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작가, 여성운동가, 육아 노동자로서 창작자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많은 노동을 하는 작가가 있는가? 그럼에도 희망차고 긍정적 에너지가 넘친다.
치열하면서도 선한 작가의 성정이 잘 드러난 작품이 ‘파국의 시대’에 도 희망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나는 작품의 부드러운 필치와 따뜻한 목소리에 위로받았다. 선한 예술가, 독특한 작가가 등장했다. 당대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모여 읽기’를 권한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봄이와』는 소만 작가가 봄이를 키우며 겪는 기쁨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은 육아 웹툰이다.이 만화가 엄마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엄마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강조하는 육아서와 달리 아이를 키우는 기쁨 못지 않게 양육자로서 느끼는 고민을 묵직하면서도 경쾌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봄이와 3 - 독박 말고 독립』은 여기에 더해 만화가로서 성장해나가는 작가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아이를 도맡아 키우면서도 만화를 틈틈이 그리던 그는 남편의 실직을 계기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취업을 하며 “누군가에게 의존된 삶의 실존적 불안”에서 벗어나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지만, 그의 앞에 닥친 건 평등한 가사 분담이 아닌 원래 있던 재생산 노동에 더해진 생산 노동이었다.
불공평한 가사 분담의 문제점을 『봄이와』는 꼼꼼하고 차분하게 짚어간다. 웹툰이라는 호소력 있는 매체는 재생산노동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빼곡한 집안일 목록이나 양육자와 부양자가 처하는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는 글로만 읽어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고스란히 묘사해낸다.
소만 작가는 문제를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꾸준히 이어간다. 자신의 만화로 경제적 독립을 위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어 간다.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가고 만화가로서 발판을 다져나간다. 이 과정은 아이의 성장, 남편의 변화와도 함께 간다. 아이는 기저귀를 떼고 인간으로 진화해가며, 남편은 요리의 달인이 되어간다.
창작 활동을 지키기 위한 경제적 독립, 더 이상 혼자 하는 육아가 아닌 함께 하는 육아, 그 노력과 변화의 과정이 뭉클하게 담겨 있다. 단순한 육아 웹툰이 아닌 가족 성장 웹툰이다. “돌보는 이들이 멸시당하지 않고, 일하는 엄마들이 비난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모색과 도전을 응원한다.
- 신나리 (『엄마되기의 민낯』,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공저)의 저자)
“엄마는 왜 자꾸 화가 나는 걸까?”
작은 글씨로 쓰인 ‘봄’의 대사에 “풉”하고 웃음이 났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내가 제법 괜찮은 인간인 줄 알았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된 뒤로는 종종 화가 난 자신과 마주한다. 이 화는 뭉근히 달아오르는 게 아니라, 화산이 터지듯 울컥 솟아오르는 화다. 엄마인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과로다. 잠은 모자라고 할 일은 많고 기력은 달린다. 다른 하나는 짜증 나게 하는 일이 많아서다. 두 가지는 서로 엮여있다. 엄마의 과로도, 엄마를 짜증 나게 하는 일들의 대부분도, 사회가 육아의 기본값을 여성의 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이 엄마를 ‘짜증나게 하는지’ 알고 싶으면 《봄이와》를 보시면 된다)
그간 육아를 주제로 한 생활툰, 일상툰, 혹은 에세이툰이라고 불리는 장르의 만화들은 부모됨의 의미, 부모와 자녀의 관계성에 대한 성찰을 주로 다루었다. 《봄이와》는 육아가 ‘노동’이라는 측면에 주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육아는 돌봄노동이고, 이 돌봄노동은 한 가족과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재생산 노동이다. 그러나 이 노동의 사회적 의미는 철저히 지워지고, 사회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 그러므로 ‘무급’이 당연한 하찮은 일로 인식된다. 이 노동의 가치는 여성을 이 노동에 붙들어두기 위해서일 때만 사회적으로 ‘찬사’받는다.
그러니까 엄마가 화나는 건 단지 일이 많고 힘들어서만이 아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고, 수시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때문이다. 『봄이와 3 - 독박 말고 독립』은 육아가 어떤 노동으로 이루어져있는지, 그 노동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 시선이 육아라는 노동뿐만 아니라 삶 전반으로 확장되는 것은 작가가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므로 가능한 성취다.
이 성취는 작가와 비슷한 삶을 공유하는 ‘워킹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 부모의 이슈만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구성되는 방식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억압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무엇보다 어린이를 어떻게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대할 것인가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만 작가가 수행해야 하는 과업의 종류와 무게를 생각하면 『봄이와』가 회를 거듭하면서 자기 반복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설정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고통과 곤경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쉽지만,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또 뭉클해지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봄이와』는 재밌다. 일단 첫 장을 넘기고 읽어나가다보면 어느 틈에 마지막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박희정 (인권기록활동가, [주간경향] ‘만화로 본 세상’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