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질 좋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영양소 들을 준비해주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찬양’이다. 육체도 영양소를 섭취해야 건강해지듯 영적으로도 좋은 영양소들을 섭취해야 한다. 필수 영양소가 들어간 음식물들을 통해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들을 섭취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영양제도 먹어줘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일반적인 음식 외에도 몸에 충분하고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체에 꼭 필요한 영양소들이 있듯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찬송이라는 영양소는 필수 영양 성분이다. 찬송이 없으면 그의 삶에 어딘 가는 고장 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pp.39~40
예배보다 우선인 것은 없다. 내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아도 그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영양분이 없다면 내 삶의 원동력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배 시간에 조는 한이 있더라도 예배는 계속 드려져야 한다. 예배가 멈추면 영양분도 끊어진다. 영양실조에 걸리면 일어설 힘을 잃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함께 드리지 못할 상황이라면 혼자서라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예배이다. 영성생활에 좋은 영양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마귀가 뿌려 놓은 씨앗들이 자라서 미움, 분노, 배반, 불신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 자신에게도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배를 올바르게 드리게 되면 죄에서 멀어지고 내 삶이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영적 생활에 아주 좋은 영양소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예배 중심으로 시간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길 바란다.
---pp.65~66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영적생활을 위해서 아주 좋은 영양소를 마련해두셨다. 바로 ‘예배’이다. 예배가 바로 드려지면 세상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고, 죄와 더불어 살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선지자의 꾸지람을 듣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예배는 하나님의 눈에 띌 수 있는 제일 좋은 기회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보고 계신다. 당신은 ‘받음’의 예배에서 ‘드림’의 예배로 변화됨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당신은 아모스 선지자의 꾸지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바른 예배를 시도하고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예배는 참 좋은 영양소임이 틀림없다.
---p.69
시편의 대부분을 썼던 다윗 역시 고난의 사람이었다. 그는 도망자가 되어 살았고, 오해와 누명 속에서 살았다. 언제 내 목에 원수의 칼날이 박힐지 모르고, 언제 내 등에 원수의 화살이나 비수가 꽂힐지 모르는 힘든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힘듦 속에서 그들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어느 쪽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를 구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 편에 섰던 그들은 행복한 승리자들이 되었다. 고난이 없었다면 그들의 지혜도 없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지혜도 이 고난 가운데서 생겨난다.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게 되는 지혜도 고난 가운데서 생겨난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오늘 내가 이 고난 가운데 있다면 그 고난의 시기를 지혜를 얻는 수련 기간으로 삼기를 바란다. 이 고난의 시기를 하나님과 친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는 기도의 기간, 예배의 기간으로 삼기를 바란다.
---p.88
마귀는 우리들에게 자꾸 긴장을 풀고 무장 해제해서 평안히 즐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영적인 전쟁에서, 삶의 무대에서 승리하려면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특히 마지막 날에 서게 될 심판대를 생각한다면 매일의 삶 속에서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긴장을 풀지 않으시고 경계를 느슨히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말이다. 긴장감이라는 말이 나쁜 뜻일까?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 팽팽하게 당기는 느낌이 나쁜 것일까? 과하면 문제가 되지만, 없어지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 긴장감이다. 우리는 편하면 다 좋다는 편리주의 시대에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신앙인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으시고 지키시는데 왜 우리는 마귀의 공격 앞에 아무런 긴장감 없이 살다가 크게 당하는가. 골리앗은 다윗 앞에서 아무런 긴장감도 없었다. ‘저까짓 게 감히 나를!’ 이란 안이한 생각에 편히 있었다. 그 결과, 골리앗은 긴장하며 달려드는 다윗 앞에 무너져서 명예를 더럽힌 거인이 되었다. 우리는 긴장감이 사라진 무장 해제의 시기를 살고 있다. 마귀는 시시때때로 틈을 노리고 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진보가 일어나지 않도록, 새로운 차원의 신앙생활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아서는데도 우리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다. 마귀가 쳐 놓은 ‘내일부터’ 작전에 넘어가 있고, 긴장감을 풀지 않고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평안과 힐링을 강조하는 시대이지만 우리를 위하여 영영소로 주신 이 긴장감을 버리지 말고 잘 활용해서 행복한 삶이 이어지길 바란다.
---pp.121~123
사랑하며 산다는 것,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 그게 믿음이고 순종이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꿇어앉아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해본다. 불순종 후 회개의 기회를 놓쳐버린 아담과 하와, 모세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울의 불순종 역시 스쳐지나간다. 자연재해를 심판의 도구, 경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예수님이 생각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기에 불행과 불안과 두려움이 다가올 때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시는데 모세와 같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 없어서 어쩌면 전염병이나 기근 혹은 전쟁이나 환경오염 속에서 우리의 돌이킴과 영성을 요구하시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성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순종이 약해지지는 않았는지 나를 돌아보면서 믿음과 순종의 영양소를 잘 섭취해보자. 그래서 건강한 신앙생활, 영성생활을 이어가길 바란다.
---pp.157~158
비록 세상은 성폭력, 비정상적인 성행위, 음담패설, 약자를 향한 괴롭힘이 가득하고 분배의 불균형으로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라도 그것에 휩쓸리지 말고,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고 강조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직장을 구할 때도 돈이 기준이 아닌 신앙생활이 가능한 직장인지를 따져보는 것, 사람을 사귈 때도 외모가 기준이 아닌 이 만남을 통해 나와 상대방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거룩함이다. 세상에 섞이지 않고 구별되어 사는 것, 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것.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하지 말라. 성경에 너무 많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내가 내리는 지금 이 결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결정인가? 그럼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길 바란다.
---pp.172~173
이 보복과 갈등의 시대에 예수님의 용서를 생각한다. 십자가에 달리셔 서도 용서를 말씀하신 주님, 하나님께 용서를 부탁하신 주님, 우리들에게 꼭 용서하며 살아가라고 부탁하신 주님을 생각한다. ‘용서’라는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 삶에는 분노와 원망, 억울함과 미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용서’라는 영양소를 주셨다. 분노와 원망, 억울함이나 미움을 없애주시기 위함이다. 나 자신이 용서받은 죄인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누군가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p.207
이 땅에서의 육적인 우리의 삶이 강조되다 보니 영혼에 좋은 음식들이 마구 버려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분 앞에 서야 한다. 풍성한 영적 행복의 삶을 위해서 존경심이 필요하며, 감사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 가까이 있는 이들을 향한 감사! 이 같은 감사의 삶이 이어지는 가운데 더욱더 행복한 신앙생활, 영적생활로 이어지길 기도한다.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