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학교에는 일단 공문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의 중심에 공문이 있고, 이 공문을 처리하고, 공문을 작성하느라 업무의 대부분을 뺏긴다. 교육청 및 타 기관에서 보내오는 공문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핀란드에서도 행정기관이 학교에 문서를 보내기는 한다. 그러나 공문이 아닌 e-mail을 통해서 전달되며 그 횟수도 많지 않다. 이메일은 지방행정기관과 학교, 교장과 교사 사이에도 일상적인 소통 도구이다. 또한, 교사가 예산을 사용하고 싶다면, 한국의 교사들처럼 예산계획서를 작성하고, 내 예산에서 얼마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 품의를 올려 결재 받는 형식이 아니라, 필요한 비용을 교장에게 구두로 요청하면 교장이 예산 상황을 확인한 다음 사용 여부를 판단한다. 핀란드에서는 교장이 행정 실무의 중심에 서 있어 교장과 행정 지원 인력이 일을 도맡아 한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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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정말 엄청나게 밥 달라고 찡찡거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찡찡’거림의 기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교사들의 의문이 그렇게 ‘찡찡’거린다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들 수 있는 생각들이다. 예컨대 급식조리원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거나 정말 조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불만 비슷한 것도 가지지 않는다. 교사들은 그렇게 불만 많은 집단이 아니다. 불만이 오히려 적은 집단이어서 문제라면 문제인 집단이다. 위에서 하라고 하면 다소 억울하고 힘들어도 웬만하면 군소리 없이 한다. 교사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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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주변인으로서, 이 논쟁 구석들을 돌아보며 느낀 짤막한 단상들을 다소 체계 없이 늘어뜨릴 작정이다. 어디 한 곳에 소속해 제대로 의미 있는 활동 한번 한 적 없는, 자격 없는 이의 무책임한 발언을 다들 너무 귀담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논쟁의 대부분이 사실은 페이스북 게시글과 그 댓글을 통해 이루어졌기에, 페이스북을 많이 참고했음을 미리 밝힌다. 페이스북은 이미 공론장이다. 개인의 사사로운 글도 있지만, 공적인 글과 공적인 반론이 적어도 교육담론의 영역에서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소 편한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나온 논쟁 내용과 관련한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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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급하게 일반화해서도 안 되고,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교직 사회는 튀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가 은근하게 흐르고 있다. 좀 튀면 안 되는가? 안 된다. 왜일까? 그 튀는 행동이 교육적이지 않은 행동, 예컨대, 학교 한켠에서 교사가 담배를 핀다거나, 아이들에게 체벌을 한다거나 단체 기합을 주는 등의 행동도 아닌데 말이다. 교육적 열정이 과해서 생긴 튀는 행동일 뿐인데, 대체 왜 안 되는 걸까? 이유는, 민원과 관련이 있다. 물론, 그 튀는 반 자체는 민원이 없다. 그 반 학부모 만족도는 당연히 상당히 높다. 문제는 다른 반 학부모의 민원이다.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떤 반은 이러저러한 것들을 한다는데, 우리 반은 그런 거 안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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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동을 받기 쉬운 만큼, 상처도 받기 쉬운 게 이 직업이다. 다른 상처와 비교하지 말라. 교사가 상처받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타 직업군과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상처는 깊고 크다. 상사에게 깨지고, 고객에게 인격모독을 당해도, 차라리 그건 나은 수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무리 깨진다 한들, 그래도 그들은 어른에게 깨지는 것 아닌가. 상사도 어른이고, 고객들도 대개 어른이며, 그렇기에 그들의 쌍욕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교사인 내가 욕을 쳐듣고 있는데, 어찌하지 못하는 그 순간만큼 치욕적일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매번 온다고 생각해 보라.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고,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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