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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죄인이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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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62g | 135*195*20mm
ISBN13 9791138404372
ISBN10 1138404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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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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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상황에 쫓겨 자살할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다면 ‘11월 6일 복수의 날’에 증오하는 상대를 매장해버리고 죽자!

이렇게 쓰고 나부터 앞장서는 것이다.
사람을 벌레처럼 취급했던 사람들은 그날이 올 때마다 벌벌 떨겠지. 지금까지 자신들이 경멸하고 궁지에 몰았던 상대가 보복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전율하는 날이 될 것이다.
실제로 복수극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조금쯤 이 세상에서 학교폭력이 줄어들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까지 기다릴 수 없다. 아니, 녀석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 녀석들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져 요즘 들어서는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소년이 폭행당해 사망했다는 뉴스나 기사를 볼 때마다 내일은 나겠구나 싶다. 험악한 사건이 많다며 한탄할 수 있다는 건 아직 행복한 세계에 있다는 증거다.
--- p.13

그들의 시선 끝에 피에로가 서 있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이라 영 듬직하지는 않았는데 등을 꼿꼿이 펴고 있는 모습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인간이 분장한 게 아니라 느닷없이 다른 세계에서 나타난 기묘한 생명체 같았다.
컬러풀한 복장 탓일까? 옅은 보랏빛 구름이 흘러가는 저녁노을 진 하늘에 위화감 없이 녹아들었다.
새빨간 머리는 사자처럼 치솟아 있었고 얼굴에는 피에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싸구려 마스크가 아니었다. 특별 주문한 것인지 피부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눈 주위는 검게 칠했고, 오른쪽 눈에는 흘러내린 듯한 파란색 눈물이 덧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광택이 감도는 둥글고 빨간 크라운 노즈. 그 아래에는 귀를 향해 불길할 정도로 두껍게 찢은 커다란 입술. 그 입술 안으로 하얗고 가지런한 조그만 이가 보였다.
--- p.17

“왜…… 나를 도와줬어요?”
“너, 죽고 싶어?”
페니는 대답하는 대신 내게 질문을 던졌다. 녀석들에게 ‘이제 됐어, 죽여’라고 한 말을 들은 게 틀림없다.
“가능하다면 녀석을…… 류지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어요.”
“안타깝네. 상대만 죽이면 되는데.”
“사람을 죽이면 감옥에 가고, 그다음 인생은 어차피 힘들 테니까…… 살아봤자 의미가 없잖아요.”
“완전범죄를 하면 되지.”
“완전범죄? 그건 무리죠. 일본 경찰은 우수해요.”
“내가 죽여줄게.”
청부살인? 농담이겠지. 설마 살인이 취미인 살인마일까?
조금 경계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더니 페니가 또 깔깔 웃어댔다.
--- p.25

자살의 진상을 알고 싶었던 우리는 장례를 마친 뒤, 시게아키가 남긴 노트를 들고 학교를 찾았다. 시게아키에게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담임은 “학교폭력이 일어난 일은 없다” “타박상은 체육 시간에 생긴 게 아닐까”라는 답을 되풀이했다.
확실히 그 노트만으로는 누구를 원망하며 목숨을 끊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담임은 입을 다문 우리에게 가시 돋친 말투로 물었다. “부모님은 혹시 모르셨나요? 시게아키 군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신 적 없으세요?” 그 말에는 ‘학교만 원망하지 말라’는 원망이 담긴 듯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으나 담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거운 공기가 실내를 감쌌다.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 말고는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아니다, 자기 목숨을 끊을 정도니 아무 일이 없었을 리 없다. 우리는 시게아키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p.72

“살해 실행일.”
“그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까.”
“나는 언제든 상관없어.”
“그럼 11월 6일이…….”
페니는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며 내 말을 가로막듯 물었다.
“그날까지 살아 있을 수 있겠어?”
페니는 내 팔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팔에는 류지한테 맞아서 생긴 찰과상과 타박상이 있었다.
“녀석이 날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돈도 더는 줄 수 없다. 학원 특별 강습을 받겠다고 거짓말해 아버지에게 받아내지 않는다면 11월 6일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실행일을 앞당기는 게 좋겠어.”
페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짙은 안개가 끼면서 묘한 감정이 부풀었다.
뭐지…… 이건 혐오감일까. 뭐가 싫지? 왜 망설이는 거지?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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