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끝없는 어리석음을 만든 기관인 뇌로 무장한 채 인간의 어리석음을 겨냥하며 돌격할 것이다. 이 기관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허풍을 늘어놓는 데 더 타고났으니, 분명 이상적인 여행 동반자는 아니다. 그래도 선택권은 없다. 우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이상한 거짓말쟁이와 함께 이 배에 올라야 한다. 이 배에 탑승한 당신을 환영한다!
--- p.18
인지 체계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를 보내고, 이렇게 보내진 정보를 처리한다. 그래서 그 정보를 인식할 때는 이미 인지 체계가 손을 써서 정보를 조작한 후다. 우리가 올바로 생각하기 위한 이 ‘정보 저장고’는 한쪽이 비뚤어진 불량품이다. 이런 저장고를 지닌 채, 주변을 정확한 식견으로 바라보려고 해 보라! 오늘날 다양한 인지 편향이 있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으니,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낡은 개념은 말끔히 버려라. 안타깝게도 인지 체계는 가끔씩만 실수하는 성실하고 친절한 비서가 아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유용한 정보를 모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녀석은 일말의 양심도 없이 자기애와 망상에 사로잡혀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선동가다. 우리는 이 짓궂은 녀석과 긴밀히 협업하며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 p.38
우리가 정보를 접할 때는 이미 ‘정리된 상태’다. 인지 편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지 편향은 벗을 수 없는 왜곡된 안경과 같다. 그래서 정치인들과 언론이 우리를 세뇌했음을 깨달아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뇌가 감언이설로 더 속이기 때문이다! 인지 편향은 마치 전체주의 정부의 성실한 선전부 직원처럼 행동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건을 몰아가는 것이다. 이때는 항상 같은 노선을 유지하며 사건을 비틀고, 현실을 정리한다.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어쩔 수 없다.
--- p.71
인간의 정신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여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요 철학 사조는 인지 편향의 실질적인 힘은 모른 채, 이를 상대로 싸우기 위한 경험적인 방법들을 제안했다.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인지 편향이 방해를 하며 개입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결론은 인지 편향은 모든 인지 기능의 근원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책임이 없다. 인지 편향을 잠재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지 편향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소리를 질러도 ‘무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p.74~75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위험을 줄이고 싶다면 순발력을 발휘하여 동료들에게 의견을 묻자. 우선 동료들은 의견을 내기 좋아한다. 그리고 여러 개의 뇌가 모이면 한 개의 뇌보다 언제나 더 낫다. 단, 의견을 구할 때는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은지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의 인지 편향을 유발하게 된다. 그냥 의견을 주의 깊게 듣자. 그들은 당신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혼자보다 다수일 때 서로의 인지 편향이 상쇄되어 어리석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여러 명이 모였다고 더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덜 어리석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이미 대단한 일 아닌가!
--- p.77
기준점 편향은 한 가지 정보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는 앞서 말했듯 먼저 들은 정보가 기준이 된다. 세일 기간이나,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고를 때 이 편향이 개입한다. 협상을 할 때도 그렇다. 기준점 편향에 따르면 먼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그가 선택한 금액 선에서 협상의 ‘닻’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기준점 편향은 점화 효과와도 관련이 있다. 점화 효과는 떨쳐 내기 어려운 첫인상이라는 미끼에 물린 상태다. 그렇다! 인간의 정신은 첫인상이나 첫 번째 가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를 접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첫 번째 정보에 이미 닻을 내렸기 때문이다.
--- p.94
인지 편향은 불공정, 고통, 맹목적인 우연이 연출하는 장면을 견딜 수 있도록 인간을 돕고자 한다. 그래서 의미 없는 곳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려고 어떤 일의 책임이 조금은 피해자에게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또한 피해자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대부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이 내 손을 벗어나 역사, 사회, 경제, 심리 혹은 자연의 힘 때문에 일어났다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공정한 믿음 가설 편향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 에이즈 환자나 실업자들이 스스로 불행을 자초했다고 판단한다.
--- p.263
인간의 인지적 결점이 모두 밝혀지자 또 다른 결론이 도출되었다. 결정을 내릴 때 집단과 민주주의, 포용성과 다양성, 협력과 나눔을 향해 진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 구조에 내재된 수많은 암초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여럿이 모인다고 똑똑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음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개인과 의견, 관점과 기억, 문화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편향을 무력화하고 수많은 실수를 손쉽게 방지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것이 훌륭하고 세련되며 가성비가 좋다. 인지 편향은 우리에게 행동을 바꾸고 집단 지성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권한다. 혼자 생각하는 인간은 머지않아 실수할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