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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사랑

날씨와 사랑

리뷰 총점9.8 리뷰 9건 | 판매지수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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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80g | 133*200*15mm
ISBN13 9788954680202
ISBN10 89546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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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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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우산씨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고 자연스러워져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것이고 구별되지도 않을 것이다. 구별되지 않으면 차별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비가 오면 좋겠다.
--- p.63

영주는 말했다. 인생사에는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훨씬 많고, 불행을 자초하는 건 인간이지만 본능적으로 자초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의 잘못도 아니라고. 커다란 행복이라도 머무는 건 잠깐뿐이고, 불행은 작은 것조차 불씨를 오래 남겨서 인간을 괴롭힌다고. 행복은 느리게 찾아왔다 빨리 가버리는 것이고, 불행은 빨리 다가왔다 느리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아무리 행복한 일이 자주 생겨도 작은 불행이 차지하는 마음의 면적이 워낙 넓어서 불행하다 여기며 살 수밖에 없다고. 그게 인간과 불행의 속성이라고.
--- p.73

비는 사람을 가깝게 만든다는데,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주고받게 한다는데, 두 개의 우산 때문에 그와의 거리는 비가 오지 않는 날보다 더 멀어져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은 방향을 보고 서서 빗소리를 들었다. 보도블록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우산 위를 흘러내리는 빗소리, 나뭇잎을 건드리는 빗소리, 벤치를 때리는 빗소리는 각각 달랐다. 비의 음계. 비는 세계의 온갖 것에 닿아 연주를 했다. 비와 세계의 근사한 합주였다.
--- p.118

“인생은, 낭비하는, 겁니다. 다음 생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광장에는 청춘이 많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지금 열심히 낭비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해주씨는, 여전히, 청춘, 입니다. 충분히, 많이, 젊습니다. 낭비할 것도, 아주, 많이, 남았습니다.”
--- p.141

우산은 상대방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떤 걸 감춰줄 수 있고, 보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가려줄 수 있으며, 나아가 누군가를 속일 수도 있고, 하기 어려웠던 말에 용기를 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가 빌려준 우산으로 숨차는 심장을 감추며 걷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우산이야말로 가장 비밀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의 우산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그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산을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72

나는 빗소리를 가까이 듣고 싶어서 창가로 갔다. 탁, 타, 다, 탁.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것이 누군가 빗방울로 치는 다급한 모스 신호처럼 들렸다. 조각조각 자음과 모음이 모여 음절이 되고 낱말이 되고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거대한 흐름으로 마을을 덮치지만 끝내 전해지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안타까운 마음. 그 마음을 아랑곳 않고 비는 지금 이야기를 퍼붓는 중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거나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
--- p.174

우산 너머로 보이는 비에 젖은 숲은 전체적으로 윤기가 흘렀다. 대기는 깨끗하고 축축한 나무 이파리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빛의 산란으로 반짝였다. 저만치에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여러 갈래의 반투명한 길처럼 내려와 지상에 닿아 있었다. 헝클어질 줄 모르는 빛이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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