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새벽 3시. 나는 창동 길바닥에 서 있었다.
---「첫문장」중에서
하나님 제발 말씀 좀 해주세요! (고요하다) (내 가슴에 풍랑이 인다) 하나님, 하나님도 저 때문에 수시로 시험에 드셨겠지만 저 또한 하나님 때문에 자주 시험에 든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 p.19
그런데 요즈음은 기도실에서 깜짝 놀라는 일이 자주 있다. 글쎄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 주일 전인가? 그때도 일찍 와서 이곳에 앉아 가만히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글쎄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이야! 나는 ‘울고 있는’ 내 자신에 너무도 놀라 잠깐 동안 내가 정말 나인가,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 현실인가 혹시 꿈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때 정말 신기했다.
--- p.30
얼마 전, 그 날도 비가 오는 수요일 저녁 예배였는데 빈자리가 꽤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비가 오는 수요일 저녁 예배에 오신답니다.” 하하.
--- p.35
내가 술 좋아하는 줄을 너무도 잘 아는 친구 남편은 소주 한 병을 처음 딸 때마다 '11조 떼어야지'하면서 내 잔을 듬뿍듬뿍 채워주었다. 만난 지 20년 된 친구 남편은 이제 너무 친해져서 얼마 전 내가 술 끊었다고 하니까 거짓말 작작 하라며 꿀밤을 날리기도 했다.
--- p.46
엊그제 번개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담배를 피우면서, 하나님께 담배 피우게 해달라고 일 년 동안 떼써서 겨우 허락받은 거라고 말해줬더니 친구들이 다 쓰러졌다. 그 기도를 일 년이나 들으신 하나님이 심히 괴로우셨을 거라고. 처음에는 내가 혹시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귀를 좀 의심했을 거라고.
--- p.65
요 근래 들어 최고의 음주량을 기록했다. 더구나 나중에 짬뽕을 했기 때문에 머리까지 아팠다. 깨질 것 같은 머리와 울렁거리는 가슴을 겨우겨우 달래 자리에 누웠다. 오늘처럼 취하면 하나님께 면목이 없다. 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지만 하나님,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건데요? 나는 하나님께 살짝 주정을 부렸다. 모든 것이 별처럼 아득하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만족했다.
--- p.93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님. 나는 마음속으로 주님을 불렀다. 그것이 기도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흐느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처럼 울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삶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그곳에서 나를 그 어떤 곳으로(아마 좋은 곳이리라, 어떤 축제의 장소이리라) 이끌어 주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렸고, 그 간절함은 눈물이 되어 계속 흘러내렸다. 나는 슬프면서도 한편 행복했고, 어떤 상실감에 사로잡히면서도 완전한 어떤 것을 느꼈다.
--- p.120
나는 교회가 좋다. 이 예배당이 좋고, 저 십자가가 좋다. 교인들이 성경책을 사락사락 넘기는 소리,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 목사님의 전심이 담긴 말씀, 다 좋다. 좋다 뿐인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마음 애통한 마음이 가득하여 비록 눈물로 시작하지만 끝날 즈음이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예배가 좋다
--- p.131
교회를 올라가는 제기동역 1번 출구 지하철의 돌계단까지 사랑스럽다. 낮은 언덕길에 오를라치면 저만큼 애인이 서 있는 것처럼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진다. 어느 날은 아무도 없을 때를 기다려 교회 외벽의 벽돌을 하나하나 더듬어 본 적도 있다. 그 느낌이라니! 예수님의 숨결이, 하나님의 은은한 사랑이 햇볕에 잘 구워진 벽돌처럼 따스하게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은 나를 감격시킨다. 잘 마른 빨래처럼 티 없이 아름다운 공간!
--- p.133
어두운 청년교회 예배당은 더욱 좋았다. 아무도 없고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아 후끈했지만 이미 내 영혼도 후끈 달아오른 터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두운 곳에서의 기도가 더욱 몰입이 잘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도 참 좋다. 물 한 잔 떠 놓고 한 모금씩 마시면서 나는 가만히 묵상했다. 이전처럼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감격에 겨웠다.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배의 감격이 늘 임하기를!
--- p.157
하나님. 예전에 안데르센 동화집인가 하여튼 어디선가 읽은 동화인데요, 사람들이 멋지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들길을 걸어 교회로 갔답니다. 화창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지요.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침을 튀기면서 지옥, 죄, 벌에 대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설교하셨다는 게 아닙니까! 덕택에 평화롭던 순하디 순한 시골의 착한 교인들은 모두 무서워 벌벌 떨면서 집에 갈 때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음미하고 즐길 여유도 없이, 시름에 젖어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 p.183
...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예배의 감격과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다시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 그때 그렇게도 교회를 사랑했구나, 그렇게도 교회 가는 것을 좋아했구나, 엎어지고 쓰러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붙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구나...
지금 나의 마음은 슬프다. 이제 다시는 ‘행복했던 교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최고이고 교회에서 충성을 해야만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이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바로 교회에 죽자고 나와서 시간 바치고 물질 바치고 그야말로 영끌하여 하나님 섬기는 것이라고 아무리 설교해도 이제 아멘으로 화답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교회가 펄펄 살아있고 믿음도 펄펄 살아있고 교인들도 펄펄 살아있던 시절의 역사기록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또 한편 생각한다. 왜 교회에서는 그토록 많은 날을 교회에 나오라고 했을까. 나는 왜 그동안 ‘삶이 곧 예배’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나. 교회의 프로그램은 교인들을 위하여 있는 게 맞나? 교인들의 개인적인 삶은 완전 무시하고 그렇게까지 교회로 불러들이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맞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를 교회에 충성 봉사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준 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진정한 뜻인가?
지금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교회 안에만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땐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부리는 교회에는 절대 계실 리가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아직도 교회 다니니?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어느 땐 목사님들께 묻고 싶다. 정말 하나님 믿으세요?
어느 땐 목사님들께 전도하고 싶다. 제발 예수님 좀 믿으세요.
교회에 분란이 있을 때 목사님만 예수님 편에 서면 상처 없이 해결되는 일(물론 해결되지 않았다) 들을 몇 번 겪다 보니 내 영혼도 빈들에 마른 풀처럼 시들어져 가는 모양이다. 믿음 보충제는 교회밖에도 많다. 책도 있고 강의도 있고 신실한 교제도 있고 유튜브도 넘쳐난다. 나는 용두동교회 교인이기도 하지만, 독일에 계신 신학자가 만든 온라인 교회 교인이기도 하며 주일에는 서너 교회의 예배를 찾아서 함께 한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나? 가 아니라 교회 안에도 구원이 있나? 로, 교회 밖에도 하나님이 계시는데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건가?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 라는 책도 있으니.
그래도 나는 교회 간다. 이전처럼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두 번 세 번 교회를 가지 않지만.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도 않지만 교회를 떠날 생각은 없다. 여전히 제기역 1번 출구는 나에게 감격을 준다. 그 계단을 오르면 내가 행복했던 시간이 오롯이 떠오른다. 교회의 붉은 벽돌 예배당 앞에 서면 여전히 미소가 지어진다. 반가운 분들과 허그도 하고 손도 잡고 인사를 나누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그분들은 늘 그 자리에 계시다. 그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에 감복한다.
이 책 속의 어느 해 7월은 실패했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교회에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를 오가느라 남편과 아들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가슴 아프다. 내가 교회 가느라 비어있는 집에서 가족들이 견디었을 그 쓸쓸함을 어떻게 내가 보상하여야 할까. 신앙생활에 지혜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진짜 거두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잘 보살펴주어야 할 가족에게 그때의 나를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미안하고 말하고 싶다.
언제인가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니 어느 목사님이 이렇게 위로했다.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니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실 것이고 그리고 가족들도 그 마음은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녔으니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겁니다.”
그 위로가 죄책감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때 내가 교회에 쏟았던 사랑을 지금은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쏟고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꼭 붙잡고.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나의 남편이다. 교회에 갔던 수많은 시간, 나를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할게요.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