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랭이, 몰멩져, 코풀레기, 간세다리, 귄닥사니 벗어져, ㅁㆍ지직허다, 과랑과랑허다…. 벌레, 야무지지 못하고 시원찮다, 코흘리개, 게으름쟁이, 정나미 떨어져, 강단이 있고 야무지다, 햇살이 아주 세다…. 도무지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없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리드미컬한 언어입니다. ~멘, ~헨, ~런… 같이 말랑말랑하고, ~랑, ~방, ~왕… 같은 어미는 프랑스 말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말들이 어느 틈에 입에 척 붙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입안에 굴리고 나면 나직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곤 합니다. 손안에 쥔 듯 가만히 만져지는 말. 말랑해지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말. 고향의 언어에는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ㅁㆍㄹ랑ㅁㆍㄹ랑. 손으로 자꾸 만지고 싶은 말입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기를 만질 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막 찐 호빵을 자꾸 손으로 누르면 손끝에 닿은 ㅁㆍㄹ랑ㅁㆍㄹ랑한 느낌은 마음까지 ㅁㆍㄹ랑하게 만듭니다.
우영팟듸텃밭에 익은 수박을 따서 백중날 바당에 갔습니다. 하루 종일 과랑과랑쨍쨍한 햇살 아래 절파도을 타다가 산물용천수에 담가 둔 수박을 먹곤 했습니다. 수왁수왁 급하게 깨물면 수박 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빨리 바당으로 들어가 절을 타며 놀고 싶었거든요. 수왁수왁에는 바당 소리가 납니다. 여름이 들어 있는 말. 수왁수왁.
마루 끝에 앉아 유지낭유자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뒈싸지는 것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쏟아지는 빗방울 따라 멀리 시선을 보내면 아득히 먼 세상으로 떠나가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어쩐지 슬프고 외톨이 같은 생각. 열한 살 여름 소나기.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돌보듯 키운 꽤를 담벼락에 세워 말리고, 코투리가 벌어지면 한약 약사발을 나르듯 꽤단을 날라, 한여름 불같은 갑바에 엉덩이가 데이면서도 한 알도 땅바닥에 튀지 않게 털어 모았습니다. 그것으로 송아지도 사고 우리들 학비며 동생의 병원비를 댔습니다. 그 귀한 꽤로 뺀 기름을 담아 보내주셨습니다.
모멀ㄱㆍ루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끓는 물에 숟가락으로 둑둑 끊어 넣고 소금 간을 하면 제주도식 수제비인 모멀 ㅈㆍ베기수제비가 됩니다. 모멀ㄱㆍ루로 빙떡을 만들고, 모멀 ㅆㆍㄹ메밀 쌀을 끓는 물에 붓고 휘저어 모멀죽을 만들었습니다. 엄마는 그걸 좋아했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아플 때 엄마는 닝닝하고 미끄덩한 뜨거운 모멀죽 한 그릇을 먹고 기운을 냈습니다.
고기 볶는 코소롱한 냄새가 마당에 가득합니다. 생이들도 머리를 조짝조짝거리며주억거리며 마당에 모여 있습니다. 빨랫줄에는 셍성옥돔 세 마리가 걸려 있습니다. 숯불에 굽고 제상에 올릴 것입니다. 덜 마르면 오고셍이본래 그대로 굽기 어렵기에 꾸득하게 말려 궤양조심스레 구워야 합니다.
정지에는 엄마와 동네 삼춘이 제사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빙떡을 말고, 적갈산적을 만들고, 아버지는 마당 구석에서 고기를 삶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빙떡을 차롱소쿠리에 담아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눕니다. 제삿날 내가 하는 중요한 부름씨입니다. 차롱을 들고 가다가 푸더지면넘어지면 음식을 버리기에 돌부리에 걸리지 않게 멩심해서명심해서 걸어야 합니다.
싸락눈도 멈추고 편지지 위에 펜이 사각이는 소리만 들립니다. 등잔에 배염처럼 똬리를 튼 심지의 호야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 걸린 스위트?홈이라고 수놓아진 하얀 횃대포에도 크고 작은 굴메그림자가 일렁이고요. 눈 오는 밤은 그렇게 사각사각 도란도란 깊어갑니다.?
봄이면 감꽃 향기가 집안으로 들어왔고, 여름을 몰고 오는 빗방울이 유지낭 잎사귀를 두드릴 때마다 초록이 짙어지고, 화장실 뒤 대나무밭에는 초록비가 내렸습니다. 학교에서 왔을 때 송아지가 막 태어나 마당을 비틀거리며 걸었고, 엿장수 가윗소리 맞춰 해피가 짖으면, 우리는 꿀꺽 침을 삼키며 쇳조각을 봉그레주우러 다녔습니다. 저녁마다 미역이며 자리를 사라고 웨울르는외치는 해녀가 올레 앞으로 지나갔고요. 마당에 친 모기장 안에서 별을 보다 잠이 들면 이슬이 내리곤 했습니다.
인동고장인동꽃 따먹고 찔레도 꺾어 먹고, 밭담 가시낭 얽어진 곳에 열린 보리탈멍석딸기을 타 먹고, 앞밧듸서 삥이싱아도 뽑아 먹고, 삼동 타 먹고, 입안에 단물 조금씩 남기며 계절을 보냈습니다. 계모임 갔다 온 부모님이 내미는 동고리를 입 한쪽이 찢어져라 물고, 『집 없는 천사』를 읽으며 눈물 ㅈㆍ베기수제비, 굵은 눈물 흘리던 밤들. 서오누이 아옹다옹 다투다가 부지뗑이부지깽이로 매맞아 울기도 하고, 베또롱 잡고 깔깔거리기도 하던 그 시절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던 집에서 우리는 훌쩍 자랐고, 짝을 만나 모두 육지로 떠났습니다.
아이고, 무사 기억 안 나느니. 아방이 올레 들어오자마자 경찰이 조차 들어왕 탕탕탕 총 쏘난 맞앙 픽 쓰러지지 않허느냐, 게난 우린 집 뒤이 곱았당 어멍이영 뛰어강 아방, 아방 불러신디, 총 맞은 디서 배설이 와락 ㅅㆍㄷ아지는 거라. 그걸 어멍이 손으로 쓸어 담았시녜.
할망네 국숫집을 떠올리면 어느덧 나는 새내기 교사로 돌아가게 됩니다. 파릇했던 내 젊은 시절. 동학년 선생님들과, 매일 껌처럼 붙어 다녔던 선배 언니와 지냈던 일들이 국수 가락처럼 이어지곤 합니다. 늦게까지 학교에서 일하고 할망네 골방에서 국수를 먹던 시절, 그리운 한순간이 스냅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잠시 허리를 펴고 문틀에 기대어, 흐뭇하게 우리를 지켜보시던 할머니도 늘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