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기회를 잃고, 작은 물음들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잃은 것에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때 그 물음들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지금 또 다른 사랑의 기회를 찾는 일에 쓰이고 있다면, 고마운 관심에 대한 정중한 거절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잃은 것이 아닌, 얻은 것에 충실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며 내 모든 실패의 의미를 증명하고 싶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그것이 나만의 길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 p.21
질문은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여야 하고, 이 질문을 할 정도면 분명히 살아 있는 거니까 괜찮은 것이다. 게다가 살아남는 것조차 온전히 나의 능력이나 노력에 달린 것도 아니다. 운 좋게 살아남았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나머지는 그 행운을 그저 누리면 된다. 남들이 실패라고 부르든 성공이라고 부르든 내게 중요한 건 인생이 폭삭 망가지지는 않아서, 오늘을 살고 내일도 살고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모두가 비슷한 모습의 승리자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 p.27
“쓰다 보니 결국 세계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어떤 영역에서 일하는 사회 활동가가 있을 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엄청난 확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확신보다는 의심에 가까운 태도로, 자신이 믿고 있거나 밀고 나가는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굉장히 불안해하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거죠. 그런 내면에 대해 생각하니까, 모든 거대한 변화의 이면에는 불안정한 개인의 마음, 그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나은 미래를 꿈꾸는 마음들이 있다는 걸 그려내고 싶었어요.”
--- p.33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잘해내고 싶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실패 중 하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결코 알지 못한 채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다 사는 것이므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시도해야 한다. 시도했으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갈 때까지. 나는 모든 실패를 뚫고 변화를 만드는 사람을 지지하고 나 또한 그런 이야기의 일부분이고 싶다.
--- p.49
결국 실패는 자기 스스로의 서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실패 이야기는 객관적 서술이 힘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피하기도 어렵고,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실패에 대한 자기평가도 쉽지 않다. 다만 실패 개념의 최소공약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에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자신과의 적절한 거리두기와 동시에 자기 존중. 이 두 가지 긴장을 견디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실패에 가장 가까운 의미다. 그러나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 p.57
무엇이 그의 작품을 위험하게 만들까? “이상적인 여성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몸의 내부와 고통, 고립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탁월했다. (중략) 칼로는 자신의 삶에 얽힌 불안한 진실을 추출하고 묘사할 감성적인 방법을 그림에서 찾았다. 그 표현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감동을 준다. 상실과 절망을 넘치도록 경험했지만 그런 역경 속에서도 반항, 수용, 인내로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을 창조했다.
--- p.68
사회의 메시지가 “사회가 당신이 성공했다고 말할 때 당신은 가치가 있다”에서 “사회가 실패했다고 말하더라도 어렵고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한다면 당신은 가치가 있다”로 바뀌었다고 상상해보자. 성공에 대한 열망 대신 실패를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어렵고 두려운 모든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맡을 수 있게 된다.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면,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 p.82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생각할 때,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 다른 사람과 주변 세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 사이에 서로 역동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 모두를 위해 동시에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열쇠다. 외부로 향하지 않은 채, 융합적 관점 없이, 우리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독이 된다. 생존에 매우 필수적인 관계망을 오염시킨다. 더 깊은 수준에서 그러한 자기중심성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핵심인 사랑, 관대함, 의미 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