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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게 미소를

비둘기에게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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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60g | 133*200*12mm
ISBN13 9788954683265
ISBN10 895468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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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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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에겐 특유의 미소가 있었다. 희미하고 온유한, 환자를 대하는 미소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밤낮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환멸의 순간에도 미소 지어야 했다. 환멸을 피막처럼 감싼 그 미소는 손톱 밑 거스러미만 닿아도 찢길 것 같았지만, 주삿바늘이 혈관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환자는 그 미소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원들은 병원에 채용될 때 특별히 훈련받는지도 몰랐다. 내겐 그것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 p.12, 「비둘기에게 미소를」 중에서

비둘기는 매서운 발톱으로 이마를 할퀴고 공중으로 차올랐다. 미간이 얼얼했다. 통증인지, 충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오물로 얼룩진 붕대가 정수리 위로 펄럭였다. 말라 바스러진 배설물이 비듬처럼 공중에 날렸다. 주체할 수 없는 환멸이 온몸을 우그러뜨렸다. 비둘기가 아니라, 류가 아니라, 간호사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환멸이었다.
이제 아무도 내게 미소 짓지 않을 것이다. --- p.30, 「비둘기에게 미소를」 중에서

지하 가장 깊숙한 곳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덜컹덜컹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둘기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고양이는 더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거야. --- p.32, 「비둘기에게 미소를」 중에서

남미 여행에 동행한 사진작가는 신우의 사진이 프레임 바깥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했다.
‘여기, 아이가 풍선을 놓쳐서 하늘을 보고 있는 이 사진을 봐요. 힘껏 뻗은 손끝에 줄이 살짝 보이잖아요. 프레임 바깥의 풍선을 상상하게 만들죠.’
지금의 신우라면 그런 말에 우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프레임 밖을 서성였을 뿐인데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됐다. 의미는 프레임 안에서만 구성된다고 딱 잘라 말해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p.51, 「스튜디오 베이비」 중에서

어쩌면 신우는 프레임 안으로 영영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딱 한 번 꿈꿨을 뿐인데 이렇게 밀려난 건 너무 억울했다. 사람 냄새를 지우며 살다간 모멸감마저 잊게 될까 두려웠다. --- p.55, 「스튜디오 베이비」 중에서

일부러 전화까지 해놓고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럴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수빈은 불행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확률 너머의 세계에서 밀어닥친다. --- p.75, 「당연히」 중에서

아버지는 올해도 기부 왕이 되겠지. 죽을 때도 기부 왕으로 죽겠지. 아버지가 기부를 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죄책감을 덜어낼 곳이 필요할 뿐이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게 나의 약점이었다. --- p.127, 「기부 왕」 중에서

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는 대로 몸을 부풀렸다. 몸은 점점 커지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쭈그러드는 느낌이었다. 새집을 지을 때 엄마는 마당의 덩굴장미와 라일락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창고를 지었다. 창고에 연탄과 쌀을 들여놓고 팔았다. 연탄 배달도 쌀 배달도 엄마 혼자 해냈다. 종일 연탄을 나르다보면 발톱까지 까맣게 물들었다. 엄마는 밤이면 손톱 발톱을 잘랐다. 까만 발톱이 튕겨 날아가면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찾아냈다. 가끔 이불을 들추고 아버지의 발톱을 깎았다. 깎아낸 발톱은 아버지에게 꼭 보여줬다. 아버지, 보세요. 이만큼 자랐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눈을 돌렸다.
--- p.183~184, 「A2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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