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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게

백지에게

[ 양장 ] 민음의 시-285이동
김언 | 민음사 | 2021년 07월 0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4 리뷰 5건 | 판매지수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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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0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316g | 132*217*14mm
ISBN13 9788937409059
ISBN10 8937409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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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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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없이는 겨울도 없다는 말. 무의미하지. 겨울 없이는 봄도 여름도 없다는 말. 무의미하지. 의미는 뒤통수니까. 뒤통수에 있으니까.
--- 「무의미」 중에서

백지가 있다. 백지에서 나오는 말들. 백지에서 나와 백지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말들. 도무지 백지가 될 수 없는 말들이 한마디로 그치지 않을 때 두 마디로도 그치지 않고 모자랄 때 모자란 만큼 잠식하는 백지의 운동은 백지를 갉아먹는다. 백지를 지워 나간다.
--- 「백지에게」 중에서

선물받은 만년필이 안 보인다. 지금까지는 잃어버린 것이 분명한 만년필은 내 책상 서랍에도 없다. 대여섯 개는 되는 내 가방 안에도 없다. 아니면 강아지 꽁지가 물고 가서 어디 감춰 둔 것일까? 꼭지가 돌 일은 아니지만 선물받은 만년필은 지금까지 분실된 상태다. 내가 잃어버린 상태다.
--- 「만년필」 중에서

삼월에는 사월이 되어 가는 사람. 사월에는 오월이 되어 가는 사람. 그러다가 유월을 맞이해서는 칠월까지 기다리는 사람. 팔월까지 내다보는 사람. 구월에도 시월에도 아직 오지 않은 십일월에도 매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우리가 언제 만날까?
--- 「언제 한번 보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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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떠나왔으나, 그의 시는 여전히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는 무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언가를 쓰고 있다. “가을에 무의미한 시는 가을을 지시하지 않겠”지만, “가을에 무의미한 시는 하늘이 무너져도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쓰는 과정에서 그는 여전히 담배를 태우고 살아 숨 쉬고 그렇게 씌어진 시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아무도 없는 곳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는 곳을 ‘미리’ 살고 있다. ―작품 해설에서
- 박대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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