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Hera는 헤라클레스를 죽도록 미워한 여신이다. 그녀는 헤라클레스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출산의 여신을 종용해 해산을 늦추며 괴롭혔다. 그 후로도 요람에 있을 때 뱀을 집어넣어 죽이려 한 것을 비롯해, 열두 가지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게 하며 일생 내내 괴롭혔다. 헤라는 제우스Zeus의 본부인이고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Alcmene는 첩에 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본부인이 첩의 자식을 구박하거나, 계모가 본부인의 자식을 구박하는 이야기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남편 제우스가 바람피워 낳은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헤라가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은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기에, 헤라클레스 입장에서는 헤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그녀를 못된 계모나 악녀로 부르거나 구속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를 자신의 이름 속에 넣은 헤라클레스의 행동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천하의 바보이든가 아니면 이름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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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가 들판에서 거대한 사자를 만나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벌여서 맨손으로 물리쳤다고 해도 그의 용기와 힘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사자 동굴에 구멍이 두 개가 있고 사자가 그곳으로 들락거려 처음에는 헤라클레스가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막아 버림으로써 사자와 대면하고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사자가 상징하는 자신의 화를 붙잡으려면 그것이 들락거리는 두 개의 구멍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모르면 헤라클레스는 물론 보통 사람들도 화를 붙잡고 싶어도 못 붙잡고 번번이 허탕을 치기 때문이다. 가족 간, 직장 동료 간, 연인 간에 있어서 툭하면 짜증이나 신경질, 화를 내면서도 이를 금방 잊어버리며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구멍과 화를 낸 것을 잊어버리고 감추는 구멍이 따로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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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이오스강은 그리스어로 ‘희끄무레한’이라는 뜻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 여명이 밝아 오는 동녘 하늘이 희끄무레하다. 중독 상태라는 어둠과 무질서를 물리치고 밝아 오는 새 아침과 질서를 추구하려는 다짐이나 의지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밝아 오는 새날을 맞이하려는 이런 마음가짐이 강물처럼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중독을 끊고 새로운 변혁의 길로 나갈 수 있다. 페네이오스강은 ‘반짝이는 씨실’이라는 의미다. 씨실은 옷감을 짤 때 가로 방향의 실이고 날실은 세로인 수직 방향으로 늘어트린 실이다. 만약 날실로만 옷감이나 옷을 만든다면 그 옷은 쉽게 벌어지거나 해지게 된다.
따라서 세로 방향으로 늘어져 있는 날실에 반짝이는 가로 방향의 씨실을 끼어 넣음으로써 실들이 단단하게 고정되면서 튼튼한 옷감이 만들어진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날실처럼 고결하고 장엄한 뜻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 그러나 뜻만 고결하게 세웠다고 해서 중독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오랫동안 지탱되지 않는다. 사방에서 유혹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원래의 중독 상태로 돌아가려는 관성인 요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유혹적인 상황 속에서 날실 같은 곧은 의지를 지탱할 수평적인 씨실 같은 자세도 반드시 필요하다. 페네이오스강이 바로 그 씨실의 역할을 해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중독을 이겨 내고 견디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결여되면 금주, 금연, 다이어트 등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행위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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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가 그 말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보이고 풀어 줬다. 맹목적 열정이라고 해서 무작정 다 죽일 수는 없다. 그것에 정신이 나갈 정도로 푹 빠지거나 노예가 되지 않게 경계하고 잘 관리해서 바른 열정으로 순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직장 생활을 원만히 하면서 동시에 1년 내내 틈만 나면 마라톤 대회, 철인 3종 경기, 등산 등에 푹 빠져 있는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 행동 때문에 자기 자신, 가정, 직장, 사회에 폐해가 생긴다면 줄이거나 개선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만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취미 생활을 너무 건성으로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너무 과하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말 위에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되는 취미 생활은 문제가 있다. 맹목적 열정의 문제는 특히 주 5일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여가시간이 많아진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축구, 야구, 당구, 낚시, 등산, 자전거, 수영, 골프, 노래 등 다양한 취미 생활 자체가 직업이 아닌 이상 아마추어 정신으로 그것들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면 그만이다. 잘하면 좋지만 좀 못해도 괜찮다. 프로들에 비하면 어차피 아마추어인 것이다. 친선 도모, 여가 선용, 건강 관리를 위해 즐기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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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세상이 모든 면에서 안정되어 있다고 해도 먼 장래까지 내다보게 되면 경기 침체, 전쟁, 온갖 사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물을 너무 깊이 파고들고 먼 장래까지 생각하면 온갖 염려와 걱정이 끊이질 않게 된다. 독수리 같은 자세가 있는 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매일 쪼아 대는 것은 마음의 평온함을 쪼아 대서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는 상황이다. 또한 그가 절벽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접근하게 위해 독수리는 활개를 치며 매달린 채 간을 쪼아 댔을 것이다.
매사에 먼저 생각하고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적에게 정복당하고, 연적에게 배우자를 빼앗길 수 있다. 앞날에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압박감이 활개 치는 상황은 사람들이 처한 보편적인 심리 상황이다. 이성은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핵심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이 삶과 존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겸손, 사랑, 이해심, 포용, 체념, 경건함 등 다른 여러 가지 인격적 덕목이나 가치도 필요한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너무 높고 멀리 보며 염려하고 걱정하는 독수리를 쏘아 맞춤으로써 자신의 이성을 일정 부분 희생시켰다. 그래야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마음의 안식이 도래할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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