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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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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08g | 124*195*22mm
ISBN13 9791170400486
ISBN10 117040048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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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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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키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장신들의 걸음걸이와 머리 가누는 투를 지녔고, 모던하고 편안한 겨울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단정하기는 하지만 세심하지 못하게 차려입었으며, 매끈하게 면도를 했고,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약간 회색빛이 돌았고 아주 짧았다.
--- p.9

‘일반인 입장 불가.’ 그리고 ‘광인 전용.’ 확인하듯 나는 그 오래된 담장 쪽을 건너다보았다. 그 마법이 다시 시작되기를, 적힌 글귀가 나, 이 광인을 초대해주기를, 작은 문이 나는 안으로 들여보내주기를, 은밀하게 기대하면서. 그곳이 어쩌면 내가 갈망해마지않던 그것이 아니었을까, 거기에서 어쩌면 나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pp.64~65

말하자면 이 순간에, 그 교수가 조국의 배신자 할러에 관해서 말하는 동안에, 장례식 광경 이후 내 안에서 축적되고 점점 더 심해졌던 우울과 절망이라는 최악의 감정이 내 안에서 황량한 압박으로, 신체적으로(하반신에서) 느낄 수 있는 위급 상황으로, 목이 죄어오도록 불안한 운명의 느낌으로 농축되었다. 나는 나를 적대시하는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다고 느꼈고, 위험이 슬그머니 뒤에서 나를 엄습했다.
--- p.132

내가 예전에 나의 인격이라고 불렀던 것의 파괴가 진행되면서, 나는 왜 내가 그 모든 절망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그다지도 끔찍하게 두려워해야만 했는지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 소름 끼치고 치욕적인 죽음의 공포 또한 낡고 시민적이고 위선적인 내 실존의 한 조각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 p.216

나는 아래쪽 어딘가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고, 유리가 박살나고, 낄낄거리는 소리가 점차 사그라지는 것을 들었고, 이 소리들은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거는 자동차들의 급하고 심술궂은 소음과 뒤섞였다. 어디에선가, 가늠할 수 없이 멀고도 높은 곳에서, 나는 폭소가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는데, 엄청나게 밝고 즐거우면서도 소름 끼치고 낯선 폭소, 맑고 빛나면서도 차갑고 냉혹한, 수정과 얼음으로 빚은 웃음이었다.
--- p.290

“하지만 사실 우리가 저기 죽여놓은 사람들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어. 저 사람들은 우리나 마찬가지로 불쌍한 작자들이야,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이 세상은 망가져버려야만 하고 우리도 같이 그래야만 해. 이 세상을 십 분 동안 물속에 처넣는 게 가장 고통 없는 해결책일 거야. 자, 다시 일하러 가자!”
--- p.310

절망적으로 나는, 그 인물들을 끄집어내려고, 약간의 마술을 부려서 내 체스판의 배치를 바꾸려고, 내 호주머니를 움켜잡았다.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인물도 없었다. 인물들 대신에 나는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죽을 만큼 경악해서 나는 복도를 가로질러 내달렸고, 문들을 지나 느닷없이 거대한 거울을 마주하고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내 키 정도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이리가 서 있었는데, 가만히 서서는 불안한 눈에서 경계하듯 빛을 번뜩였다. 깜빡거리며 그것은 나에게 눈짓을 했고, 살짝 웃느라 입술이 잠깐 동안 벌어졌고, 시뻘건 혀를 볼 수 있었다.
--- pp.34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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