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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시리즈-02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56건 | 판매지수 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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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716g | 152*235*32mm
ISBN13 9791191438079
ISBN10 119143807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모네, 르누아르, 세잔, 반 고흐, 피카소, 칸딘스키……
예술의전당 이진숙과 함께 읽는 한국인이 사랑한 화가 34


팬데믹으로 가로 막힌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2021년 5월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카소전에 많은 이들이 찾아들고 있다. 탄생 140주년 특별전, 최다 작품 전시 등의 수식만으로도 화려하지만 단연 관심을 끄는 건 국내에 처음 소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대가의 화폭에 어떤 연유로 한국전쟁이 소재로 올랐는지도 궁금하거니와 왜 군인들은 가면을 쓰고 있는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질문해보게 된다. 여기서 미술책 집필과 대중 강연을 꾸준히 해오며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해온 이진숙은 훌륭한 도슨트가 되어줄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은 피카소뿐 아니라 그와 직간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던 화가들이 활동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작품을 다룬다. 특히 이 책이 속한 ‘더 갤러리 101’ 시리즈는 역사와 문화사조를 튼튼하게 세워 미술사의 흐름을 담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좋은 삶이 무엇인지 그림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화가의 삶을 알고 그림을 보는 일을 넘어 독자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시간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것이다.

‘더 갤러리 101’의 첫 번째 책 『인간다움의 순간들』이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낙원에서 쫓겨난 이들이 사랑, 돈, 권력과 같은 욕망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다양한 양상에 주목했다면, 두 번째 책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서는 사조상으로는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에 속하는 그림들을 통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개인’이 가장 먼저 겪었던 ‘고독’, ‘불안’과 마주해보자고 제안한다. 영원한 행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밀쳐두었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지 아닐까? 이 과정에서 책과 그림이 함께한다면, 우리는 좀 더 풍부하게 더 나은 쪽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갤러리 101’을 통해 이 믿음을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란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차례
들어가는 글 ─ 미술관에서 만난 101가지 인간 이야기
두 번째 책을 시작하며

I. 현대 생활의 영웅주의
34/101 진실은 좋지만 궁상은 싫다-라파엘전파
35/101 천국처럼 나른하게 지옥처럼 뜨겁게-라파엘전파
36/101 영원한 인간을 찾아서-장프랑수아 밀레
37/101 쾌락적 세속주의로의 대전환-귀스타브 쿠르베
38/101 당신은 아무와도 닮지 않았어요-에두아르 마네
39/101 만성적 권태의 대가-에드가 드가
40/101 사랑하는 사람은 움직인다-클로드 모네
41/101 더 풍성한 사회적 꽃다발을 꿈꾸며-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42/101 극장에서 그녀를 보았다-메리 커샛
43/101 댄디, 우아함이 직업인 사람-제임스 휘슬러
44/101 공원, 실험실이 되다-조르주 쇠라
45/101 내가 내 아들을 죽였다-일리야 레핀

II. 세기말, 아름다움과 고통에 물드는 시간
46/101 사과 한 알을 제대로 알고 간다는 것-폴 세잔
47/101 너 자신에 대한 애착을 잘라라-폴 고갱
48/101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빈센트 반 고흐
49/101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50/101 사랑이 죄라면, 모두의 죄-수잔 발라동
51/101 숱한 운명을 탕진한 사람-오귀스트 로댕
52/101 죽이는 여자를 사랑하는 이유-구스타프 클림트
53/101 두 번의 포옹, 두 번의 실패-에곤 실레
54/101 팜파탈이 되는 아주 쉬운 방법-알폰스 무하
55/101 악마도 상처 입은 시대-미하일 브루벨

III. 망치를 든 예술가들
56/101 별이 겨우 빛나는 밤-에드바르 뭉크
57/101 여자의 모습을 한 인간-파울라 모더존베커
58/101 소박해서 위대하고, 소박해서 위험하고-앙리 루소
59/101 생의 약동, 춤추는 사람들-앙리 마티스
60/101 그 여자 그 남자,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파블로 피카소
61/101 텅 빈 눈, 가득 찬 슬픔-아메데오 모딜리아니
62/101 불, 증오 그리고 속도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미래주의
63/101 환상 사지통은 환상이 아니다-표현주의
64/101 함께 고통하는 마음-케테 콜비츠
65/101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카지미르 말레비치
66/101 음악과 함께-바실리 칸딘스키
67/101 언젠가는 예술 없이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다-피트 몬드리안

참고한 책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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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추는 춤이 위대해지는 순간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 걸핏하면 남의 신혼집을 훔쳐보던 남자가 있다. 2만 8,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전후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평가받지만 망가진 사랑과 전쟁이 중독시킨 불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갔던 사람. 바로 에드바르 뭉크의 이야기다. 그는 매일 지옥을 경험했겠지만, 그림으로 재현된 그의 아픔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고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별이 겨우 빛나는 밤」)

이런 삶도 있다. “벽의 벽지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악평을 들으며 화단에 들어섰지만 살아생전 화가로서 큰 영광을 누리며 긴 생을 살았던 노대가. 스스로 품은 질문에 집중해 20년 넘게 수없이 많은 수련을 화폭으로 남기다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수련과 물의 경계조차 허물어트린 그림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 사람. 하나의 고정된 진리란 없음을 자신의 그림으로 제시한 화가 클로드 모네의 이야기다.(「사과 한 알을 제대로 알고 간다는 것」) 뭉크와 모네. 두 사람은 삶의 방식도 작품에 임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고독’이라고 부를 만한 숱한 장면 속에서 살았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군중, 집단과 거리를 둔 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보려는 ‘자발적 자기격리’에 가깝다. 삶이 고독해 그림을 택한 것이 아니라, 캔버스 앞에 홀로 있을 때 온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고독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은 제목이 암시하듯 저마다의 ‘고독’을 품은 화가와 작품의 이야기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데는 이 책이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이후인 소위 ‘근대’를 배경으로 삼기 때문이다. 특히 이진숙은 이 시기에 ‘개인’이 전면에 얼굴을 내밀면서 예술계에도 어느 유파에 속하지 않은 채 오롯이 ‘나’로 서보려는 노력이 다분했다는 점에 집중한다. 개성 있는 화가들이 홀로 추는 춤은 유례없이 다양한 문화사조를 공존케 했고, 우리는 그들 덕분에 풍부한 예술지도를 갖게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의 기획자를 넘어 삶의 기획자로

표지에 쓰인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나쁜 예감〉에서 다시 책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러시아의 전형적인 농민복 루바쉬카를 입고 한 사람이 뒷모습을 한 채 우뚝 서 있다. 그림을 보는 우리는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하지만 그가 확신이나 안정보다는 불신이나 공허에 사로잡혀 있음을 분위기상 짐작한다. 이진숙은 본문에서 이 작품이 스탈린이 집권하던 때에 발표됐다는 시대적 정황을 짚으며, 획일적인 기준을 앞세우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익명의 억눌린 존재로 가치폄하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러한 순간에도 개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때서야 비로소 개인은 자신이 놓인 좌표를 직시한 후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고 사회적 관행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실제로 말레비치와 함께 훗날 ‘추상미술’이라는 사조에 묶인 바실리 칸딘스키, 피트 몬드리안은 공통적으로 견딜 수 없는 현실과 스스로 단절하겠다는 선언을 내걸고 등장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예술 행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몬드리안은 현실에서 아름다움이 충분히 살아 숨 쉴 때는 더 이상 예술하는 이도,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고 없이 각박해지고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으니, 어쩌면 우리는 예술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회원리뷰 (56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주간우수작 나름의 문제가 있고 나름의 답이 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e******y | 2021.07.22 | 추천20 | 댓글22 리뷰제목
  미술은 언제나 흥미롭다. 미술 서적을 탐독하는 것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고 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며 배워나가는 설렘이 있다. 이 책 『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의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자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이나 『롤리타는 없다』 1,2권을 신나게 탐독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 책 역시 나의 미술 세계를;
리뷰제목

 

미술은 언제나 흥미롭다. 미술 서적을 탐독하는 것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고 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며 배워나가는 설렘이 있다. 이 책 『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의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자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이나 『롤리타는 없다』 1,2권을 신나게 탐독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 책 역시 나의 미술 세계를 확장시켜주리라는 기대에 들떴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름이 익숙한 예술가들에 대해서 익숙함이라는 표면 아래로 내려가 보게 했다. 새롭게 알고 배워야 할 사실이 여러 겹 나타났다.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낯선 이름들! 기대의 진폭이 더 커져 이야기 하나하나가 잘 습득된다. 34개의 섹터를 통과하며 익숙함과 낯섬을 오가는 사이 배움의 장이 확대되고 사유의 영역이 넓어졌다.

 

 

'시대'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어나가는 주요 축이었다. 라파엘전파에서부터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를 아우르는 이 거대한 예술의 스펙트럼에는 '시대'가 보인다. 거의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이 살게 된 시대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고 시대는 그들에게 '선택'을 하게 했다. 19세기 말의 혼돈 속에서 최우선의 선택은 과거를 부정하거나 과거와 단절하여 새로운 예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는 항상 현실의 세상과 엇박자가 나는 일이므로 찬사와 인정보다는 비난과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이에 대한 예술가 마다의 반응은 다르다. 비판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예술을 밀고 나가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더욱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탓에 고통과 불안에 함몰된 예술가들도 있다. 또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암흑의 시간이었고 예술가들은 이 험난한 '도전' 속에서 각자의 나아갈 바를 고민해야 했다. 모두들 저마다의 '응전'을 했고 그동안 예술은 전진하며 미술사는 계속 이어졌다.

 

 

34편의 예술을 섭렵하며 깊게 와닿은 이야기들을 적어본다. 익숙한 화가들을 새로운 코드로 찬탄하며 몰랐던 예술가들은 배움의 자세로 겸손히 영접한다. 단순한 정리를 넘어 이 주옥같은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나'와 연결 짓는다.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라파엘보다 더 진부해 보이는 라파엘전파

영국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에서 대면한 라파엘전파에 대한 첫인상은 기이했다. 라파엘로 이전의 미술을 잘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19세기 중반 번창하던 영국에서 활동하던 이 예술가들이 지향했던 순수하고 진실된 미술은 무엇이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 속 엘리자베스 시달의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다소 섬뜩했고 그 주변에 있던 로세티의 그림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이 지루한 듯 무심한 듯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같은 미술관에 전시된 윌리엄 터너와 헨리 무어에게서 느꼈던 실로 영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그 무엇을 이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묻게 되는 바, 라파엘전파가 동경하던 예술과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정책에 힙입어 발전 가도를 달리던 빅토리아 여왕 치하의 영국에 살았던 그들은 물질만능주의적 현실에 반기를 들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던 것 같다. '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다가 적당히 좌절해서 속물과 구별되는 것으로 만족했다'라는 문장이 딱 들어맞다. 들의 작품 세계가 잘 안 보이는 이유 중 하나, 믿기지 않을 만큼 상식을 벗어난 사생활이 더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 아닐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존 러스킨, 윌리엄 모리스 등 굵직한 이름들이 막장 드라마 같은 삼각관계를 만들어 내거나 얽혀 들어가는 통에 라파엘전파의 예술적 강령은 희미해져버린다. 내 머릿속에는 팜파탈의 원조가 된 그림과 이와 유사하게 몽롱하고 '불행하게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린 그림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중 딱 한 명, 윌리엄 모리스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순수한 사랑을 품어 결혼까지 한 여인과 존경해마지않던 로세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지만, 시대를 일깨우는 예술을 개척했다.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내 자리한 카페 '모리스 룸'에 앉아 있노라면 모리스가 추구했던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 되는 세상에 대한 꿈'을 실감하게 된다. 직물, 벽지, 가구 및 건축물 (레드하우스) 등으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여 일상 속의 예술을 실현하는데 몸소 앞장섰다. 게다가 시인, 소설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창한 환경운동가, '상식을 갖춘 혁명'을 주창한 사회주의 선전가 등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들었다. 그의 예술과 삶은 시공간을 넘어 나에게도 유효하다.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지 않거나 아름답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일체 집에 두지 말라'던 모리스의 말에 따라 삶과 예술의 일치를 꿈꾸어본다.


 


 

 

신화적 영웅은 사라졌다: 밀레와 쿠르베

이 책의 첫 장은 '현대 생활의 영웅주의'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데 장 프랑수아 밀레의 농촌 그림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낭만적으로 미화된 시골도 아니고 고된 일상에 매몰된 농촌도 아니다. 씨를 뿌리든 키질을 하든 추수가 끝난 밭에서 이삭을 줍거나 밭 한가운데 서서 기도를 하든 밀레의 그림은 정직한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밀레의 그림들 앞에서 경건해지는 이유가 있다.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가난과 소외로 고통당하던 고흐가 밀레의 그림에서 위안을 얻은 것처럼, 모두 한결같이 정직하고 진실된 삶을 추구했던 밀레의 꿈을 보기 때문이다. 이 위안과 진실의 출처는 평범한 인간의 다소 힘든 일상의 장면이다. 세상에 없는 신화 속 영웅이 숭배와 경탄의 대상으로 군림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때로는 남루하고 지치기도 하는 '인간'이 예술 안으로 들어설 때가 된 것이다. 산업화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는 듯 밀레가 바르비종으로 들어간 것과는 달리, 쿠르베는 달라지고 있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종교와 이상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오르세 미술관의 1층 쿠르베의 전시 공간에서는 여러모로 당황하게 된다. 모두들 <세상의 기원>은 곁눈질만 하면서 지나가고 <오르낭의 장례식>과 <화가의 작업실> 앞에서는 그 장대한 규모 속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기 위해 한참을 멈춘다. 부근 전시실에서 쿠르베의 물고기 그림, 해안 그림, 설경을 그린 그림, 여인을 그린 그림 등을 보면서 쿠르베가 주창한 사실주의를 가늠해본다. 신화나 영웅을 버리고 풍경이든 인물이든 사물이든 평범한 것을 주제로 삼아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려 비난을 받았다. 삐딱하게 기대어 누운 채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쿠르베의 자화상을 보면, 세상이 뭐라고 비판하든 신경 쓰지 않고 풍요로움 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마음껏 그리며 살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부유한 집에 태어나 한껏 인생의 쾌락을 즐겼던 '봉 비벙bon vivant' 이었다 한다. 낭만주의에 맞서 '삶의 풍부한 현상 자체'에서 눈에 보이는 '사실'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지극히 세속적인 쾌락 속에서 사실주의의 장을 열었던 쿠르베가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 한 장에 의해 인생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여서 참 아이러니하다.



 

 

마네 스타일, 이게 어때서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을 예술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온갖 비난과 몰이해를 당한 화가라면 마네를 빼놓을 수 없다.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피리 부는 소년> <폴리 베르제르의 바> 등 전통에 반기를 드는 그림들을 내놓으면서 에두아르 마네는 회화의 오래된 관행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이에 세상은 경악했지만, 까다롭고 탁월한 미술 비평가이기도 했던 샤를 보들레르는 마네를 열렬하게 지지했다. 이 책에서 발견한, 마네를 단연코 잘 설명해 주는 키워드는 '개성'이다. 보들레르가 주창한 현대 생활 영웅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스타일 또는 스타일에 대한 의식, 다시 말하면 개성이 필수적이다. 마네의 개성에 힘입어 평범한 주제가 예술로 격상된 것이다. 같은 시대의 아카데믹한 그림들과 대조해보면 마네가 전통과 관행을 얼마나 강력하게 뒤엎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의 주인공들은 보편적인 그 당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 '이게 어때서?'라고 되묻는다. 이 물음은 화가의 스타일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던 시대를 향해 던진 마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스타일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되는 모더니즘의 개시를 알린 화가가 바로 마네였다. 세잔도 이를 알고 있었다: '우리의 모든 르네상스는 <올랭피아>에서 시작됐다'


 

 

드가, 발레리나보다는 압생트

드가가 그린 파스텔톤의 발레리나 그림을 보면 첫눈에는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림의 한구석에 왜 남자가 그림자처럼 그려져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현실 고발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사실, 드가는 여성 혐오자이자 인간을 싫어하는 염세가에다 독설가로 정평이 나있었기에 그저 아름답게만 그림을 그렸을 리 없다. 그러나, 드가가 현실을 신랄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덕택에 그전 어느 때도 없었던 탁월한 그림들이 탄생했다. <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 <언짢음><멜랑꼴리> <다림질하는 여인들> 같은 드가의 그림은 어딘가 친숙하며 공감을 일으킨다. 이렇다 할만한 격변 없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삶을 살게 될 때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무엇일까. 지루하고 지루하다. 드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앓는 '권태'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개인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들처럼 우리 평범한 개인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 삶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단조롭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생활로 지겨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르누아르의 그림보다 무표정하게 굳어내린 권태를 직시하게 하는 드가의 그림에 더 마음이 간다.


 

 

모네의 수십 번을 보아도 아름다운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둘러보는 도중,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호화롭고 넉넉하게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모네의 수련 그림이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1층 전체를 두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독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풍요로운 환경을 누린 덕분 아닐까. 수련, 루앙 대성당, 포플러 나무, 건초 더미 등 여러 대상을 수십 점씩 연작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도 모네에게는 풍족한 삶이 보장되었기 때문 아닐까. 꽤 시니컬하게 모네를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모네의 위대함을 배운다. 대상은 하나이지만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모습을 그리면서 모네는 갈등했다. 연작 하나하나마다 각 순간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면 대상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인가. 특히, 루앙 대성당을 30점여이나 그렸다니 모네는 언제 그만 그려야 할지 고민이 컸던 모양이다. 모네 스스로 발견한 답이 < 네 그루의 포플러 나무>에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실재하는 나무와 물에 비친 나무가 이렇게까지 데칼코마니 수준으로 똑같은지 의아해진다. 모네가 실재와 허상을 큰 차이 없이 그려냄으로써 플라톤의 이분법이 깨어졌다! 프루스트도 동의했다. 진실은 다양한 현상 속에 드러난다고. 반복하면서 달라지는 무수히 많은 현상은 절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는 모네에게서 (그리고 프루스트에게서) 어떤 대상의 본질은 A이다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음을 배운다. 수시로 변하는 나 자신 또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무엇이 나의 또는 그들의 진실이며 본질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고정된 이미지를 찾지 말자.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야말로 나와 그들, 그리고 삶의 진실이자 본질과 다를 바 없다고 모네가 말해 준다.



 

 

루소의 소박함이 위험하다는 것은

나는 독학의 예술가 앙리 루소를 매우 좋아한다. 그의 이름 앞에는 '세관원 le Douanier'이라는 수식이 붙어 있는데, 낮에는 말단 관리 세관원으로 일하고 밤에 혼자서 그림을 그렸던 루소의 성실과 열정에 대한 경의로 읽힌다. 마흔 무렵이 되어 은퇴하고 나서야 전업 화가가 될 수 있었고 이때도 여전히 혼자서 열심히 그렸다. 미술에 대해 배운 게 없었기에 루소의 그림은 기성 회화와 다른 '소박한 naive' 참신함이 가득했다 (영어에서 'naive'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뭘 잘 모른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루소에 대해 '소박파'라는 이름이 붙는 것도 유쾌하지 않다). 원근법도 파괴되었고 그저 자신의 눈으로 본 세부사항을 꼼꼼히 그리다 보니 구성의 법칙도 없다. 그러나, 루소의 무러 잘 모르고 그려낸 소박한 그림에 피카소와 칸딘스키가 감동했고 피카소는 '루소의 밤'을 열어 지지를 적극 표현했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는 검정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거의 실물 크기로 그린 그림이 하나 있다. 비례에 맞지 않게 큼직한 두 손과 어깨, 매우 작은 두 발 그리고 세세하게 패턴이 표현된 커튼과 나뭇잎들... 제목은 <여인의 초상화>, 회화의 규칙을 깨뜨린 루소의 이 소박한 그림을 피카소가 단돈 5프랑에 사주었다 한다. 드디어, 루소는 여러 편의 정글 그림으로 유명세에 올랐다.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품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루소 자신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우거진 정글에는 실제로는 함께 서식하지 못할 동식물이 가득하다. 특히, <꿈>에는 벨벳 소파에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여인도 등장한다. 나는 이 장면을 루소의 또 다른 유명한 그림 <잠자는 집시 여인>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아왔다. 동물과 인간, 자연이 공존하는 비현실적이지만 유쾌하여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말 그대로의 상상화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 그림에 대해 혹독하다. 나폴레옹의 오리엔탈리즘의 축소판인 듯 백인 남성의 제국주의적인 욕망과 약육강식의 강대국의 논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있다고 비판한다. 루소의 소박함이 위대함보다 위험함으로 바뀐다. '위험하고 좋지 않은 꿈'인데다가 '섬세함'이 결여된 루소가 그려낸 낙원은 타인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부여한다. 오랜 세월 팍팍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좇던 루소가 이 그림을 그리며 생각하던 것은 단순하고 소박하게 원시적 자연 아니었을까. 나 역시 섬세함이 결여된 소박한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에 루소의 꿈에 내재된 차별적이고 부당한 면을 파악하지 못하는 걸까.


 

 

그늘 속에서 빛나는 여성 예술가들

여성 미술사가가 집필한 미술사의 매력 중 하나는 여성 예술가들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어김없이 이 책에서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거나 또는 아예 이름을 처음 듣는 여성 예술가들이 당당하게 한 섹터씩 차지하고 있다. 우선, 19세기 말 프랑스 여성 화가인 메리 커셋이 등장한다. 가정성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공간이었던 거실과 식탁 또는 극장의 관람석을 배경으로 여성을 그렸지만 일반적으로 기대되었던 '보여지는' 여성의 모습은 아니다. 우키요에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의 의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독창적인 작품을 그려냈다. 여인의 얼굴이 아니라 그저 물, 자연을 보게 하는 그림 <여름날>, 평온하지만 다채로운 색채로 일렁이는 물의 흐름이 바로 매리 커셋이 조용하게 일구어낸 혁명을 대변하는 것 같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잔 발라동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남성 화가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여성' 이름이라 눈길이 갔고 바로 옆에 걸린 몽마르트르 풍경을 그린 화가 '모리스 위틸로'가 바로 수잔 발라동의 아들이라는 설명에서 관심이 증폭되었다. 알고 보니 두 모자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발라동의 인생을 압축한다면 서커스 단원, 세탁부, 모델, 화가 그리고 수많은 스캔들과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 될 터이고, 모리스는 화가보다 정신질환이라는 단어가 앞선다. 그럼에도 수잔 발라동의 그림은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의 사랑( 아들 모리스보다 한 살 더 어린 남자와의 연인 관계)에 대해 세상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에 대해서 ( 이브만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전통적 그림들과는 달리) 아담도 이브와 함께 선악과를 따는 그림으로 화답했다. 세상의 몰이해와 비난에 아랑곳 않고 꿈을 가지고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갔다. 결국은 나이가 들었고 사랑은 떠나갔다. 곁에서 지켜야 하는 아들밖에 남지 않았지만 발라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후회도 원망도 없다. 62세 때 그린 <자화상>에서 발라동의 눈빛이 말해준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낸 화가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두 점의 자화상이 너무 다르다. 불과 4~5년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장난스럽게 자기 머리 위에서 성스러운 빛이 돌듯 꽃 피는 것을 그린' 자기 긍정적인 <자화상>과 '마치 관을 닮은 판형의 그림'으로 자신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어두움을 보여주는 <동백나무 가지를 든 자화상>. 파울라 모더존베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Ich bin ich 나는 나이다'라고 선언,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파울라였지만 (부엌-아이-교회를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여성다움'에 대한 내외적 압박으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 여성이면서 게다가 예술가, 이 타이틀은 수많은 장애에 부딪쳤지만 파울라는 최대한의 단순함으로 위대함을 드러내는 미술을 추구했고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그려냈다. 성모 마리아의 성스러움도 아니고 비너스의 에로틱함도 아니고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자연과 하나 된 시간 초월의 존재'를 가진다. 팜파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디기탈리스와 양귀비조차 파울라의 그림 속 여성(인간)이 들고 있으면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빛난다. 여성다움의 제약을 가하는 사회에서 예술가다움으로 자신의 자리를 정립하려고 애썼던 파울라가 산후 후유증으로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나치 독일 시대를 양심적으로 파헤치는 독일 여성이라면 늘 한나 이렌트가 생각나지만, 이 책에서 여성 예술가를 한 명 더 알게 되었다. 케테 콜비츠는 '시대의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강렬한 재능'을 가진 연민과 공감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죽은 자식과 슬픈 부모'를 그렸고, 전쟁의 암운이 독일 사회를 덮을 때 전쟁을 반대하며 여성들의 평화 연대를 제안했다. 콜비츠 자신도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었기에 그녀의 그림은 시대의 아픔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자화상에 나타난 자기성찰적인 모습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견주어지기도 하는데 양심적 예술가로서의 자기반성의 빛을 읽을 수 있다.





 

 

찬란하지 못해도 별

아무리 창의력이 폭발하는 예술가이더라도 어두운 시대를 관통해야 한다면 삶과 예술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에곤 실레도 세기말적 시대의 암울을 온 삶으로 껴안아야 했던 예술가이다. 빈의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서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을 동시에 보았을 때 좀 의아했다. 클림트의 금박 장식을 두른 에로틱한 그림과 검은색과 살색으로 공포와 불안을 뒤범벅해놓은 실레의 그림이 어떻게 똑같은 나라에서 나왔을까. 시대가 달랐던 거였다. 무사안정한 상태에서 야망도 변화도 없어 오히려 권태와 공허가 판치던 클림트의 시대에는 억눌린 욕망과 왜곡된 심리가 예술로 표출되었고, 반면 자살과 죽음의 이야기가 난무하며 쇠락의 길로 접어든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실레는 파멸과 죽음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렸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실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든 어린 소녀를 그리든 자신과 연인을 그리든 대상의 몸은 뒤틀려져 있고 '부도덕한' 분위기 일색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면서도 실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계속 그림을 그렸지만,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에 그의 삶도 예술도 일찍이 끝나고 말았다. 밝은 데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실레의 이야기는 잊고 싶을 만큼 우울하다. 내가 보기에 실레의 생전의 삶은 고흐에 견줄 만큼 비극적이다. 역시 고흐처럼 사후에 멋진 미술관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기리고 있지만 이 슬픔과 외로움, 고통으로 살다간 예술가에게 바치는 사후의 찬사는 그저 공허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화가 미하일 브루벨도 세기말의 어둠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은 이 책에서 가장 심란하게 와닿는다. <상처 입은 악마>와 <여섯 날개의 세라핌> 등 '악마'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은 시대의 병을 앓는 한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여준다. 에드바르 뭉크는 이름 자체가 어두움과 동의어가 된 것 같다. 뭉크가 그리면 사랑조차 외롭고 무섭기까지 하다. 자신의 바람과 얄궂게 어긋나는 사랑을 겪으며 그 괴로움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았다. 제 발로 정신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사랑의 상처로 고통을 당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별이 빛나는 밤>과 <생 클루의 밤>에는 은둔자처럼 살면서 자신의 고통에 침잠했던 뭉크의 모습이 담겨있다. 게다가 어두운 시대를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에서 살아났지만 히틀러의 파시스트적 폭력이 또다시 절망과 고통을 몰고 왔다. 이에 대해 뭉크는 마치 죽음을 먹어 치우려는 듯 단호한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다. 나보다 더 험한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동정을 보내면서 동시에 위로를 받는다. 뭉크가 커다란 고통을 미리 체험하고 그림으로 그 실체를 알려준 덕분에 우리는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고통의 대가' 뭉크가 있기에 우리도 우울하다고 불안하다고 질투가 난다고 고독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다.

 

 

뭉크가 어슴푸레하고 무거운 색채로 고통을 그렸다면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가 그려 놓은 고통의 색채는 현란하다. 손이 절단된 군인과 여성 누드가 한 폭에 그려져있다. 전쟁으로 정신적으로 불구가 된 자신의 모습과 전쟁 이전 자신이 표방했던 원시주의를 나란히 표현함으로써 전쟁이 개인의 삶에 가한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의 광기가 파괴시킨 인간을 그리기 전에 키르히너는 독일 표현주의 단체인 다리파를 주도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로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및 약물남용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히틀러가 개최한 퇴폐미술전으로 그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공개적인 조롱에 심한 모독감을 느끼던 키르히너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비극적이다 못해 허탈감마저 도는 키르히너의 삶을 듣노라면 예술가라면 으례껏 시대를 뛰어넘으리라고 바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전쟁이나 무참한 시대의 분위기에 상처받는 연약한 인간이니까.

 

 

파시즘이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서 활개칠 수 있었던 데에는 과격한 예술운동도 일조한 게 아닌가 싶다. 예술은 보통 시대의 잘못된 관습을 고발하고 동시대의 사고를 한 발짝 앞서가는 진취성을 보인다지만,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는 시대가 잘못된 흐름을 타도록 선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젊은 예술가들이 표방한 미래주의는 이탈리아가 과거의 전통에 얽매인 결과 근대화가 늦어져 유럽의 후발국으로 뒤처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현재를 바꾸기 위해 '속도에 대한 사랑'을 설파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찬양하고 산업화의 속도를 내는 장면들에 열광했다. 여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으나, 이들이 전쟁을 세상에서 유일한 위생학으로 두둔하며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지지한 것은 안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해체되면서 자신들이 추앙하던 미래에 대한 꿈을 부정당했다. 더군다나, 전쟁을 옹호하며 극단으로 흐른 탓에 이들의 재능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움직임과 속도를 표현한 조각 <공간에서의 독특한 형태의 연속성>처럼 혁신적인 작품들을 낳았는데도 말이다.

 

 

 

 

 


 

 

생이 약동하는 마티스의 춤

마티스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2018년 9월, 한 방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는 마티스의 <댄스 La Dance>를 보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파리 근대 미술관을 찾았을 때이다. 미술관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이유로 마티스의 방이 폐쇄되었으므로 볼 수 없다,라는 안내에 망연자실해졌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간략하고 경쾌한 선에서 오는 힘'과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색채'가 들려주는 우아함을 보길 원했다. <빨간 방>에서 비롯된 마티스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레드빛이 넘실거리는 다른 그림들로 이어졌는데 마티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빨강이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선사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평생 몰랐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마티스의 경쾌한 그림에 설레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거나 한 명씩 자신의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그림들은 내 안에 쌓여있는 어떤 흥겨움을 향한 동경에 불을 붙였다. 마티스는 분명 본성이 유쾌하고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어야 하는 혹독한 시대를 살면서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예술'을 추구했으니 말이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의지가 녹아있어 마음 깊이 파고들고야 마는 마티스의 선과 색! 앙리 베르그송의 '생철학'에 영향을 받았고 그중 '생의 약동' 개념에 심취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운다. 그러므로, 진정 마티스를 알기 위해서라면 무지 어렵다는 베르그송의 철학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


 

 

말레비치, 내 예술이 잘못되었다면

<모나리자>에 버금갈 정도의, 돈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고들 하는 (비록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모국인 러시아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그림은 어떻게 생겼을까. 거의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검은색 사각형이고 제목도 <검은 사각형>이다. 한번 보고서는 잊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누구나 색칠할 수 있을 듯한 검정 사각형 하나를 그려놓고 예술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다니 뒤샹이 변기를 떼어와서 <샘>이라고 부른 것과 동급이다. 밀레비치는 그림에서 모든 현실적 요소를 제거하면서 르네상스 이후 회화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거부했다.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의 색면이나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4차원의 세계에서 유영하는 기하학적 도형을 표현하며 '예술의 죽음'을 선언했다. 밀레비치가 주창한 절대주의는 이처럼 회화라 칭할 수 없는 회화를 통해 세계의 참된 실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절대주의에 자신감이 넘쳤던 말레비치는 러시아 혁명을 새로운 세상의 건설로 보았다. 그러나, 스탈린 통치 이후 그린 <나쁜 예감>에서 말레비치는 혁명을 통해 절대주의를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던 자신의 열정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방가르드 예술이 부정되는 전체주의 독재에서 발견한 것은 자신이 기대한 세계와 전혀 다른 현실 사회주의였다. 자신이 지지했던 사회는 개인이 얼굴도 이름도 방향성도 없이 익명의 존재로 폄하되는 체제였다. 자신이 받들었던 사회에서 형식주의자로 낙인찍혔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옳다고 믿으며 이상이라고 바라왔던 것이 결국 자신을 무너뜨렸을 때 그 고독과 공허함은 아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눈코 입도 없이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이지만 노랗고 파랗고 빨갛게 밝은 색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칸딘스키의 정신과 영혼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위대한' 이유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주제나 소재에 있어서 재현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말레비치의 영향을 받았다는 바실리 칸딘스키는 아예 주제나 소재를 없애고 '영혼의 상태'와 '정신성을 고양시킬 수 있는 그림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믿었다. 청기사파 (푸른색은 무한한 정신, 이상적 존재, 구원을 갈구하는 심리를 표현한다고 믿었기에 푸를 청이다)를 결성하여 추상표현주의를 활짝 열었다는 업적이나 음악을 회화에 담았다는 사실 보다 칸딘스키의 '영혼'과 '정신'에 더 큰 관심이 생긴다. '대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주체가 파악한 세상의 요소를 조화롭게 재배치' 하는 '완전한 추상'이라는 개념이 심히 매력적이다.'내적 필연성에 따라 어떤 본질적인 것들을 그리는 것은 영원하다',라는 어려운 말속에 완전한 추상이 압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탐독하면서 '형식은 추상적이어도 고유한 내적 소리로 감각을 자극'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켜 관람자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칸딘스키의 그림에는 색이 가득하다. 마치 자유롭게 표류하는 공기처럼 또는 흐르는 물처럼 다채로우면서 아름다운 색들이다.


 

 

몬드리안에게서 배우는 진화

작년부터 몬드리안의 전형적인 직선과 삼원색으로 이루어진 그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예술적 기법이나 사상에 앞서 몬드리안이 파리, 네덜란드, 뉴욕 등 자신에게 알맞은 환경으로 움직여 다녔다는 사실이 그의 그림에 반영된 것 같아서였다. 이번에는 몬드리안의 '진화'를 알게 되었다.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말하는 (다윈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진화'를 몬드리안은 예술적 진화로 변환시켰다. 사물을 보는 시각의 발전이자 사물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몬드리안의 진화이다. 브라크의 입체주의에 크게 충격을 받아 입체주의적 색채를 시도했지만 곧 독창적인 예술적 진화를 거듭, 현실에서 본질을 추출하는 추상화의 경지로 '상승'했다. 제1차 세계대전도 몬드리안의 진화를 막지 못했다.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 ' 데 스틸 De Stijl' 모임을 결성하여 '현실에 항구적으로 내재된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겠다는 신조형주의 이론을 정립했다. 이번 진화에는 수학자 스훈마커르스의 영향이 가세했다. 이로써 몬드리안에게는 직선과 원색만 남았다. '본질 중의 본질'로서의 육체-영혼-이성을 각각 빨강-파랑-노랑으로 표현한 것은 단순하지만 지루하거나 정적이지 않다. 비례의 원리를 적용하여 색채의 면의 크기를 다르게 했기에 오히려 활기가 더해졌다. 몬드리안의 움직임 또는 진화의 마지막 여정은 뉴욕에서 펼쳐졌다. 미국 추상화가협회를 조직하고 페기 구겐하임의 화랑에서 잭슨 폴록을 발탁하는 등 유럽 예술가로서 미국 예술계의 '진화'를 이끈 것이다. 가로세로의 직선으로 뻗어있는 뉴욕의 거리는 몬드리안의 그림과 닮았다. 이제 몬드리안은 부기우기 재즈를 들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도 경쾌함이 더해져 무채색이 사라지고 빨강, 파랑, 노랑이 더욱 역동적인 리듬을 자아낸다. '빨강, 노랑, 파랑의 크고 작은 사각형이 반복적으로 배치됨으로써 이루어진 화면은 색들이 가지는 고유한 팽창감과 수축감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예술이 삶과 하나가 된 기쁨을 자신의 색으로 마음껏 표현하고 있다. 몬드리안이 추구했던 예술적 진화의 종착지점은 삶의 희열에 있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맥은 '관계'와 '연결'이다. 문득 올해 3월 말 찾았던 한국 미술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시대는 일제 강점기가 중심이고 이상,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천경자 등 내로라하는 한국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그림과 글을 탄생시켰다. 화가와 화가, 화가와 문필가가 서로 연결되며 다차원적인 관계를 형성해가는 가운데 한국 근대 예술이 확장되고 성장했다. 서구의 근현대 예술에서도 독자생존하는 예술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가장 흥미로운 관계로는 로댕과 발자크이다. 수려한 정원이 딸린 멋진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파리의 '로댕 미술관'에는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의 문> 말고도 <발자크상>이 있다. 이 조각을 만들면서 로댕은 자신의 예술적 창조를 완성시켜나갔다. 일리야 레핀이 톨스토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레핀은 착취당하는 인부들이나 광기에 몰려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처럼 주로 어둡고 섬뜩한 그림을 그린 줄 알았는데 성자 같은 톨스토이의 모습도 화폭에 담았다. 레핀은 톨스토이를 만나면서 '예술은 오직 인류애를 위한 것'이라는 대문호의 예술론에 감명을 받아 톨스토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작품을 그렸다 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는 샤를 보들레르의 영향력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친했던 마네뿐만 아니라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예술가들 중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영웅주의'라는 개념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제임스 휘슬러는 보들레르가 지지하는 '댄디'를 탐미주의적 그림으로 더없이 멋지게 구현해 놓기도 했다. 고흐가 그린 우체부 롤랭의 초상화도 보편적 영웅이라는 개념으로 읽을 수 있다. 일인 의자에 폼 나게 앉은 롤랭 씨는 '평범한 개인도 분명한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한, 고흐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밀레의 평범한 농촌의 일상이 그려진 그림을 좋아하고 여러 편으로 모사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영웅 못지않게 평범한 개인도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라는 개념은 보들레르에게서 시작되었다. 한편, 마르셀 프루스트도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특히 르누아르의 '꽃다발' 그림에서 두 사람의 연관성 내지 대조가 흥미롭다. 프루스트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수평적 조화를 지향하는 '사회적 꽃다발'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르누아르는 다양한 꽃들이 모여 있는 정물을 그렸는데 실제 삶에는 차별과 편견의 일화가 적잖다. 신분과 직업이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마냥 행복해 보이는 르누아르의 그림들이 진정성을 상실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영향력 있는 이름으로 앙리 베르그송을 기억할 텐데 (내가 좋아하는 ) 마티스와 몬드리안이 둘 다 그의 생철학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본문만으로도 430여 쪽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이지만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을 읽어내는 것은 결코 힘들지 않았다. 나에게 잘 맞는 미술사 서적이 늘 그렇듯이 오늘은 여기까지만,이라고 책을 덮어야 하는 순간마다 아쉬움이 컸다. 책의 중반을 지나 끝에 다가갈수록 아껴 읽고 싶었다. 예술가 한 명 한 명에 대해 촘촘히 생각해 본 바를 여기에 다 담을 수 없는 아쉬움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쇠라, 세잔, 고갱, 로트레크, 클림트, 무하, 피카소, 모딜리아니 .... 너무나 유명한 이 예술가들에게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넘쳐나왔다. 이 책으로 들여다보았던 무수히 빛나는 인생들 그리고 그들이 탄생시킨 주옥같은 작품들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시대에서 과제를 찾아냈던 사람들이었다. 온갖 문제를 안고 있는 시대를 그저 못마땅해하거나 비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발전과 변화의 작업을 자발적으로 추진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들은 세상의 몰이해와 비판을 한 몸에 받으며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예술가들 각자의 방식은 달랐지만 세상과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질문을 제시하고 자신만의 답을 구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고독했고 위대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이들이 내게로 왔다는 사실에도 큰 의미가 부여된다. 그들의 삶과 예술을 지켜보며 그들의 선택에 주목한다. 험난한 개인사이든 비극적인 시대의 부침이든 그들 앞에는 장애가 있었고 그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옳고 그름은 없다. 고민했고 모색하며 역동적인 길을 찾았다. 감히 이들에게서 한수 배우려 한다. 전 세계가 감염병으로 흔들리는 요즘, 과연 이 혼돈에 끝이라는 게 있을까 무기력과 절망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느 방향으로도 걸음을 내디딜 수 없어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예술가들이 알고 있다. 나의 성향대로 현실을 바라보자. 잘 되고 안 되고를 미리 기대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이 위험하고 험악한 시간 속에서도 자꾸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의 꿈과 계획은 무엇이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책의 예술가들이 답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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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화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g*l | 2021.09.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진숙, 그녀의 책을 읽으면 그녀의 글쓰기 매력에 푹 빠진다. 그림을 보는데 좀 도움을 얻으려고 시작했던 그녀의 책읽기가 이제 그녀의 글쓰기 매력으로 인해 책장을 넘기고 있다. 이진숙 작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수는 없으나 그녀의 책을 통하여 만난 작가 이진숙은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시대를 보는듯  하다. 그녀의 책에서 역사적 약자들이 더이상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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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그녀의 책을 읽으면 그녀의 글쓰기 매력에 푹 빠진다. 그림을 보는데 좀 도움을 얻으려고 시작했던 그녀의 책읽기가 이제 그녀의 글쓰기 매력으로 인해 책장을 넘기고 있다. 이진숙 작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수는 없으나 그녀의 책을 통하여 만난 작가 이진숙은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시대를 보는듯  하다. 그녀의 책에서 역사적 약자들이 더이상 약자이지 않고 당대의 훌륭한 투사들로 변모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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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 이진숙 / 돌베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글***재 | 2021.08.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 이진숙 / 돌베개               더 갤러리 101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예술의 전당 이진숙과 함께 읽는 한국인이 사랑한 화가 34 역사와 문화사조를 튼튼하게 세워 미술사의 흐름을 담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좋은 삶이 무엇인지 그림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더 갤러리 101'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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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 이진숙 / 돌베개

 

 

 

 


 

 

 

더 갤러리 101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예술의 전당 이진숙과 함께 읽는 한국인이 사랑한 화가 34

역사와 문화사조를 튼튼하게 세워 미술사의 흐름을 담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좋은 삶이 무엇인지 그림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더 갤러리 101' 시리즈. 그 두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더 갤러리 101’의 첫 번째 책 『인간다움의 순간들』이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낙원에서 쫓겨난 이들이 사랑, 돈, 권력과 같은 욕망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다양한 양상에 주목했다면, 두 번째 책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서는 사조상으로는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에 속하는 그림들을 통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개인’이 가장 먼저 겪었던 ‘고독’, ‘불안’과 마주해보자고 제안한다.

_보도자료

 

 

이진숙 저자는 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루카치의 소설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요, 러시아 여행 중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에 크게 감명 받아 평생의 업으로 여겼던 문학을 등지고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열정 저한테 없는 거라, 존경스럽지 말입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귀국 후 화랑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고 하네요. 현재는 토털 아트 컴퍼니 ‘인터알리아’에서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 중인 이진숙 저자. 그녀의 안내를 따라 저마다의 '고독'을 품은 화가와 작품의 이야기 만나보겠습니다!

 

리딩투데이 리투챌린지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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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님의 글쓰기 매력에 푹 빠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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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 | 2021.09.02
평점5점
앞으로 나의 미술관 여행에 확실한 가이드가 될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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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 2021.07.27
구매 평점5점
기대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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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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