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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12g | 140*210*16mm
ISBN13 9791196837662
ISBN10 11968376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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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하니까 지난달 폰차트레인 호수*에 나가서 본 영화가 생각난다. 린다와 나는 새 교외에 있는 극장에 다녀왔다. 성장이 멈춘 교외 벌판에 회칠을 한 분홍색 각설탕 같은 모습의 극장이 덩그러니 서 있다니 누군가 오판을 한 게 틀림없었다. 강풍이 파도로 방조제를 후려쳤다. 실내에서도 그 난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는 사고로 기억을 잃는 바람에 모든 걸 잃은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가족, 친구, 돈. 그는 자기가 낯선 도시의 이방인임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그는 새 출발을 해야 했고 새로 살 곳을 마련해야 했고 새 직업, 새 여자 친구를 구해야 했다. 그 모든 상실, 영화는 비극이어야 마땅했고 그는 대단한 고통을 겪을 듯했다. 하지만 웬걸, 일은 그리 나쁘게 풀리지 않았다.
--- p.16

린다는 불행히도 잠자코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행복해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불행해했다─우리가 차도 없이 웬 벽지의 동네 극장에 와 있다는 이유로.(나는 차가 있어도 버스나 노면전차를 타는 게 더 좋다.)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시내로 차를 몰고 가 루스벨트 호텔의 블루 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드는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가끔씩 그 일을 한다. 그럴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럴 때면 린다는 지금의 나처럼 기가 산다. 눈은 초롱초롱, 입술은 촉촉, 그러고 둘이서 춤을 추면 그녀는 제 매끈하고 긴 다리를 내 다리에 문지른다. 이럴 때 그녀는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꼭 블루 룸에 대한 보답은 아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건 벽지의 극장이 아니라 이 낭만적인 곳에 와 기가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지난 일이다. 린다와 나는 깨진 사이다. 내겐 섀런 킨케이드라는 이름의 새 비서가 생겼다.
--- p.17~18

물론 나야 이 끝내주는 여자들, 그러니까 내 비서들을 헌신짝 버리듯 잇따라 정복하고 버려왔다고 떠벌리고 싶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그건 연애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관계들은 마샤 혹은 린다(섀런은 아직이다)와 내가 걸프 해안에 나가 거닐고, 쉽섬의 인적 없는 만에 누워 껴안고, 그러고는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세상이 이런 행운을 용납할까 의심하는 순수하고 부주의한 황홀감으로, 즉 누가 뭐래도 연애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샤의 경우든 린다의 경우든 연애는 우리의 관계가 머잖아 절정에 다다른다 싶으면 여지없이 끝나버렸다. 사무실 공기는 소리 없는 비난으로 무거워지곤 했다. 천 가지 속뜻을 담지 않고는 말 한 마디 또는 눈길 한 번 나누기가 불가능했다. 밤새도록 전화 통화도 있었는데, 내가 할 말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잔숨과 한숨 소리만 들려오는 긴 침묵이 주를 이룬 통화였다. 이런 긴 침묵의 통화는 사랑이 끝났다는 확실한 징후다. 암, 그건 정복이 아니었다. 결국엔 나의 린다들과 내가 서로 넌더리가 나서 작별이 즐거울 정도였으니까.
--- p.21

줄스 고모부는 세상천지에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승리를 거머쥔 사내들 중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막대한 돈을 벌었고 수많은 친구를 두었고 마디그라에서 렉스 팀이었고 몸으로든 돈으로든 헌신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 모범적인 천주교 신자라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수고를 들이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가 사는 세상, 인간의 도시가 저리 즐거우니 하느님의 도시에는 분명 그를 위해 준비된 게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해 그의 세상을 뚜렷이 보고 그가 왜 그 세상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왜 그 상태로 지키려 하는지 본다. 그의 세상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백인들과 낙천적인 흑인들이 분별력 있이 서로에게 상냥하게 굴고 구세계의 매력과 신세계의 사업 수단이 공존하는 너그럽고 다정한 곳이다. 누군가 툴레인과 LSU의 지난해 경기를 들먹이지 않는 한 그의 얼굴엔 어떤 그늘도 드리우지 않는다.
--- p.47~48

가끔 어머니가 하느님을 언급할 때면 그녀가 하느님을 엉터리없는 인간 세상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써먹을 수 있는, 여느 회사 직원처럼 필요에 따라 부릴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로만 여긴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말하자면 인생에서 오는 충격을 똘똘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선과 악 모두가 전반적으로 과소평가되었음을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했던 초기에 강요당한 타협이다. 그녀는 악의 반대편에 매여 있는 것만큼이나 행운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인데 가끔 그녀의 눈에선 그것, 그 과격한 불신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하다. 경험 많고 박식한 눈빛, 이브만큼이나 오래되어 다 안다는 듯한. 가장 아끼던 듀발을 잃은 경험으로 그녀는 평범한 것을 더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 p.182

외가 사람들은 내가 신앙을 잃었다고 생각해 그걸 되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그들이 무슨 소릴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내가 책에서 본바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는 독실하다가 크면 회의적이 된다.(또는 〈내가 믿는 이것〉에 나온 말대로 된다. “때가 되니 기성종교의 신조와 교리가 몸에 안 맞더군요.”) 나는 다르다. 내 불신은 처음부터 확고했다. 나는 하느님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잘은 모르지만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들이 참일지언정 다를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느님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더라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나는 하느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 장막이 쳐지는 느낌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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