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열정 대신 권태로운 무관심만 남은, 현실에 안주하는 교회들은 사교(邪敎)의 먹잇감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 진리, 환대와 같은 핵심 가치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되거나 오도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요한 시대의 교회가 딱 이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요한이 이 편지들을 쓰게 된 연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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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옳고 그름에 대한 단순명료한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적그리스도, 빛/어둠, 진리/거짓, 의(義)/죄, 아버지의 사랑/세상의 사랑, 하나님의 영/세상의 영, 하나님의 자녀/사탄의 자녀. 요한은 이런 식으로 주위를 에워싼 상대주의의 안개에 휩싸여 타협하고 굴복한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희미해지기 시작한 경계선을 다시 또렷하게 긋는다. 그러나 요한은 진리에 대해 단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은 이 편지의 주요 주제다(참조. 요일 4:7). 이렇게 요한의 첫 번째 서신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반드시 사랑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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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서신서는 마치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듯이 명확한 목표를 향해 논리정연하게 주제를 풀어나가는 반면에, 요한의 첫 번째 편지는, 마치 서로를 중심에 놓고 빙글빙글 도는 춤이나 또는 별개의 주제와 선율을 교차 반복하는 교향곡처럼, 좀 더 유기적인 느낌을 준다. 생명, 빛, 진리 같은 몇 가지 중심 주제가 요한일서의 첫 장에 이미 등장한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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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제로 “빛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행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peripate?(4043)의 문자적 의미는 “걸어가다”(마 4:18, 새번역)이다. 그러나 흔히 관용적으로 개인의 생활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롬 6:4, 엡 4:1). 이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의 행위를 뚝 떼어서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행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또는 ‘그릇된 길로 내려가는 한 걸음’이라고 한다면, ‘빛 가운데 행하다’ 또는 ‘어둠 가운데 행하다’는 표현에는 한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나아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삶의 패턴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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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활동하던 시대의 사기꾼들은 의로운 삶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 적그리스도들은 우리의 생활방식과 영원한 영혼의 상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요한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말로 격하게 이 거짓 교사들을 공격한다. 그리스도와 맺은 신분적 관계로 인해 정말로 의로워진 사람은 의를 행한다(3:7). 그러나 행악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죄인이었던 ‘마귀’에게 속해 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한 거짓 교사들을 묘사하는 말로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것보다 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은 없는 것 같다.
---p.112
나는 평생 사역하는 동안 이런 증상들을 동반하는 급성 ‘디오드레베 병’이, 그것만 없었다면 건강했을 교회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성질은 어기차면서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슬그머니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들 뜻대로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대개 나쁜 신학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그릇된 가르침이 아니라 오도하는 것이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디오드레베 병’은 회중 전체를 감염시켜 지역 교회를 갈등과 분열과 죽음으로 몰고 간다.
---pp.194,196
어떻게 해야 냉정을 유지하면서 믿음을 위해 진지하게 싸울 수 있을까? 관건은 철저한 준비다. 어떤 논쟁이든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진실이다. 그러니 그것을 사용하라. 당신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교리적으로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알라. 또 거짓 교사들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라.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내라. 그들의 말을 듣고 그 함의를 분별하라.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우리와 동일한 성경과 동일한 복음을 가진 정상적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은 용어를 우리와 다르게 정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분연히 일어나라. 어쩌면 당신이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깜박이는 불꽃, 거짓에 속은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아니오’를 외치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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