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돌잔치가 있던 날, 주인공이 아들이 아니라 아빠로 바뀐 것 같았다. 양가 친척과 창신교회 교우들, 회사 동료와 고향 친구들까지, 연회장에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다들 일어나 환영의 박수를 쳐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부분은 내가 감염으로 입원해 죽을 뻔했다 살아나 팔과 다리를 절단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나를 다시 본 건 그날이 몇 달만에 처음이었다.
드디어 하객들 앞에서, 아빠로서 한 마디 인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내 성격은 아들 돌잔치라고 해서 굳이 마이크를 잡진 않을 것이다. 그런 내가 감염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손에 끌려 나간 그 자리에서, 오신 분들 앞에서 힘을 내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 “제가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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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통곡보다 깊은 통곡이 터져 나왔다. 신음보다 큰 울음 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채워나갔다. 나는 정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살고 싶어서 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으면, 내가 세상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주님이 나를 통해 사시라고,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기 위해 내가 살고 싶었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토악질하듯 기도했다. “주님!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그 순간, 꽉 막힌 가래를 뱉어내듯, 오래 목이 잠겨 말하지 못하던 음성이 풀려 노래까지 시원스레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답답한 느낌은 사라지고 청량한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쑤욱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목을 짓누르고 조르고 있던 끈이 풀린 것 같기도 하고, 내 목에 들어와 있던 호스 같은 것이 빠져나가는 시원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 느낌은 사실이었다. 내가 의식이 돌아오고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의사가 내 목에 넣은 삽관을 빼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3주 만에 깨어나는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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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진 발바닥이 가려웠다. 사라진 손등이 간지러웠다. 그러나, 아니 그러니 긁을 수도 없었다. 없어졌는데 여전히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그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극한의 공포, 그 자체였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실체 같고, 없는 것이 더 실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더니, 그게 이런 것이었다.
실제로 아프고 가려운 건 잘린 부위였을 것이다. 무통제(無痛) 주사제가 수액을 통해 쉬지 않고 들어가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고통은 심했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 고통은 시험이었다. 다만 풀기 어려운 문제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다. 나는 이 시험을 견딜 수 있을까? 감당할 힘이나 남아 있을까?
왼팔은 엄지와 약지를 빼고 한 마디씩만 남았고,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부터 잘렸으며, 다리는 왼쪽은 허벅지 아래, 오른쪽은 무릎 아래로 다 잘렸다. 그런데, 어떻게 무얼 감당하라는 거지? 시험이라면 답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시험이 주어졌다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하필 왜 나인가?
--- p.57
“시험을 당할 즈음에.” 사람이 시험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시험을 당할 수 있다. 시험을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시는데, 나의 경우 그 피할 길은 하나님이셨다.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셨다. 정말 그때, 나는 예수님의 품 말고 피할 곳이 없었고, 기대고 붙들 사람은 전혀 없었다. 내 마음을 기댈 피난처는 예수님뿐이셨던 것이다.
내가 병상에서 과거에 저지른 불순종의 죄들을 다시 생각하며 괴로워할 때도,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품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내가 당한 그 고난의 상황이 시험을 당한 것이라면, 내가 피할 길도 하나님이 일찌감치 내주신 십자가의 길을 가신 분, 예수님 바로 그분이셨다. 피할 길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 p.78
나는 그때, 연세의료원 신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보다 절박한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조금 더 노력하면 저와 같은 환자분들이 힘을 얻고 회복을 빨리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3개월간의 재활치료 결과, 나는 혼자서 의지를 착용하고 보행보조기를 이용해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처음 평행봉을 잡고 일어섰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이 기적이라고 기뻐하며 큰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혼자 몇 발자국을 걸어 앞에 서 있던 아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내는 이제 내 손이 된 의수를 잡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그건 마치, 처음 걸음마를 걷는 아기 손을 잡아주는 것과 같았다. 아기가 걸음마를 걷기 시작하면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기뻐하는 것처럼, 재활병원의 의사와 직원들도 그렇게 기뻐해준 것이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같았다. 나로선 두 번째의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었다.
--- p.98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하루는 깨어 있을 때 앞으로의 내 인생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내 눈에 두 갈래의 갈림길이 보였다. 한쪽 길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뻔하게 좌절하는 인생이다. 원망하고 괴로워하며 고통만 곱씹다 가는 길이다. 다른 길은 비록 힘은 들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사는 길이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 대해, 뜻밖에 회사의 한 여성 임원께서 병문안하러 오셔서 말씀해주셨다. 사고를 당한 자신의 남편 이야기였다. 나는 그 임원의 남편에 대해 그때 처음 들었다.
“홍승,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내 남편이 외국에 사업차 출장 갔다가 사고가 나서 크게 다쳤잖아. 왼쪽 얼굴이 상하고 좀 불편하게 살게 됐지. 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치료받는 동안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그런데, 믿음이라는 게 무시 못 할 것이더라. 나는 교회도 잘 안 나갔고 날라리 신자라고 생각했는데, 사고당한 남편 데리러 가느라고 인천공항에 나가는데, 글쎄 내가 성경책을 먼저 챙기고 있더라고.”
--- p.111
집에 돌아온 며칠 뒤, 처음 내 힘으로 화장실 턱을 넘어 스스로 볼일을 보던 날이 생각난다. 아내가 출근하고 혼자 집에 있을 때, 아내가 간식으로 먹으라고 두고 간 견과류가 화근이었다. 기저귀를 벗고 스스로 변을 보기 시작했을 때인데, 거실에서 일을 볼 순 없었다.
엉덩이를 움직여 기어가다시피 해서 화장실 앞까진 갔다. 문제는 화장실 문턱이었다. 왼손을 바닥에 짚고 몸을 움직여 턱을 타고 넘는 데는 간신히 성공했다. 그리고 화장실 좌변기 앞에 아이들을 목욕시킬 때 쓰는 플라스틱 의자를 두었는데, 그걸 계단 삼아 타고 올라가 드디어 혼자서 볼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는 화장실 가기가 훨씬 수월한 일이 되었다.
사무실에서 화장실에 갈 때는 전동 휠체어로 화장실까지 간다. 지지대를 잡고 몸을 일으켜 왼손으로 지퍼를 내리고 볼 일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재활치료 3개월 만에 가능해졌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 p.118
그러자 문득 깨달음이 왔다. 큰 고난은 겪었지만, 아직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니, 내 힘이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감사하게 되니 내가 견디고 있었다. 그것이 감사했다. 내가 느낀 감사는 내게서 나온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은혜였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깊은 고난 속에서도 피할 길은 분명 있다는 것을. 그 피할 길은 바로 ‘감사’였다.
--- p.132
그러니 생각해보라. 사람이 사지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손가락, 발가락 하나라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