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는 누구인가
‘아웃사이더(OUTSIDER)’, 이 단어가 시사하는 오늘날의 의미는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나, 일반적으로 일정한 ‘테두리’ 밖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그럼 여기서 ‘테두리’란 누가 규정한 것이며 무엇을 기준으로 안과 밖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서 발안한 본 전시는 우리 주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안과 밖 논리에 대한 무의(無義)함을 역설하고 수많은 아웃사이더와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아웃사이더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어떤 아웃사이더는 사회적 소외자이다.
어떤 아웃사이더는 독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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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사회의 경계선 밖에 두는 풍조 속에서, '아웃사이더'라는 지칭 자체는 차별이라는 비난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이들을 하나의 편견을 덧입혀 바라보는 것이 아닌, 예술가 그 자체로 보는 시도를 행해야 한다. 또한, 앞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이들의 배경 외에 순수한 예술 그 자체를 먼저 보아주기를 바란다.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을 찾아보라는 시도가 아닌, 누구나 하나의 결점을 갖고 사는 현실에서 이들의 예술이 갖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아웃사이더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1945년 장 뒤뷔페는 창작에 대한 자각 없이 만들어진 창작자의 작품을 아트브룻(ArtBrut)이라 이름 지었다. 뒤뷔페가 정의한 최초의 아트브룻은 다소 폐쇄적인 의미로 이용되어 때로는 정신의학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며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강박 및 집착과 함께 언급된다. 하지만 이 용어는 1972년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로 영번역된 후 그 개념 또한 확장되기에 이르렀으며, 오늘날 다양한 실천을 아우르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예술과 문화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의식의 변화를 전방에서 이끌어내며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동안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한 연구는 뒤뷔페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제도권 밖의 예술로 서술되거나 정신병리학 또는 미술치료에 관점에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창작자의 작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웃사이더의 실천은 더이상 ‘정상’의 반대항에 머무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 이분법 자체를 무효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본 전시는 아웃사이더 아트가 가진 이러한 잠재력을 증명하는 자리이다. 아웃사이더 아트를 범주화하는 장애인, 사회 소외 계층, 독학 아티스트 등과 같은 존재들은 지금까지 타자화의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가고 정체성을 구축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영역에 침입한다. 벗이미술관은 다양한 실천의 경로에서 국내의 아트브룻, 아웃사이더 아트의 발전을 위해 현재 활발한 연구 및 전시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발달장애 예술인 단체 로아트, 그 밖에도 현재 수많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가 우리와 함께 활동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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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 경계를 넘어
한의정 (충북대학교 교수)
국내 정신병원에도 환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순수창작 공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용인정신병원에 마련된 리빙뮤지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빙뮤지엄 운동은 30여 년 전 뉴욕 주립 정신병원에서 시작된 재활프로그램으로 “스스로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무기로 활용할 것”을 모토로 한다. 이곳에서는 환자들만의 특별한 심성 경험을 창작표현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작업 환경을 마련해주고, 같은 공간에서 작품 전시도 함께 하고 있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몇 년 새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 스튜디오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수원의 에이블 아트센터, 사단법인 로아트 등이 장애인 예술가 양성사업 또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로 조직되어 장애인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육성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육성 지원된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이 경계를 넘어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기회의 확보이다. 벗이미술관이 대중과 아웃사이더들이 동등한 ‘벗’이 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아웃사이더들도 인사이더들도 경계를 넘어야 한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가 말했듯 진정한 감성혁명은 본인의 자리라 생각한 곳을 넘어서는 순간 가능하다. 아웃사이더들의 내뱉는 소음을 모두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변화시켜주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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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브룻과 아웃사이더 아트
요한 파일라허 (오스트리아 구깅 미술관 관장)
아웃사이더 아트는 종종 아웃사이더들이 만들기는 했지만, 미술 사회에 통합된 지 이미 오래된 예술 사조이며 이미 역사의 일부이다. 아돌프 뵐프리(Adolf Wolfli), 알루아즈 코르바즈(Aloise Corbaz), 아우구스트 발라(August Walla), 요한 하우저(Johann Hauser), 마틴 라미레즈(Martin Ramirez), 카를로 지넬리(Carlo Zinelli), 헨리 다거(Henry Darger) 같은 유명 미술가들은 세계 미술의 일부가 되었고, 더는 이 위치에서 밀려날 일이 없다. 아트브룻은 개개인의 창조적 잠재력에서 오고 문화에 속박되어 있지 않으므로,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며 항상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미술 사조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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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와 복지의 운동 사이에서
아트브룻을 둘러싼 일본의 광경에 대해
야마다 소 (보더리스 아트 뮤지엄 NO-MA 학예사)
복지 분야에서는 이러한 단어를 파악하는 방식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 아트브룻의 의미를 둘러싼 간극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상황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장 뒤뷔페에서 유래한 아트브룻은 1940년대 프랑스 미술계에서 제창된 개념으로 미술 역사의 일부가 된 데에 반해 후자의 복지에서 온 아트브룻은 현재진행형에서 일어나는 복지의 움직임의 맥락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연구되고 해석되어야 하며, 운동은 향후 전개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벡터(vector)의 차이가 있다.
필자가 소속된 NO-MA는 사회복지법인 운영에서 모태가 된 미술관이다. 복지, 미술 양쪽에 한발씩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역사와 운동의 갈래로 분단되었지만, 그 어느 쪽에도 경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어떠한 이념에 입각한 것인지 이해하고 미술과 복지의 분단을 심화시키지 않고 이항을 탈구축하는 것이 보더리스(Borderless)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예술가들의 독특한 표현을 직접 접하는 본 기관의 학예사로서 ‘그것이 아트브룻인가 아닌가’하는 질문은 제쳐두고 표현의 재미를 솔직하게 사회에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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