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다 먹은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려는 엄마.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도 한사코 자신이 하겠다는 엄마. 결혼하면 누가 하지 말래도 평생 궂은일 다 하고 살 거니까 벌써부터 하지 말라는 엄마. 자신은 그리 살았어도 내 딸만큼은 그렇게 안 살게 하겠다는 엄마.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엄마도 엄마를 좀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중에서
엄마는 내가 울며 전화한 그날, 밤새 한숨도 잠을 못 잤다고 했다. 힘들다, 아프다 말할 줄 모르는 딸이 오죽하면 그 야밤에 엄마에게 전화를 다 걸었을까 싶어서. 누구한테라도 전화해서 마음 한 톨 털어놓을 데가 없었으면 그 새벽에 엄마한테 전화를 다 했을까 싶어서. 그런 딸이 안쓰러워서. 곁에서 눈물 닦아주고 편들어주지 못해서. 무슨 일인지 속속들이 다 알아주지 못해서.
--- 「상처가 꽃이 되는 시간」 중에서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의 삶이 어땠는지 그 시대에 엄마는 어떤 소녀였는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그리며 그 청춘들을 보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엄마가 여자가 아닌, 나와 똑같은 어떤 인격체가 아닌, 그저 나의 엄마로만 인식했던 건 아닐까. 엄마도 여자라는 걸, 사람이라는 걸, 슬프고 아프고 기쁘고 행복한 걸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내가 느끼는 걸 엄마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 「눈이 부시게, 활짝」 중에서
엄마는 항상 뒤에서 울고 있었다. 아픈 딸을 내내 그렇게 가슴 치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 말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매일 하염없이 가슴을 움켜쥐고 울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딸과 통화할 때면 짐짓 괜찮은 척, 딸이 더 괴로울까봐, 눈치 볼까 싶어 더 억세게 굴었다. 딸은 모른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조금 전해들은 말로 작게 짐작만 할 뿐, 딸인 내가 모르는 엄마만의 속사정은 그런 것이었다.
--- 「그 엄마의 속사정」 중에서
엄마는 언젠가부터 가까운 글씨를 멀찍이 보며 침침한 눈을 연신 부비기도 하고 농사일이 고된 날엔 코골이도 하고 가끔씩 음식에 짠맛이 강해지기도 한다. 침침한 눈으로 글씨가 흐릿할 땐 옆에서 글자를 읽어줄 딸이, 코골이를 하는 밤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며 이불을 덮어줄 딸이, 음식의 간을 잘 모를 땐 옆에서 음식 맛을 보며 간을 맞춰줄 딸이, 엄마에겐 점점 더 필요해질지 모르겠다. 그럴 때, 엄마가 나를 찾을 때, 엄마의 마음이 풍성해질 수 있는. 나는 엄마에게 그런 딸이고 싶다.
--- 「오직 딸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중에서
『오늘도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사랑하기에 자꾸 화가 난다. 걱정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만 폭발적인 짜증이나 귀찮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엄마가 내 편이라 여기는 당연함과 안일함 때문에 함부로 하게 된다.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지금의 나이쯤이면 엄마에게 더 살뜰한 딸이 돼 있을 줄 알았던 나는, 반대로 화가 많아진 딸이 되어 있다. 내가 화가 많아지는 이유. 엄마의 지난하고 고단한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기에. 해가 지날수록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모습이 가슴 절절한 날도 있기에. 그런 엄마의 시간들을 갉아먹는 내 모습이 보여서. 엄마가 이제는 조금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엄마를 사랑하기에.
--- 「프롤로그」 중에서
언젠가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들은 왜 자식 자랑을 누구한테 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거냐고. 그런 거 좀 안 하면 안 되는 거냐고. 엄마가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도 이 나이쯤 돼보면 알 거라고. 지금 세대 엄마들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거 저런 거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다닐 것도 많고 그렇겠지만, 그래서 자식의 인생보다 자신의 삶을 다듬고 꾸릴 시간도 많아 온통 제 인생 이야기할 게 많겠지만, 나 같은 세대 엄마들은 아니라고. 자랑 한 푼어치 할 것 없는 인생에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이런 것도 없으면 무슨 낙에 이 긴긴 세월을 버티며 살겠냐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 「반짝반짝 언제나 사랑받는 딸이길」 중에서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를 걸어온다. 그게 어떤 날은 귀찮기도 하고, 바쁜 날에는 신경이 거슬리고, 한창 흐름을 타고 글을 쓰는 타이밍에는 여간 방해가 되는 게 아니다. (…) 그러다 알게 됐다. 어쩌면 엄마도 관종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딸한테 사랑받고 싶고, 주변의 여느 모녀가 까르르 웃으며 지나는 모습에 내 딸이 떠올라서 무심코 아무 용건 없이 전화를 건 걸지도 모른다고. 나한테도 딸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내가 엄마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 「관종이고 싶다」 중에서
엄마가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식들이 엄마의 마음을, 부모의 마음을 1원어치도 모를 거라는 생각. 자식들이 엄마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다만 부모와 나의 삶이 다르고, 엄마와 나의 생각이 다르고,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 엄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고 한 몸에서 서로의 심장을 느끼며 지냈던 시간(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도 있지만, 엄연히 다른 인격을 가진 피조물이라는 것. 이것을 조금은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만큼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응원 할 수 있는 존재도 없기에, 내 엄마니까 좀 인정받고 싶은 그런 마음.
--- 「잔소리와 사랑의 상관관계」 중에서
어릴 땐 그저 엄마 속 안 썩이고 사고 치지 않으면, 그게 엄마를 사랑하는 건 줄 알았다. 대학을 다닐 무렵에는 어렵다, 힘들다 소리 안 하고 묵묵하게, 성인답게 내 할 일 똑 부러지게 하면 엄마를 사랑하는 건 줄 알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때마다 용돈 잘 챙기고 각종 기념일을 잘 기억하면 엄마를 사랑하는 건 줄 알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렇다. 마음이 아닌, 나의 그 어떤 ‘행위’들로 엄마의 마음을 채우려 한다는 걸.
--- 「사랑할 줄을 몰라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