겨진다! 그들과 그 가족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위로할 때, 그들이 남은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이토록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현장에 서 있는데, 어찌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 염려 중 가장 큰 근심을 안고 사는 환자들을 섬기는 이 사역은 그래서 행복하다.
---p.142
분노는 상실을 경험할 때 표면화되며, 간호와 진료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럴 때 가족이나 간호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등은 환자가 가지는 적대감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환자의 과민한 반응과 빗나간 분노의 표현을 환자 자체로 인격화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드러내는 이 시기의 분노를 그의 인격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해심을 갖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수용하여, 그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심방자는 분노하는 심방대상자를 비하하지 말아야 한다. 가령 “성질머리가 저러니 암이 걸렸지” 같은 표현이나 생각까지 자제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환자는 아예 마음을 닫아버린다.
---p.162
한 주가 지난 뒤, 더 힘들어하는 자매를 호스피스 협력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난 새해 첫 주일 새벽, 지금껏 누리지 못하던 평안 속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는 남편의 연락이 왔다.
영정 속의 자매는 나를 미소로 맞아주었다. 가족들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어서 도무지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 같던 장례식이었지만, 자매의 아버님께 양해를 구하자 딸이 원할 것 같다며 흔쾌히 허락하셨고, 모든 장례 절차는 예배로 이루어졌다. 남편과 자매의 형제자매들은 그녀가 부모님을 천국으로 초대했다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슬픔을 이기게 되었다며 내게 도리어 감사를 표했다.
---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