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목표가 있어야 올바른 삶을 힘차게 살 수 있어요. 인생의 목표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죠. 여러분은 인생의 목표가 뭡니까? 부자가 되기를,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는 등 염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승보살의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무상정등정각’이에요. 부처님 같은 깨달음,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 한마디로 최상의 깨달음이죠. ‘나도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서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이게 바로 유일무이한 보살의 목표입니다. ‘나도 부처님 같은 경지에 이르러서 많은 중생을 발고여락(고통을 뽑아주고 즐거움을 안겨주리라)’하는 게 목표죠.
그래서 “오백 장자의 아들이 이미 이 발보리심을 일으켰으니까 이제부터는 정토의 수행에 대해 설해주소서” 하고 얘기를 한 겁니다. 여러분도 발보리심을 일으켰습니까? 아직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것이 오늘 이 순간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해요. ‘내 인생의 목표는 해탈이다. 나도 해탈! 너도 해탈! 모두 해탈!’ 인생 목표가 딱 서면 즐거움에도 너무 탐착하지 않게 되고, 괴로움도 그다지 힘들게 안 느껴져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즐겁게 받아들일 수가 있죠.
--- p.33~34
『유마경』에 색즉시공·공즉시색·색즉시색, 세 가지 경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마경』을 ‘소小화엄경’이라고 한다고 했죠? 『화엄경』의 축소판으로, 세 가지 경지가 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색즉시공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성문 연각들을 유마거사가 공즉시색으로 안내해주는 거예요. 공즉시색에 머물러 있는 보살들은 색즉시색으로 안내해주죠. 『유마경』 하나를 보면 혜안과 법안과 불안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여실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 p.56
결국 『유마경』의 핵심 사상은 ‘불이법문不二法門’입니다. ‘둘이 아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거죠. 이 ‘둘이 아니다’라는 말과 ‘하나다’라는 말은 또 달라요.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맞아요. 근데 ‘몸과 마음은 하나다’는 또 안 맞아요. ‘몸과 마음이 하나다’ 그러면, 몸이 죽으면 마음도 죽어야 하잖아요. 안 죽어요, 여러분. 안 죽어서 걱정입니다. 몸이 죽을 때 마음도 죽어야 하는데, 몸은 죽었는데 마음은 안 죽어요. 그러니까 귀신이 되고 영혼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면 완전히 별개냐? 또 그건 아닙니다. 몸이 아파지면 마음도 우울해지죠?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좋아지죠? 즐거운 일이 생기면 몸도 컨디션이 좋아지죠? 왜 그럴까요? 둘이 아니기 때문이죠. ‘불이不二, 둘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이 말이 진리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도 둘이 아니고, 번뇌와 보리도 둘이 아니고, 몸과 마음도 둘이 아닙니다. 이렇게 ‘둘이 아니다’라는 말로 전체의 의미를 『유마경』에서는 회통하고 있어요.
--- p.145
여러분들이 앞으로 무슨 경을 배우든, 명상을 하든 참선을 하든 간에 불교의 핵심은 생로병사를 해결하는 데 있어요. 생로병사를 해결하는 방식이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무아법으로 해결하는 방법, 대아법으로 해결하는 방법, 시아법으로 해결하는 방법이에요. 나중에 보면 사실은 무아가 대아고, 대아가 시아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유마경』이 좋은 게 세 가지 법을 모두 설하고 있어요. 십대제자들과 설할 때는 “너무 무아에 떨어지지 마. 대아가 있잖아”라고 이야기해요. 또 지금 대아에 너무 빠져 있는 사대보살과 이야기할 때는, “너무 대아, 대아, 하지 마. 시아가 있잖아” 하는 거예요. 지평을 넓혀주는 거예요.
--- p.193
참선은 본래 ‘무수무증無修無證’입니다.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완벽하고 충만하다는 거예요. 우주는 완벽하게, 인과의 법칙은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인과의 법칙을 정말 믿는다면, ‘내가 좋은 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왜 안 알아주지?’ 하고 안달할 필요도, ‘내가 나쁜 짓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피해갈 수 있을까?’ 하고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래서 굳이 까치발을 들고 살 필요가 없다는 거죠. 현대인들이 자꾸 남하고 비교를 하니까 까치발을 들고 살아요.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고 까치발 들고 걸어다니면 피곤합니다. 있는 그대로 발을 툭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살면 편안한데 서로 까치발을 들고 사니까, 조금 더 커 보이고, 잘나 보이고, 있어 보이려고 하니까 서로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까치발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인과법에 순응해서 사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 p.218
이 대목이 바로 『유마경』의 하이라이트예요. 히말라야산맥의 맨 꼭대기를 에베레스트산이라 하는 것처럼 『유마경』의 정상, 꼭대기가 바로 지금 읽은 「입불이법문품」의 요 대목입니다. 유마의 침묵. 문수사리보살이 말로써 표현하기로는 최고로 잘 표현한 겁니다. “일체 법에 있어서 언설이 없으며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어서 문답을 떠난 것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언설로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설명입니다. 말로는 이보다 더 잘할 순 없어요. 그래 놓고 문수보살이,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설하겠습니까?”라고 유마거사한테 물었을 때 “유마장자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묵묵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침묵으로 답변했다는 거죠. 묵묵한 침묵이지만 우레 같은 소리라는 겁니다.
예로부터 선사들이 이 대목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결코 진리는 말로 설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깨달을까요?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밖에는 표현이 안 돼요. ‘몸은 내가 아니야. 마음은 내가 아니야’라 했는데 이 대목에 와서 ‘몸가짐이 바로 나야. 마음가짐이 바로 나야’를 말하는 거죠.
“언어는 마치 별빛과 같고 침묵은 보름달과 같다네. 어두운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니 온갖 별빛이 무색해진다네.” 필자가 여기에 붙인 게송이에요. 유마의 침묵을 설명하는 게송입니다. 별이 없어지나요? 별은 그대로 있지만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르면 별이 더 이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하반야바라밀’을 꾸준히 연습해서 크고 밝고 충만해지면, 온갖 번뇌가 별빛처럼 무색해지는 게 바로 ‘바라밀 명상’입니다.
굳이 번뇌를 없애려고 할 필요 없어요. 보름달이 떠오르면 별빛은 그냥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걸 무색해진다 그래요. 여러분들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앉으나 서나 오나 가나 자나 깨나 연습해서 스스로 크고 밝고 충만함을 느끼게 되면, 마치 보름달이 떠올라서 온갖 별빛이 무색해지는 것처럼 모든 번뇌가 빛을 잃는다……. 그것이 바로 대아 체험인 ‘바라밀 명상’이죠.
--- p.336~338
진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정말 불가능하고 어렵지만, 굳이 표현을 ‘불이’ ‘둘이 아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둘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합장하고 인사할 때 이 합장의 의미가 바로 그겁니다. 왼손도 손이고 오른손도 손이라는 입장에서는 같아요. 하지만 왼손은 왼손으로 용도가 있고 오른손은 오른손으로 용도가 있는 건 달라요. ‘체’, 본체는 같지만 ‘용’, 쓰임이 다른 것. 이게 바로 ‘둘이 아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우리가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무분별하게 자연을 해치는 일도 삼가게 되죠. 필요한 만큼 적당히,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취하는 식으로 정책 같은 것들이 되어야 돼요.
--- p.356쪽
결국 도를 닦는다는 것은 무위법을 깨치는 거예요. 무위란 ‘할 바가 없다’는 겁니다.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죠. 할 바 없음이 되려면 ‘무소득심’을 깨쳐야 돼요. 얻을 바도 없고 할 바도 없으니까 무상, 무상이라는 건 고정된 상이 없다는 것, 아바타라는 소리입니다. 무작. 지을 게 없어요. 그믐달을 보름달로 만들려고 헛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보름달이니까요.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 말고 무소득을 얻으려고 해야 돼요. ‘얻을 바 없음’을 얻어야죠. 깨달음조차 구해서는 안 돼요.
--- p.395쪽
중생의 병 중에서 가장 핵심은 자기가 아바타라는 걸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질적인 병입니다. 병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없어져야 한다는 거죠. 중생의 고통은 집착 때문에 생기는 건데, 그것이 소멸하려면 내가 없어져야 해요.
나를 놔두고 병만 다스리려 하니까 한계가 있는 거예요. 무아법에 통달해야 진실로 병이 없어지고, 노병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탈이 되는 거죠. 그런데 무아만 있는 게 아니라 무아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대아, 대아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시아, 이게 바로 초기불교, 대승불교, 선불교로 발전해가는 거예요.
--- p.398쪽
『유마경』이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경전이 아닌가 싶어요. 왜냐하면 병고를 엄청 겪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 『유마경』이야말로 병의 원인과, 또 어떻게 하면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나만 벗어나면 되는 게 아니다. 온 중생이 다 병이 나아야 내가 나은 거다’ 하는 대승사상이 잘 갈무리되어 있기 때문이죠.
유마거사야말로 부처님의 아바타입니다. 부처님이 만약에 재가자로 오신다면 이런 모습일 것을 보여줬어요. 『유마경』에서 여러 가지 좋은 대목이 많지만, 필자에게 가장 와닿았던 건 “지금 이 세상이 보살에게는 불국토다”란 겁니다. 우리는 가끔 ‘나도 불국토에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근데 지금 이 사바세계가 보살도를 닦는 사람에게는 최적화된 곳이에요. 천상세계에 가면 내가 도와줄 사람이 없고, 법문을 들을 사람도 없습니다.
--- p.44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