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율법의 특징과 목적(7-14절)
1) 율법은 죄를 알게 해 준다(7절, 롬 5:13; 4:15). 율법 덕분에 죄를 알게 되었으므로, 율법 자체를 “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
2) 율법이 죄를 죄라고 가르쳐 주는 가운데 계속해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게 되면, 죄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존재”를 과시하면서 우리 위에 군림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 없었다면 죄는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임이라.』(8절)라고 말씀하신다.
3) 율법은 죄를 살아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왔다(9절).
왜냐하면 율법에 의해 수많은 죄들이 죄들로 낱낱이 드러나고 있고, 그 죄들은 결국 “죽음”을 통해 청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에 의한 죽음의 선고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4) “율법”은 죄를 짓지 않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곧 생명에 이르도록 주어졌지만, 그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결과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10절). 문제는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어기고 죄에 굴복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죄”는 율법(계명)을 통해 우리를 “속이는”(11절)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이 되었고, 또한 우리를 “죽이는”(11절) 살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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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 사람”과 “새 사람” 간의 갈등(15-23절)
1) 옛 사람은 새 사람이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15,16절).
2) “죄의 본성”은 옛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새 사람이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존재는 “육신 안에 거하고 있는 죄”이다(17-20절).
새 사람(속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으로서(요 1:13) 거듭난 영을 가리키는데, 주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고전 6:17)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요일 3:9).
3) 인간의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단 하나라도 들어 있지 않은데(18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몸은 여전히 “죄의 몸”으로서(롬 6:6) 구속받지 못한 상태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휴거 때에 가서야 완전히 변화되고 구속된다(롬 8:23, 요일 3:2).
4)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악이 함께 있다.”라고 하는 “법” 하나가 발견되는(21절) 이유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공존하면서 서로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새 사람”(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한다(22절).
(2) “지체들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법”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 하는 “생각의 법”(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의 법칙)과 싸워 우리 자신을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죄와 사망의 법, 롬 8:2)에게로 사로잡아 와서 죄의 법을 따르게 한다(23절).
5) 사탄은 옛 사람을 통해 우리를 관장하려 하고, 성령님께서는 새 사람을 통해 우리를 주관하려고 하신다.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갈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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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자들의 첫 번째 오류]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르시는 그분에 의해서 있게 하시려고』(11절).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13절). 이 두 구절은 칼빈주의자들이 “영원 전에 이루어진 무조건적인 선택”을 입증하기 위해 오용하는 구절들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전후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억지로 사사로운 해석을 한다.
1 야곱과 에서의 경우, 선택이 “영원 전”이 아니라 “리브카의 배 속”에 있을 때 일어났다.
2 선택이 “개인의 구원”과 관계가 없고 “어떤 민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는가”(창 25:22,23)에 관한 “민족적 선택”이다.
3 이 선택은 “예정”(미리 정하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근거해서 이루어졌다(히 12:16; 11:21, 말 1:2,3). 성경에서 선택은 항상 “미리 아심”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롬 8:29,30, 벧전 1:2).
4 특히 야곱이 선택되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민족 “개개인”이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민족적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다루셨고,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메시아를 낳는 민족을 선택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을 근거로 이스마엘과 에서를 제외하셨다(창 21:12,13; 25:31-33; 26:34,35). 한편 이삭과 야곱을 따라 태어난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민족을 형성하셨고, 또 그 민족으로부터 메시아가 나오도록 하셨다.
전후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끼워 맞추기 식의 성경 해석으로 교리를 정립하는 것이 이단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칼빈주의자들의 두 번째 오류]
『그러므로 원하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요, 달리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니라』(16절). 이 구절은 로마서 9:11과 에베소서 1:4 다음으로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오용하는 본문이다. 즉 주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구원을 받아서 하늘나라로 갈 자들과 버림을 받아서 지옥에 갈 자들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죄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로마서 9:17의 파라오를 예로 들면서,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그분의 능력을 선포하시기 위해 선정하신 파라오를 심판하셨으므로, “파라오는 애당초 구원받을 기회조차 없었다”고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은 다음 네 가지 진리를 간과했다.
1 본문은 아무도 거듭나지 않았고, 또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구약의 상황”이다. 즉 신약 교회 시대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2 본문의 “원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그것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출애굽기 33:12-23의 문맥에 따라, “이스라엘의 민족적 선택”과 연관이 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기로 하신 결정과 관련이 있다.
3 하나님께서는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게 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출 3:19). 또한 파라오가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출 5:1,2) 사탄의 능력을 사용할 때까지 전혀 그의 마음을 완악케 하시지도 않았다(출 7:11-14). 즉 그 스스로 완악한 마음으로 결정한 죄들을 범했을 때 그를 더욱 완악하게 하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한 개인이나 민족에게 자비를 베푸실지, 베푸시지 않을지의 결정은 오직 그분께 달려 있다. 물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그런 결정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경우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전제로 한다.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임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 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느니라』(출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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