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는 일본의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인 도토루 커피에서 했는데, 며칠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같은 사람이 매일 정해진 시간대에 같은 메뉴를 시키러 온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일본인에게 하면서 신기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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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는 직장 퇴직금도 남아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었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퇴직금도 여행이다 뭐다 하면서 거의 다 써버린 도쿄에서의 워홀 반년 차 이후에는 ‘번역’으로 먹고 살았다. 사실 일본에 오기 전에 출판사 두 곳과 번역 외주 계약을 맺고 오사카에서도 번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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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는 모 순정만화 때문에, 지바는 성우들이 나오는 이벤트 때문에, 요코하마와 가마쿠라, 에노시마는 성지라고 불리는 게임 배경을 돌아보느라, 나고야는 게임 컬래버레이션 이벤트 때문에 갔으니 정말 덕질에 살고 덕질에 죽는 워홀 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게임의 배경이었던 수족관에 가서 돌고래 쇼를 보며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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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가구라자카의 문학의 길(가구라자카는 문학가, 예술가 등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나쓰메 소세키 박물관도 있다), 영화 ‘언어의 정원’의 배경으로 나왔던 정자나 히나 인형 전시전 같은 곳에 갔고, 일본 영화관에서 자막 없이 영화 보기에 도전했다. 그렇게 일본의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한국으로 귀국하는 그날까지 알찬 일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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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가 번역가 인생에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답은 ‘YES’다. 우선 관광 관련 번역 일을 따낼 때 많은 일본 여행지를 직접 다녀왔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산업 번역 의뢰를 받고 한 호텔 홈페이지의 번역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고유명사를 실제로 가봤기에 잡아낼 수 있었다. 또 일본의 교통수단이나 문화 등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느껴본 일도 소설을 번역할 때 작품의 내용을 이해에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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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백화점은 많지만, 그 공간, 미쓰코시 백화점은 괜한 마음의 울림을 주었다. 일본에 가서 내 조상이 화해할 수 없었던 나라와의 화해를 꿈꾸어보았다. 공간마다 부의 격차와 부당한 차별을 느꼈을 동경의 유학생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해리포터나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영국을 꿈꿀지 모른다. 나의 로망은 일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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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준비하며 헤맬 때마다 도와준 일본 친구들이 있었다. 일본 친구들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면 더 좋아해 주었다. 나도 잘 모르는 한국의 배우나 그룹들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어떤 그룹을 정말 좋아한다며, 어떤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으로 유학을 준비하는데 걱정된다며, 한국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신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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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카레를 정말 사랑해서 일본 고등학생들이 맥도날드 가듯이 찾았던 식당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직원에 대한 대우가 정말 좋았고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좋았던 기억이 나서 이후에도 줄곧 신뢰를 가지고 방문하고 있다. 생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집 근처 코코이찌방야를 찾아서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A와 카레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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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는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건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되고 유서 깊은 라멘집을 좋아할지 모른다. 나도 신주쿠에 있는 오래되고 낡은 덮밥집을 사랑한다. 동시에 새롭고 높은 건물들이 번쩍이며 부와 전광판을 뽐내는 모습도 영 어설프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점이 대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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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자란 나는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이 인사하는 것이 낯설어서 매번 대답 대신에 움찔거리다가 고개만 꾸벅이곤 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학생 중 십중팔구는 A가 일하는 학교의 학생들이었기에 ‘A센세, 곤니찌와!’ 당차게 인사를 하며 옆에 있던 나에게도 인사를 해주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늘 인사를 주고받다 보니 도쿄에서의 9개월보다 오아라이에서의 3개월이 더욱더 정겨웠고 그곳이 더 내가 속한 곳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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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보다 일본에 다녀온 후 달라진 점을 듣곤 한다. 예를 들면 현실 감각이 생겼다고. 참 이상하다. 현실과 정반대에 있는 곳에 가고 싶어 갔던 워홀인데 나에게 도리어 현실감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는 길을 졸래졸래 쫓아가지 않으려 했건만 사람들이 좋다 하는 장소에 가니 안심이 되곤 했다. 유명하다는 곳에 나도 가보고 싶고 맛있다는 커피 맛은 꼭 보고 싶었던 마음이 참 우스웠다.
--- p.106
타운 워크(TOWN WORK)라는 구인 잡지를 보며 일자리를 구했다. 매일 아침 편의점에서 잡지를 가지고 오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타운 워크 잡지는 전철역이나 편의점 등에 비치되어 있고 무료다. 일이 쉽게 구해질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혹독했다. 1년도 안 남은 비자를 가진 외국인을 고용해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 p.117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며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외롭지 않아서 더 좋았다. Y는 나를 새로운 곳에 많이 데려가 주었다. 현지인이다 보니 알고 있는 곳도 많아서 저렴한 마트부터 시작해서 맛집이며 스포츠용품점이며 오락실까지 나를 데리고 갔다. 오락실에 가서 배팅해 보긴 또 처음이었다.
--- p.122
솔직히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파티는 책에서나 나오는 얘긴 줄 알았다. 가이드북이나 외국 생활을 소개하는 책 같은 데서 으레 나올 것 같은 장면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경험했고 굉장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 p.127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한다고 하면 항상 부러웠는데 나도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헬퍼 일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아르바이트를 가서 밤 9시 반에 집에 돌아오는 꽉 찬 나날이 시작되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 p.139
8개월 넘게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지낸 헬퍼들과 친구들, 한국 가게에서 같이 일했던 동생들, 스쳐 지나간 친구들까지 모두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덕분에 도움도 받고 추억도 쌓으며 후쿠오카에서 적응하고 잘 지낼 수 있었다. 혼자서는 외로워서 못 버텼을 거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 p.151
나의 마지막 청춘(?)을 불태운,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1년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만족한 시간을 보냈냐고 묻는다면 나는 200% 만족했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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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도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셰어하우스 회사 임원들이 제휴처 방문을 위해 한국 출장을 와있었고 나는 그 장소에 워홀 상담을 받으러 갔던 것이다. 그때 상담해주시던 분의 제의로 갑작스레 면접이 열렸고 내 가방에는 때마침 일본어와 영어 이력서가 2부씩 들어 있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셰어하우스 회사와 컨설팅 회사 두 곳에서 요일을 번갈아 가며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을 수 있었다.
--- p.165
도쿄 생활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들도 큰 힘이 되었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시기에 부족한 일본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HelloTalk(헬로우톡)이라는 원어민과 채팅할 수 있는 언어교환 앱을 사용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과 교류하면서 말하는 연습은 물론, 도쿄에 거주하기 시작한 뒤로 거의 주말마다 HelloTalk으로 알게 된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 p.173
작은 성공을 하나씩 성취해가면서 점점 가능성과 꿈을 키워나가면 분명 자신이 꿈꾸던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워킹 홀리데이 경험이 내게는 그 작은 성공 중 하나였다.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도시 도쿄에서 하루를 보낸다.
--- p.179
남들이 모두 말렸던 워킹홀리데이였지만, 일본에서의 1년은 내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방학 같은 시간이었다. 다시 28살로 돌아가서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 또 가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 p.188
일본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집을 직접 보러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서 사진으로 판단해야 했는데 내가 입주한 집은 사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한인 부동산에 대한 악평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계약할 수 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부동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분들도 노하우가 쌓여있어서 여러모로 이용하기에 편했다.
--- p.196
일본어 과외, 통역, 번역, 한국어 강의, 콘텐츠 제작 등을 하면서 워킹 홀리데이 기간을 보냈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 경험들은 취업할 때도 도움이 되었다. 하나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카케모치’라고 부른다. 아르바이트를 하나만 할 것이 아니라 2~3곳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p.205
하늘을 수놓은 불꽃, 그리고 유카타를 입고 즐기는 많은 사람들. 유카타 오비 뒤에 부채를 꽂고 걷는 사람들도 많아서 신기했다. TV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풍경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서 그저 황홀했다. 그 밖에도 아사쿠사 등불 축제, 재즈 페스티벌, 크고 작은 마쓰리들이 이곳저곳에서 열려서 인터넷을 보고 정보를 찾아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방문했다.
--- p.210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짧지만 한국에서의 경력과 일본에서의 프리랜서 경력으로 신입 사원이 아닌 중도 입사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지만 그동안 쌓은 2년의 경력을 버리기는 아까웠다. 이런 짧고 애매한 경력이라도 나 하나쯤 고용해주는 곳이 있을 거라는 긍정적 마음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 p.220
일본 회사의 면접은 ‘의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부족한 점이 있어도 의욕이 있고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합격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도 내 경력은 부족했지만 1지망에 합격한 이유도 이 의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제도 내주지 않았는데 나는 1지망 회사 입사가 간절했기에 스스로 프레젠테이션도 준비해갔다. 입사하고 싶다는 열정과 의욕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나타냈다.
--- p.223
내가 겪어본 일본인들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들과 혹시 친해지고 싶다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성격상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간 덕분인지 소중한 동료가 많이 생겼다. 회사에서뿐 아니라 회사 밖에서도 같이 만나서 놀기도 하는 정말 친한 동료이자 일본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 p.227
이런 1년이라는 긴 방학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일상이 여행이 된 설레는 기분으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이후 3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과 비교해 하나하나에 설레는 느낌은 줄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모든 것이 신기했고 모든 것이 예뻐 보여서 편의점을 가기만 해도 행복을 느꼈다. 별거 아닌 일도 사진에 담아두고 즐거워했다.
--- p.229
일본에 취업해서 지금까지 일본에서 사계절을 세 번이나 보냈다. 여전히 벚꽃은 아름답고 여름 축제는 즐겁고 가을은 여행하기 좋으며 겨울은 일루미네이션으로 설렌다. 한국에서의 사계절도 물론 아름답지만 인생 80살까지 산다면 젊을 때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며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 시작이 워킹홀리데이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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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으로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면 도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1년을 살아보고 좋아하는 일도 찾아보고 일본 생활이 잘 맞는지 충분히 경험한 후에 더 살지 그대로 끝낼지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워킹홀리데이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