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콩팥병은 콩팥이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서서히 망가지다가 종국에는 말기 신부전에 빠지게 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과거 필자가 전공의였을 때는 ‘만성 신부전’이라고 불렸는데 이후 개명된 것이다. 신부전의 ‘부전(failure)’이라는 말은 콩팥이 완전히 망가졌음을 의미할 수 있기에 콩팥 기능이 서서히 망가지는 만성 콩팥병의 경우에는 일부만 망가진 초기와 중기 단계의 콩팥병까지 신부전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만성 콩팥병이란 ‘혈뇨나 단백뇨 등 콩팥 손상의 증거가 3개월 이상 존재하거나, 3개월 이상 콩팥 기능이 정상 수준의 절반 이상으로 떨어져 있는 두 가지 경우’를 말한다. 만성 콩팥병을 일으키는 3대 원인 질환은 당뇨병, 고혈압, 만성 사구체신염이다.
이 중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병이다. 혈당이 높으면 혈관에 때가 끼듯이 사구체 등 콩팥의 미세혈관에도 비정상적인 물질들이 쌓이게 되어 콩팥병을 일으킨다. 당뇨병 환자 3~4명 중 1명꼴로 콩팥병이 합병되고 결국에는 말기 신부전에 도달한다. 투석 중인 말기 신부전 환자의 절반가량이 당뇨병 환자이다. 다음으로 흔한 원인은 고혈압이다. 고혈압 환자의 혈압이 높으면 미세혈관으로 이루어진 콩팥 내 사구체의 혈압도 오른다. 사구체의 미세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 증가하면서 사구체가 손상을 받게 된다. 고혈압 환자 5명 중 1명꼴로 만성 콩팥병이 합병된다.
만성 콩팥병은 만성병의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콩팥 기능이 감소하므로 콩팥 기능이 정상의 절반 수준까지 감소하더라도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대개 그저 조금 피곤하다거나 기운이 없고 밥맛이 없는 정도여서 환자 대부분은 콩팥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만성 콩팥병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은 있다. 단백뇨를 의미하는 거품뇨, 혈뇨에 의한 소변 색깔의 변화, 소변을 자주 보거나 자다가 일어나서 소변을 보는 야간 빈뇨, 부종이나 몸무게 증가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만성 콩팥병은 증상이 애매하여 정기 검사를 통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조기에 진단하여 적절히 관리하면 진행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은 콩팥 기능 감소 정도에 따라 5단계로 구분한다. 단계별로 치료에 있어 역점을 두어야 하는 점이 다르다. 초기에는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원인 질환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즉 혈당을 낮추고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하고 단백뇨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둔다. 콩팥병이 발생한 다음에는 콩팥병의 진행을 억제하여 콩팥 기능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콩팥병 정착 단계에서는 콩팥병으로 인한 우리 몸의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콩팥병이 계속 진행되어 마지막 단계인 말기 신부전에 도달하면 투석이나 이식을 하여야 한다. 말기의 전 단계인 4단계에서는 투석이나 이식을 준비한다.
--- 「만성 콩팥병: 만성 콩팥병과 만성 신부전은 다른 질병인가?」 중에서
예전 유행가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이 구절의 “아 어쩌란 말이냐”를 “아 무엇을 먹으란 말이냐”로 바꾸면 만성 콩팥병 환자가 담당 의사에게 흔히 하는 하소연이 된다. 싱겁게 먹으라고 해서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음식에 간을 거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이것은 칼륨이 많으니 먹지 말라 하고 저것은 인이 많으니 먹지 말라는 둥 먹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좋지 않다는 고기, 우유, 치즈,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두유, 채소, 현미, 통밀빵, 콩, 과일, 녹차 등등 다 빼고 나니 먹을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하나?
우선 주식부터 보자.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는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다고 하는 현미밥이나 보리밥, 보리빵, 호밀빵, 통밀빵을 피하라고 하고 대신 흰 쌀밥이나 흰 빵을 권유한다. 왜냐하면 칼륨과 인이 적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콩도 밥에 얹어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는 콩에 칼륨이 많으니 먹지 말라고 한다. 우유에는 인이 많고, 두유에는 칼륨이나 인이 많으니 피하라고 한다. 신선한 채소나 과일도 칼륨이 많다고 먹지 말라고 한다. 이쯤 되면 당연히 먹을 것이 없다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좋지 않다는 것은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밥이나 빵은 흰 쌀밥이나 흰 빵을 먹도록 하고, 칼륨이나 인이 많이 함유된 식품은 되도록 적게 먹는다. 채소를 먹더라도 따뜻한 물에 2시간 이상 담가 두거나 데친 후에 국물은 버리고 건더기만 섭취한다. 이렇게 하면 수용성 물질인 칼륨이 빠져나가므로 채소에 함유된 칼륨의 30~50%를 줄일 수 있다.
고기는 어떻게 할까? 만성 콩팥병 환자 식이요법의 기본은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다. 단백질은 콩팥 기능 악화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콩팥에 과부하가 걸리고 단백뇨를 늘리므로 콩팥 기능이 빠른 속도로 나빠질 수 있다. 반면 단백질 섭취를 줄이면 콩팥 기능의 악화를 방지하고 단백뇨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식욕 부진, 오심, 구토와 같은 요독 증상이 완화된다. 더구나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칼륨, 인, 요산의 증가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단백질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중요 영양소이니 안 먹을 수는 없다. 적게 먹되 생물가(生物價)가 높은 고생물가 단백질을 먹도록 한다. 소고기의 살 부분, 닭의 살코기 그리고 생선 등이 고생물가 단백질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단백뇨가 있는 만성 콩팥병 환자는 단백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단백질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먹은 만큼 단백뇨가 더 많이 빠져나가면서 콩팥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 환자의 식이요법에서 놓치면 안 되는 핵심 사항은 식이를 제한한다고 하여 영양 결핍이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단백질을 제한하되 충분한 열량을 섭취하도록 한다. 우선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한다. 흔히 달콤한 사탕, 꿀, 엿, 잼 등은 혈당을 높이고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콩팥 건강에는 예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온에서 액체인 식물성 식용유는 불포화 지방이므로 이를 이용한 튀김은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 좋은 에너지원이 되는 음식이다.
--- 「기본 식이요법: 도대체 무엇을 먹으란 말이냐」 중에서
진료를 마친 퇴근 시간 무렵, 한 중년 여인이 불이 꺼진 병원 문을 빼꼼히 열었다. 신장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왔다는 그녀는 처음 보는 환자였다. 몇 년 전 혈액 검사 결과 콩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는 게 힘들고 바빠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몸이 쉽게 지치고 피곤해 2년여 만에 다시 방문한 다른 병원에서 콩팥 수치가 매우 높으니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환자는 투석을 피할 방법은 없는지, 꼭 해야 하는지 궁금하고 특히 경제적으로도 너무 막막한 심정이라고 하였다.
이 환자의 콩팥 기능 검사 결과를 보니 투석이나 이식이 필요한 말기 신부전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콩팥이 다시 좋아질 가능성은 없는 말기 신부전 상태에서는 식이요법이나 약물요법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 가족으로부터 콩팥 이식을 받을 수 없다면 투석을 하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소변이 나오더라도 콩팥의 거르는 기능이 떨어진 상태여서 몸에 요독이 쌓여 울렁거리는 증상이 생길 뿐 아니라 칼륨이 배설되지 않아 생기는 고칼륨혈증은 부정맥을 일으켜서 그 자리에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게 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투석을 안 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투석을 하면 돈이 얼마나 들지 경제적인 부분이 두렵다고 이야기하였다.
투석을 하게 되면 소위 ‘집의 기둥뿌리가 뽑히겠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많이 좋아져서 환자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투석 환자는 투석 치료와 관련하여 발생한 치료비의 10% 정도만 내면 된다. 나라에서 치료비의 90% 정도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석 환자가 내야 하는 치료비는 월 20~30만 원 정도이다. 그리고 의료 급여 환자나 차상위 본인 부담 경감 대상자 등 환자와 환자 자녀의 소득 및 재산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본인 부담분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도 활성화되어 있다.
환자에게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마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듯한 충격을 받지만, 투석 치료가 널리 보급되고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요즘 투석 환자의 삶의 질이나 여명은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투석 환자는 창백하고 병색이 짙은 얼굴의 환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좋은 약도 많이 나오고 의료 접근성도 높아져서 스스로 잘 관리하는 투석 환자라면 굳이 투석 환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환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들의 반수 이상이 말기 신부전 때문에 사망하기보다는 심혈관 질환 같은 다른 장기의 이상으로 사망하기 때문에 콩팥 이외의 다른 장기가 나빠지지 않도록 예방과 관리를 잘 한다면, 역설적으로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혈액투석은 주 3회 반나절(4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받아야 하기에 일상에 큰 변화가 따르지만, 대신 투석을 받지 않는 시간에는 일상생활을 더 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환자 중에는 파트타임 일이나 택배 일을 하는 환자,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환자, 어린이집 시간제 선생님, 노래 교실 강사 생활을 하는 환자 등 활동에 제한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 많다.
말기 신부전은 현대 의학으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고 금전적으로 부담이 큰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이 희망을 버리지 말고 힘을 냈으면 한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느 의료진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환자를 사랑하는 신장내과 전문의와 투석 전문 간호사들이 많다. 콩팥병 환자들이 이런 의료진과 동행하며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투석 치료를 시작하고 더구나 기회가 되면 콩팥 이식도 받을 수 있으므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 「투석의 시작: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서는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