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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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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48g | 130*205*18mm
ISBN13 9791191187946
ISBN10 119118794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런 모든 일들은 나를 슬프게 하고, 애석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겪으면 내가 정말 늙었다는 기분이 든다. 노화의 징후는 육체적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얼마든지 있다. 요즘 나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또 “내가 젊었을 때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종종 농담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바로 알아들은 척한다.) 영화나 연극을 두 번째로 보러 갔는데, 생전 처음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로 얼마 전에 봤던 것인데도 말이다. 《피플》 잡지에 나오는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처음에는 내 두뇌 용량이 다 찬 게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 반대가 사실임을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 내 머리는 텅텅 비어가는 중이다.
--- p.12-13

나는 구글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장점도 있다. 뭔가를 잊어버리면 아이폰을 채찍질해서 구글로 검색해보면 된다. 시니어 모먼트는 구글 모먼트가 되어가고 있다. 이 말이 더 행복하고 그럴싸하고 젊고 현대적으로 들린다. 안 그런가? 검색을 자유자재로 함으로써 당신이 시대에 발맞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내가 이상한 늙은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일은 너무도 간단해졌다. 시니어 모먼트라는 끔찍한 순간은 사라진 것이다. 놓쳐버린 말을 찾기 위한 길고 긴 탐색의 순간, 수수께끼 풀이의 순간, 머리를 툭툭 치면 생각날 듯한 그 순간, 손가락만 튕기는 짜증스런 그 순간 말이다. 그냥 구글로 가서 찾아오면 끝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올 수는 없다.
--- p.20-21

《뉴스위크》에 우편 담당 총각은 없었다. 오직 우편 담당 아가씨들만 있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나처럼) 대학 졸업생이고 (나처럼) 대학 신문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나처럼) 여자일 경우, 회사는 그 사람을 우편 담당 아가씨로 고용했다. 만일 (나와 달리) 남자이고, 그 밖의 모든 조건은 나와 같은 경우, 회사는 그를 리포터로 고용해서 미국 곳곳의 사무실로 파견했다. 물론 불공평한 이야기지만 당시는 1962년이었다. 회사는 그렇게 돌아갔다.
--- p.32-33

이런저런 일들을 다 겪고 난 후에 보니, 《뉴스위크》에서 성차별이 얼마나 깔끔하게 제도화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남성에 대해 여성은 열등한 존재였다. 모든 남성 필자들 아래에 허드렛일을 다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딱히 의미는 없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부 사항들을 화려하게 치장해주는 작업마다,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린 보조들이 필요했다. 간부들의 실수를 수정해주는 밑줄 긋기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런 사실들을 다 알아채기에는 너무 어렸다. 다만 나는 서서히 《뉴스위크》에서는 내가 필자로 승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설사 승진했다 해도 그 일을 잘했을 것 같지 않다.
--- p.40

이제 와서는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들의 말은 늘 잘못 인용된다. 언론계는 음모론으로 가득 차 있다. (의도치 않은 실수로 정보를 잘못 사용하는 것도 음모에 포함된다.)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기계적 객관주의와 냉소주의는 기자를 사건에서 지나치게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저널리즘을 사랑해왔다. 나는 편집실을 사랑했다.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그 집단을 사랑했다. 담배를 피우고 스카치를 마시고 포커 치는 걸 사랑했다.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 직업에 종사했다. 나는 그 스피드를 사랑했고, 마감을 사랑했고, 사람들이 신문지로 생선을 포장하는 것을 사랑했다.
--- p.51-52

알코올 중독자 부모는 정말 혼란스러운 존재다. 그들은 틀림없이 나의 부모님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정뱅이다. 나는 그들을 증오한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을 증오한다.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 내가 우상화했던 바로 그 모습이 깃들어 있다. 또한 괴물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모습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항상 괴물이 된다. 내게 어마어마한 힘을 행사했던 사람들(나는 빨간 코트를 구입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심지어 산 다음에도 딱 한 번밖에 안 입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내게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게 된 사람들.
--- p.62-63

얼마 전 내 친구 그레이든 카터가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계획에 대해 경고했다. 식당 경영이야말로 모두가 철들면서 버려야 하는 보편적인 판타지의 일종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지 않으면 식당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식당 경영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따라붙는다. 주인 스스로 매일 거기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건 가장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식당을 열겠다는 판타지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자 피아제의 인지 발달 단계의 최종 심급이다.
--- p.143

하지만 진실은, 이런 종류의 로맨스가 끝장날 때에는 어떤 변명이든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세부 사항만 조금 다를 뿐 이런 이야기는 항상 똑같이 진행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우상화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따라다닌다.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을 받아들여준다. 젊은 여성은 나이 든 여성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 끝.
젊은 여성이 작가라면, 언젠가 그 나이 든 여성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
세월이 흐른다. 젊은 여성이 나이가 든다. 그리고 로맨스가 그렇게 끝장난 것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지금 쓰는 글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과문이다.
--- p.142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이 있다. 나는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건,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망했다는 뜻이다. 부분적인 실패작들도 있다. 평은 좋았지만 돈은 못 번 영화들이다.
히트작들도 만들었다. 내 영화가 히트 하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히트는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것이다.
실패작을 만들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고통스럽고 굴욕적이다. 고독하고 슬프다. 실패작 중 몇몇 작품은 후에 컬트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는 실패작에 바랄 수 있는 마지막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패작은 그냥 실패작으로 남았다.
--- p.165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인생도 계속된다.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행운을 잡는다. 그래도 실패작은 거기 남아 있다. 지난 삶의 역사 속에, 난폭하고 강력한 힘을 빨아들이는 자기장을 거느린 블랙홀처럼.
한편으로 실패의 장점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실패를 통한 성공에 대해, 실패의 힘에 대해 책을 쓴다. 그들은 실패가 성장의 경험이었고, 실패로부터 뭔가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이 맞길 바란다. 내가 보기에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앞으로도 언제든 또 다른 실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 p.172

가끔씩 이런 몽상을 한다. 내가 죽어갈 때, 그 작품을 부활시킬 만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침상에 다가와 작별 인사를 던질 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어요?” 그 사람은 동의한다.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덧붙인다. “제 희곡을 다시 무대에 올려주시겠어요?”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
--- p.173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약이며 고통을 잊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출산할 때 듣는 상투어기도 하다. 엄마는 아이 낳을 때의 고통을 잊어버린다고들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그 고통을 기억한다. 진짜 잊어버리는 건 사랑이다.
--- p.194

노화 과정의 최악의 진실 중 하나는 죽은 친구들을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6킬로미터씩 뛰고 견과류와 딸기류만 먹던 사람들도 갑자기 죽는다. 하루에 위스키를 4리터씩 들이키고 담배를 두 갑씩 피우던 사람들도 갑자기 죽는다. 당신은 하루아침에 추첨 게임의 기로에 놓인다. 궁극적인 기회의 게임. 언젠가 당신의 운도 다할 것이다. 모두가 죽는다.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루에 아몬드를 6개씩 먹든 안 먹든, 신을 믿든 안 믿든.
--- p.198-199

어떤 시점에 이르면 나는 그냥 늙었거나, 나이를 좀 더 먹었거나, 늙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노인이 될 것이다. 나이 때문에 실제로 제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읽거나, 말하거나,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동네를 한 바퀴 걷지도 못할 것이다. 여전히 내가 농담거리로 삼고 있는 나의 기억력도 돌이킬 수 없이 희미해져서,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저 아는 척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앞에 좋은 시절이 단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어떤 강력한 힘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심오한 힘에 기대고도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내가 매일매일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해보았다. 나는 목표를 낮췄다. 셰이크섀크에서 나온 얼린 커스터드와 공원 산책이면 나의 완벽한 오후로 충분하다. (소화제를 지참해야겠지만.) 좋은 연극 한 편과 오르소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면 완벽한 저녁으로 충분하다. (마늘은 빼달라. 안 그러면 잠을 못 잔다.)
--- p.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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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서 맥 라이언처럼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고 싶어서 흉내도 내봤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유브 갓 메일」을 보면서 맥 라이언처럼 이 도시 안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어떤 인연을 기대도 해봤다. 하지만 서서히 나는 맥 라이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판타지는 내 인생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부끄럽지만 노라 에프런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를 읽고 그녀가 정말 좋아졌다. 조금 고약하고 많이 재미있는, 알고 보면 유능한 할머니! 젠장, 멋진 판타지가 생겨버렸다!
- 이경미 (영화감독, 『잘돼가? 무엇이든』 저자)
‘노라 에프런처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살았다. 언론사에서 일하다가 자기 글을 쓰고 자기 영화를 연출하는 여자가 된다는 일에는, 기적이 아니라 ‘노라 에프런’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이 책이 나온 직후에 열광하며 읽고 10여 년이 지나 다시 읽으며, 새로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철들면 익숙하던 것에 뼈아파진다. 그리고, 나는 이전보다 더 이 책에 열광하게 되었다.
- 이다혜 (《씨네21》 기자, 『출근길의 주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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