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 중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과연 몇 %나 될까? 수학과 관련되어 세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 첫째, '수학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에 꿋꿋이 인내하며 열심히 문제를 푸는 다소 고지식한 사람, 둘째 빨강색 하드 커버 『정석 수학』의 위용에 기가 죽어 수학의 암기 과목화를 이룩한 사람. 셋째 수학 시간을 수면 시간으로 애용하는 사람.
여하튼 수학은 그 분명함과 명석함 그리고 견고한 질서로 우리에게 근접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어딘가 분명히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학을 전공하거나 좋아한다는 사람을 괴팍한 사람쯤으로 여기게 되는 듯하다. '1+1=2'라는 당연한 수식을 증명하기 위해 칠판 하나를 가득 채우는 수학의 위풍당당함. 그 세계와 친해지고 싶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도 단단하게 벽으로 둘러 쌓인 엄숙함과 권위에 질려 쩔쩔매는 우리에게 재기발랄한 『수학의 몽상』은 주목할 만하다.
『수학의 몽상』은 '자유로와지기, 다르게 생각하기, 스스로 생각하기' 등 자유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지식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진보평론』 편집위원 이진경의 작품이다. 골치 아픈 수학을 다룬 책답지 않게 이 책을 읽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글쓰기가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수학을 좀 더 친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배려인 듯하다.
「사람도 저마다 다른데 사람과 사과와 책과 개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여러분은 이런 등가관계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등가라는 것을 확신하는가? ······보신탕에 흥분하는 브리지트 바르도와 동물애호가 협회 회원들은 사람과 개가 등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개와 소, 개와 돼지가 등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개와 소, 개와 닭 등 모든 동물이 등가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개와 사과, 개와 양파가 등가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수학은 이런 등가관계를 가장 철저하게 이해한다. 수학에서는 사람과 개, 사과, 책, 자동차와 코기리가 모두 등가적이다. 수로 추상을 한다는 것은 이처럼 철학자나 사상가, 운동가 등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등가관계를 보게 해준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그것이 어떤 모양을 했든 간에, 각각의 개체는 하나라는 점에서 등가적이다. 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본문 중에서
이렇듯 판에 박힌 글쓰기에서 벗어나 수학을 보다 인간다운 것으로 만들려는 저자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최대한 가벼움을 유지하려 애쓰며 수학의 기본 문제들, 예컨대 미적분이 수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근대 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는 도대체 어떤 대단한 일을 하였기에 그런 칭호를 받았는지 등을 짚어나간다.
「왜 나는 다시 수학을 공부했는가? 질문을 받고 보니 좀 우습고 쑥스럽다. 나는 수학을 다시 공부했다고 말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하던 수학도 그만 둘 나이에, 결코 전공 삼아 본 적도 없는 수학을 다시 공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다만 예전에 관심 있었던,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관심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근대수학의 역사를 다시 공부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수학, 아니 엄격하게는 수학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을 했던 것은, 그저 공부하고 사유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해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책은 쉽게 써달라는 주문에 따라 거의 다시 씌어졌고, 그 결과 엄숙한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 가벼운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스스로 정리해두고 싶었던 것을, 충분하지는 않다고 해도, 그럭저럭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로선 소기의 목적은 대략이나마 달성한 셈이라, 별로 아쉬움이 없다. 더구나 수학이란 말에 들씌워져 있는 엄숙함과 근엄함이 너무도 싫었던 터라, 이런 식의 가벼움은, 진지함을 잃지 않는 한에서라면 오히려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 이진경, 『출판저널』3월호 중에서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다들 눈치챘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수학은 미분과 적분, 수열, 함수 그 외의 유명한 정리들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수와 기호 그리고 도형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추상에의 의지와 그 추상을 가능케 해주는 자유, 그 자유가 최고조로 발현되어 이 세상을 계산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 세계관 그리고 이 세계관 자체를 부정한 또 다른 정신, 이 모든 것들이 묘하게 얽혀 꿈틀대며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 그것이 수학이다.
이진경은 이 책을 "엄숙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가벼운 책"이라고 설명한다. 학문의 범주에서 수학이 담당하는 무게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한 말일까?
물론 이 책은 애써 그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하려 했지만 수학이 선천적으로 가진 진지함의 중량은 떨칠 수 없는 것 같다. 한 세기의 주춧돌이 된 유수한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눈에는 적어도 너무 가벼워 거론할 수 없는 것들은 없었을 테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