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시대에 현대인들이 영성을 추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도화된 종교의 영성이고 또 하나는 제도화된 종교 밖에서 시도되고 표현되는 대안적 영성이다. 대안적 영성은 종종 개인주의적으로 표현되고 추구되곤 한다. …… 개인주의적 경향이 부상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신성한 것을 국가, 사회, 민족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과 연결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영성의 확대와 함께 신성한 것은 더 이상 국가, 민족 그리고 제도로서의 교회와 집단적으로 연결되거나 그것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다. 종교적 소속감보다는 개인의 자기 표현력 그리고 자기 체험이 중시된다. 현대인은 대중문화 속에서 이러한 개인주의적 영성이 표현하고 나누 있다. 대중문화를 통하여 현대인들은 개성과 다원성을 표현하고 향유할 뿐 아니라 그곳에서 영적인 만남과 체험을 한다.
---「1_ “세속 시대와 대중문화의 영성”」중에서
포스트휴먼 사유는 전통적인 안트로포스 사유에서 포착되지 않은 열린 관계적 공간을 주목한다. 이 관계적 공간은 사물성으로 추락하거나 휴먼의 주체성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고유한 정체성의 근원이며 새로움을 창출하는 새창조의 무대이다. 특히 인간이 아닌 동물, 환경, 기계, 인공지능 등등 비인간과 새로운 관계설정을 시도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는 전통적인 위계적, 폭력적, 일방적 관점을 넘어선 새로운 관계의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다. 개인주의적, 인간주의적 주체 개념에 조탁 되지 않은 민주적이고 중립적이며 다면적인 인간-비인간 연속체를 어떻게 문화적으로 구축할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법 모색은 문화이론으로서의 포스트휴머니즘의 중요한 과제이다.
---「2_ “휴머니즘의 빛과 그림자”」중에서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화현상 중 하나가 바로 “뉴트로” 문화이다. 요즈음 1980~1990년대 유행하던 패션, 음악, 상품 디자인 등 그 시대의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최첨단의 디지털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다소 어눌한 그 시절의 아날로그 문화에 매료되고 있다. 이를 “뉴트로”라고 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에게 그러한 문화 상품들은 소비 욕구를 자극할 만한, 향수와 같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억을 매개로 하는 연관성과는 별개로 과거의 문화 상품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소비한다. “뉴트로” 문화는 이미지의 영향력이 개인의 기억과 소장 욕구를 초월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2_ “뉴트로 문화로 드러난 이미지 지배의 사회”」중에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특성상 인플루언서들은 외모나 패션 등의 시각적인 영역에 상당한 비중을 두기 마련이다. 유명 인플루언서의 경우, 컨셉회의를 도와주고 전속 메이크업과 사진작가까지 대동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각적 이미지는 다른 매체들(말, 언어, 소리 등)을 압도한다. 소셜 미디어 세상에서는 이미지가 제일의 언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뉴미디어 속 ‘외모’의 중요성은 두드러진 특징 하나인데, 인플루언서의 경우 그 경향성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미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멋지고 예쁜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구독자들이 몰리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4_ “뉴미지어 사회 속의 ‘인플루언서’ 현상에 대한 기독교적 고찰”」중에서
토마스 쿤에 의하면 과학기술의 발달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paradigm shift)이다. e스포츠와 디지털 세대의 환경과 특성을 아날로그 패러다임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상이한 두 세계관 사이의 단절을 불러온다. 한국교회의 감소현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선교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사회문화적 괴리현상이 원인 중 하나임은 명확하다. 교회의 이천년 역사는 물리적 공간에 모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모임의 공간이 가상현실/증강현실로 확장되고 있는 대변혁에서 교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
---「5_ “가상세계와 증강현실에 상주하는 디지털 세대에 대한 전도 가능성”」중에서
영화 〈사랑과 영혼〉이 1996년 2월 한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그해 연말에는 모성애의 주제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고스트 맘마〉가 개봉되면서 국내에서 혼령에 관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이루었음이 분명하다. 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는 판타지를 대중문화의 주류로 몰고 갔고, 이후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내에서도 판타지물을 양산하는 계기를 이루었던 것으로 헤아려진다. 특히 국내 텔레비전 드라마 부문에서 판타지물은 혼령 또는 신령 판타지가 주류를 형성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6_ “한국 혼령 판타지 드라마의 종교적 조명”」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언텍트(un-tact, un-contact) 상황에 놓인 현재 시점에서, 과학 기술을 통한 콘텍트 관계를 유지하는 우리 또한, 료타가 가족의 의미, 아버지의 의미를 찾는 것처럼,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답을 찾는 중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듯, 혈연관계 여부를 떠나 정서적 교감이 되는 대상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는 인간의 간절한 유대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
---「7_ “팬데믹 시대의 가족 서사”」중에서
가족을 사적인 영역으로 절대화하고 반사회적 공간으로 보호하려는 시도는 극단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을 이제 ‘내 방’ 안에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대인들의 주거 공간을 주목해 본다면 가정 내부에도 이런 단절이 지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가족을 성소로 만들고 절대화시키기 위한 근대의 원리가 이제 가족 자체를 분리시키고 해체하는 것으로 작동하게 되는 셈이다.
---「8_ “가족의 탄생”」중에서
결국 대중 영화의 감상에서 우리는 시선을 한 장면에 집중시켜 사색을 통해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해석한다기보다, 대부분의 경우 산만하게 정신이 분산된 상태에서 감독이 프레임을 통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이미지와 영화 속 이야기의 갈등과 해소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수동적 소비자로 쉽게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화 속의 동적 움직임과 음향은 더욱 생생한 현실감을 창조하여 우리를 현실처럼 느껴지는 영화 속 영상에 몰입하게 하고, 관객은 자신이 변경시킬 수 없는 영화속의 이야기를 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수용하게 된다.
---「9_ “다문화 영화들 속에 비친 한국의 기독교”」중에서
영화 〈벌새〉에 등장하는 은희가 경험하는 폭력에 대한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의 대안은 미미하다. 가정과 사회의 폭력에 기독교 공동체는 소수의 쉼터 운영교회를 제외하면 무관심하다. 기독교 공동체는 신약성서와 깊이 단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비폭력은 기독교 공동체의 사회적 목표 또는 기독교적 이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비폭력이 기독교 신앙의 토대이며 기독교 공동체의 기초라고 말한다.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비폭력이 기독교의 토대임을 밝힌다. 영화 속 은희의 이야기는 현재의 기독교 공동체에 호소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 오히려 은희의 이야기는 기독교 공동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10_ “한국 여성 영화에 대한 기독교의 응답 가능성”」중에서
방탄이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음악과 활동 속에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메시지를 담았고,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난과 좌절을, 그리고 권력과 자본에 의한 차별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방탄의 음악은 단순히 즐기고 지나가는 음악이 아니라, 들으면서 메시지를 알게 되고, 그 메시지 때문에 거듭 거듭 반복해서 듣게 되고 보게 되는 그런 음악이다.
그래서 방탄이 노래하는 고난과 좌절이 바로 나의 고난과 좌절로 여겨지고, 방탄이 그것들을 극복해 나아가자는 다짐과 메시지가 곧 나의 다짐과 희망으로 여겨지기 된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갖는 이런 힘은 지구촌 자본주의가 자본과 권력을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구축한 수목적 위계와 억압의 체계를 경험한 모든 세대에게 공감대를 얻는 것이다.
---「11_ “방탄소년단을 철학하다”」중에서
찬송가의 한국화를 위해 서양의 음악 기법과 한국전통음악 기법이 조화롭게 만나면서 서양의 음악에 동화되지 않고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리가 ‘함’과 ‘접’이다. …… 최치원의 ‘포함삼교’(包含三敎)와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말 속에서 ‘접’(接)은 한국의 굿 문화에서 ‘신바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천신(天神)과 접하여 생기게 된 신명, 즉 신바람이 자기 밖의 무리(群)에게 생명의 가치로 접목된다.
이리하여 ‘함’과 ‘접’은 타자를 품으면서, 동시에 일체에게 생명가치를 선사하는 생명신비의 원리가 된다. 한국의 찬송가가 서양 찬송과 서양음악 기법을 찬송가 안에 품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성도들에게 신앙고백을 하게 하고 구원의 체험을 하게 하는 힘은 ‘함’과 ‘접’의 혼종성 원리에 기인한다. ‘함’과 ‘접’으로서 혼종성에서는 자기의 주체성과 정체성이 그대로 지켜진다. 이것이 『21세기 찬송가』 의 한국화된 곡들이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다.
---「12_ “트로트와 개신교 찬송가에 나타난 ‘한국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