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종교와 예술 사이에서 생물학적 필연성을 가지고 생겨나는 산물”로 여긴다는 것은 인간은 왜 이미지를 제작하는지, 이미지는 인간의 실존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간의 주술적 실천, 신화, 종교, 과학은 이미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좇는 일이 형식주의 미술사 패러다임 내에서 가능할리 만무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대상 자체가 미술 작품을 넘어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종류의 이미지 - 공예, 주술적·제의적 인공물, 동전, 우표, 광고 이미지 등 - 로 확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심리학, 종교학, 고고학, 역사학, 철학, 민족·인류학적 방법을 함께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러한 융합적 연구 방법에 바르부르크는 ‘이미지학Bildwissenschaft/Wissenschaft von den Bildern’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 p.16-17, 김남시 「바르부르크의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중에서
논리적 문명, 그리고 환상적 방식으로 체현되는 주술적 인과의 공존, 이것이 푸에블로 인디언이 처한 혼합과 과도기의 상태입니다. 원시적인 인간, 즉 손으로 붙잡는 인간Greifmenschen에게는 계속 이어질 미래를 위한 활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들은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기체적 또는 기계적인 법칙에 따라 등장할 미래의 결과를 기다리는, 기술적으로 안정된 유럽인이 된 것도 아직 아닙니다. 이들은 주술과 로고스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들에게 익숙한 도구는 상징입니다. 손을 뻗어 붙잡는 인간과 머무르며 정신으로 붙잡는 인간Begriffsmenschen 사이에 상징적으로 결합하는 인간이 있는 것입니다. 이후 보시게 될 푸에블로 인디언의 춤은 이 상징적 사유와 태도 단계의 사례입니다.
--- p.109,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중에서
푸에블로 인디언의 일상과 축제를 찍은 이 사진들을 통해 이들의 가면 춤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사물의 존재 근거에 대한, 우리를 번민케 하는 거대한 질문에 대한 원초적·이교적 대답의 한 방식임을 보여주었다면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인디언은 스스로를 사물의 원인으로 변모시켜, 자연적 사건을 이해하려는 의지로 불가해성에 맞섭니다. 설명되지 않는 사태의 원인을 본능적으로 가능한 한 파악하기 쉽고, 가능한 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면 춤은 말하자면 춤으로 추어진 신화적 인과성인 것입니다.
--- p.144,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중에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와 현대판 이카루스, 즉 번개를 포획한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종 가능한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또한 거리 감각을 숙명적으로 파괴한 이들이며, 이들은 지구를 다시 혼돈으로 회귀시키려 합니다. 전보와 전화는 세계 질서 Kosmos를 파괴합니다. 인간과 환경의 정신화된 결합을 위한 고투에서 신화적-상징적 사유는 예배 공간 또는 사유 공간을 창출해냅니다. 그러나 훈련된 인간성이 양심의 제동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순간적인 전기적 접속은 그 공간을 강탈하고 말 것입니다.
--- p.149,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중에서
친애하는 박사님!
1923년 4월 21일 벨뷔 요양원에서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이란 제목으로 행한 제 강연 원고는 저의 특별한 허가 없이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도록 당부 드립니다. 이 강연에는 형식도 없고 문헌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이 강연은 상징적 태도의 역사에 대한 하나의 기록이라는 맥락에서만 어떤 가치를, 그것도 의심스러운 가치를 갖습니다. 이 주제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려면 근본적인 재작업이 필요합니다.
--- p.151, 「프리츠 작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인디언의 예술은 내게는 서로 다른 두 분야로 보였지만, 정작 그들에게 춤과 조형 예술은 통일된 활동이다. 이 두 예술적 표현은 사용하는 도구가 다를 뿐, 종교적 표상이라는 공통 원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종교적 표상은 광대한 규모의 사유를 품은 우주론적 세계관을 주술적으로 실천할 때 나타난다.
--- p.157-158,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여행 기억」 중에서
주술을 통해 영향을 행사하려는 이런 노력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와 유사한 살아있는 형상 속에서 전유하려는 시도다. 모방적 전유를 통해 번개를 꾀어내는 것이다. 현대 문명이 그러듯이 자성을 띠는 비유기적 장치를 활용하여 지면으로 유도해 소멸시키는 대신 말이다. 우리가 환경과 정신적-실제적 거리를 취하려 한다면, 이들은 모방적 이미지를 통해 [환경과의] 결합을 강제하려 한다. 이 점에서 환경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우리의 것과 구별된다.
--- p.159,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여행 기억」 중에서
바르부르크는 인디언 구역에서의 경험을 통해 뱀 상징의 의미와 생존력을 처음 목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대 세계가 창조하고 근세 유럽에서 살아남은 상징적 이미지를 다루는 역사가가 되었습니다.
--- p.179, 프리츠 작슬 「바르부르크의 뉴멕시코 여행」 중에서
우리는 유럽 역사 연구가인 바르부르크가 아메리카로부터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아메리카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해 그는 이러한 이중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르네상스인은 물론 인디언에게도 비교적 독립적인 사실의 두 영역, 즉 합리적 경험의 세계와 마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 세계가 갈등에 봉착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18세기 유럽일지라도 마술적 진리는 사실적 진리를 억누를 수 있습니다.
--- p.182, 프리츠 작슬 「바르부르크의 뉴멕시코 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