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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에게 생긴 일

마리에게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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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38g | 140*210*15mm
ISBN13 9788937444814
ISBN10 893744481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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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가방 속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어 로랑에게 전화해 본다. 이까짓 일로 달려와 줄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남편의 음성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다. 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로랑이 전화를 받는다.
“믿을 수 있겠어? 누군가 내 자전거를 훔치려고 했나 봐. 앞바퀴가 없어지고,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
--- p.27

마리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불에 데인 듯 뜨겁고, 부어 오르고, 처진 근육과 짓눌린 피부가 주는 고통에 퍼렇게 질린 몸뚱이. 자동차 잠금 장치가 풀린다. 마리는 자동차에서 나온다. 바지는 아직도 허벅지 근처까지 내린 채였다. 갑자기 남자가 운전석 너머로 한쪽 팔을 뻗어 마리를 덥석 붙든다.
“누구한테든 말했다가는 너도, 네 남편도, 네 일도 전부 끝장인 줄 알아. 아무도 네 말을 안 믿을 거야. 그러니까 입 다물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 알아들었어?”
--- p.32

남편이 마리의 몸속에서 오르가슴을 느낀다. 마리는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 꾹 참는다. 점심에 먹은 것들이 기도를 타고 올라와 입안에서 느껴진다. 마리는 남편에게 미소 짓고 그를 끌어안았다가 떼어 낸다. 로랑은 말없이 일어서는 아내를 바라본다. 마리가 겪은 이 두 번째 시련이 그녀가 앞으로 모든 타협에 대해 종말을 선언하게 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로랑은 눈치채지 못한다.
--- p.42

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검은 그림자가 아랫도리 신경 섬유를 타고 내장 구석구석까지 끔찍한 악취를 퍼뜨린다. 마리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진다. 거실에서 통화 중이던 로랑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다. 바닥의 냉기에 마리의 몸이 굳어진다. 그녀가 뱉고 싶은 아주 솔직한 첫마디.
“네 아이는 저주받았어.”
--- p.68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이메일들을 훑어보다 돌연 멈추는 마리. 그놈이 다시 도발하고 있다.
“마리의 복귀를 축하합니다!”
총괄 이사가 모든 직원에게 발송한 메일이다. 두 손이 자판 위에서 멈추고, 마리는 정신을 수습해 보려 애쓴다. 서둘러 메일을 삭제한다.
--- p.126-127

마리는 발코니 맨 아래 난간에 천천히 한쪽 발을 올려 본다. 토마는 엄마의 잠옷 단추를 조용히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친다. 토마를 발코니 난간에 수직으로 놓아 본다. 아파트 4층. 아이는 소리 없이 바닥에 떨어져 흉하게 일그러질 것이다. 일 초도 안 되어 아이의 작은 뼈가 산산조각 나고 사나운 충격에 살이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아이가 고통받을 일이야 없겠지만, 엄마는 아이 시체의 눈길을 외면할 것이다.
--- p.132

마리는 돌연 굳어진다. 온몸이 딱딱해진다. 문득 아랫도리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면서 앉아 있기도 어려운 상태가 된다. 또다시 그날 밤 일이 마리를 덮친다. 어둡고 습한 하늘. 그날 밤의 하늘도 그랬다. 그 자식이 마틸드도 강간한 걸까? 마틸드도 나와 똑같은 일을 겪은 걸까?
--- p.163

결국 여자는 구멍일 뿐이다. 물렁물렁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멍. 죄 많고 축축한 그 사막 한복판으로 남자가, 마치 신이 그렇게 하듯, 자기 길을 뚫고 지나간다.
--- p.167

“네 아들한테 가 봐. 성폭행범 좋아하잖아.”
마리의 정신 나간 사람 같은 표정, 옅은 미소에 로랑은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앞으로 그 어떤 행복의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 로랑은 이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따귀, 바닥에 드러누운 아내의 시체 같은 얼굴, 또 다른 화를 부를까 두려운 나머지 설명을 부탁할 용기조차 안 나는 수수께끼 같은 마지막 한마디. 안됐지만 그는 의구심을 지닌 채 살아갈 것이다.
--- p.175

마리는 편지를 삭제하지 못했다. 그 편지를 쓰던 순간을, 그때 자신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떤 상태였는지 마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집에 혼자 있었고 정신줄을 놓았고 더러웠다. 피와 오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록산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친정엄마가 마리를 배신했다. 걱정해서 그런 것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바로 오늘, 마리에게 등을 돌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의 가족이다.
--- p.194

“2014년 6월 16일 귀하께서 의뢰하신 친자 확인 테스트 결과를 2014년 6월19일 목요일부터 피티에-살페트리에르 대학 병원 시험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숨이 멎는다. 현실이 뒤엉킨다. 전화기를 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다. 마리는 휴대 전화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내려놓는다. 마리는 겁에 질려 있다. 그가 어떻게 그녀도 모르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 p.233

저녁 6시 30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로랑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를 위해 오늘은 유난히 일찍 퇴근했다. 콘솔 위에 열쇠를 두고, 현관문을 아직 열어 둔 채 신발을 벗고 외투를 오른쪽 옷걸이에 건 로랑이 그제야 문을 닫고 부엌까지 들리도록 마리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이게 마지막이다.
“식사합시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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