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게 뭐냐?” “….” “저기가 어디야?” “어디?” “저어어기! 저거 안 보여?” 수철이가 손을 뻗어 저 멀리 굴뚝을 가리켰다. “어, 저기? 굴뚝?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저거 평택화력발전소래.” 어떤 아이가 수철이처럼 손을 뻗어 검지로 굴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 시선이 모두 그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멀리 굴뚝을 향했다. “얘들아, 조금만 가면 저기 화력발전소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수철이가 말했다. “저기 굴뚝까지?” “어.” “….” “굴뚝이 되게 가까운 것 같지 않냐?” “가까워 보이긴 해. …좀 가까운 거 같애.” “나는 굴뚝 바로 밑에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하고 높은 굴뚝을 올려다보고 싶다.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말이야.” 수철이는 굴뚝 바로 아래까지 가 보고 싶었다. “그것도 재밌겠다. 여기서도 저렇게 커 보이는데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면 어마어마하겠다! 헤헤.” 정철이가 맞장구쳤다. “조금만 가면 갈 수 있을까?” “한 시간이면 되겠는데!” “그럼 꾸물대지 말고 빨리 가자!”
--- p.65
냇가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어제 모습 그대로인 통나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과사전에 쓰인 대로 앞쪽과 뒤쪽에 긴 나무판을 대고 수철이가 못질을 시작했다. 서툰 망치질이라 못을 많이 박게 됐는데 덕분에 뗏목이 탄탄해진 것 같았다. 남은 나무판도 가운데다 대고 박아 버렸다. 그러고 물에 띄웠다. 신발을 벗고 수철이가 뗏목 위에 올라탔다. 출렁이지는 않았지만, 발이 살짝 물에 잠겼다. 그러나 겉으로 봐서는 그야말로 어제보다 훨씬 진화된 훌륭한 ‘뗏목’이었다. “수철아, 잠깐만 있어 봐.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 “금방 올게. 잠깐만 있어 봐.” 잠시 후, 영우가 어디서 금방 의자 하나를 주워 왔다. “수철아, 이거 뗏목 위에!” 수철이는 영우의 의도를 간파하고 뗏목 위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았다. 물 위에 뗏목, 그 위에 의자 그리고 의자에 앉은 수철이! 완벽해 보였다. 영우는 어디서 긴 대나무도 가져왔다. 정말 완벽했다. 필요한 것들은 찾아보면 주변에 다 있었다. 영우와 수철이는 번갈아 가며 뗏목을 타고 놀았다. 대나무로 냇가 가장자리와 바닥을 밀며 뗏목을 조종했다. 그러나 너무나 완벽한 뗏목 놀이는 불과 이십 분도 지속되지 못했다.
--- p.108
옥상은 꽤 재미난 공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양새를 마음껏 관찰할 수도 있었다. 수철이가 보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수철이는 맘껏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러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맨 먼저 사람들의 머리 위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과 옥상 바로 아래 서 있던 사람이 멀어져 가는 모양이 거리에 따라 각도가 달라지면서 흥미로웠다. 목욕탕 다녀오는 아줌마,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고등학생 누나들, 골목에서 몰래 오줌 누는 술 취한 아저씨.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시간을 잊게 했다. 그러다 문득, 옥상이 아무리 재밌는 곳이라 해도 나무 꼭대기에 올라 바라봤던 풍경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수철이 머리를 스쳤다.
--- p.116
강아지와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철이 가족 모두가 강아지에게 호의적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수철이 가족 중에 유일하게 강아지를 싫어하는, 아니 강아지 키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철이 아빠는 냄새나고 아무 때나 방 안에 들어온다며 강아지를 못마땅해했다. 강아지는 마당 있는 집에서 마당에 풀어놓고 키워야 한다는 것이 아빠의 변함없는 주장이었다. 강아지가 다시 외갓집으로 가게 될 뻔한 일이 있었다. 그건 집안의 거의 모든 중요한 일의 결정권을 가진, 아빠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아빠의 전화를 받고 며칠이 지나서 재홍이 외삼촌이 왔고, 수철이와 수철이의 형이 없는 사이에 외삼촌은 강아지를 데리고 간 것이다. 다행히, 외삼촌이 강아지를 데려간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수철이가 집에 들어왔다. “엄마, 강아지 어딨어요?” 수철이는 강아지를 찾았다. “수철아, 외삼촌이 오셔서 도로 데려갔단다.” “왜요? 언제, 언제요?” “수철아, 강아지는 외갓집에서 키우는 게….” 수철이는 엄마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곧바로 버스 터미널로 뛰어갔다.
(148
아침 등굣길에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 아이들은 점심시간을 교실에서 보냈다. 수철이가 친구들의 성향을 분석해 주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종이 위에 1부터 10까지 숫자를 써서, 그것을 수철이에게 가져왔다. 그러면 수철이가 아이들이 쓴 숫자를 보고, 성향을 얘기해 줬다. 예를 들어 1이란 숫자를 위는 굵고 진하게, 아래는 가늘고 흐리게 쓰면 ‘시작은 좋으나 마무리를 잘 못한다.’ 6은 동그란 부분을 작게 쓸수록 ‘외롭다는 것’이고, 8은 위의 동그라미가 아래보다 커야 ‘머리가 좋은 것’이며, 9의 동그란 부분을 크게 쓰면 ‘욕심이 많다는 것’, 그리고 10의 0이 1과 크기가 같으면 ‘친구가 많다는 것’ 등등. 오 교시 도덕 시간이 끝났을 때, 현주라는 여자애가 수철이에게 다가와서 부탁했다. “이것도 봐줄래?” “누구 건데?” “그건 비밀! 그냥 숫자 보고 다른 애들처럼 얘기해 줘!” “얘는 마무리를 잘하는 것 같고, 외로움을 많이 타고, 그리고 머 리가 명석하진 않아 보이고….” “수철아, 무슨 소리야? 얘 공부 잘해! 정말 잘하는 친구라고!” 대뜸 현주가 말했다. “누군데 그래?” “그, 그건 비밀이랬잖아.” 얘가 처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가 궁금해서 “이거 내 건데. 봐줘!” “내 것도 좀 봐줘!” 그랬는데, 필체 주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아이는 얘가 처음이었다. 수철이가 고개를 들고 교실을 휘 둘러봤다. 왼쪽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손으로는 이마를 가리고, 책 읽는 척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이애리.’ 수철이는 직감했다. 순간 그 아이와 수철이는 짧게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확신했다.
--- 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