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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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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598g | 153*224*20mm
ISBN13 9791170320883
ISBN10 117032088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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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복해 말하며 맞은편에 있는 창문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 행위만으로도 여자에게 닥친 재앙이 내게 옮겨 붙는 기분이었다. 하얀 레이스 커튼 너머로 검고 긴 윤곽이 어른거렸다. 여자도 나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맨손으로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손끝이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설프게 뭉친 눈덩이를 맞은편 집을 향해 던졌다. 눈덩이는 창에 가닿지 못하고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뭉친 눈을 들고 난간 앞에 섰다. 이번에는 몸을 뒤로 재껴 힘껏 팔을 휘둘렀다. 주먹만 한 눈덩이가 창 가운데를 퉁 때리고 맥없이 부서졌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어둠에 잠겨 있던 창문이 노랗게 불을 밝혔다. 더럭 겁이 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빨랫줄 옆에 있는 물탱크 뒤로 몸을 숨겼다. 하얀 레이스 커튼이 걷히고 여자가 창문 앞에 섰다. 밤이라 그쪽에서는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창에 남은 눈 자국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우물 같은 눈으로, 그리다 만 동그라미 같은 눈 자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팔을 들어 눈 자국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천천히 포개었다. 그렇게 손을 대고 한참을 서 있었다. --- 「직사각형의 찬미」 중에서

장인은 오래전 민아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을까. 만약 민아가 곁에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어디선가 민아의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장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누군가 까만 밤하늘 어딘가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곳은 여기보다 별이 더 많다고 그랬던가. 문득 다르하드에 가보고 싶다던 민아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곳엔 산과 초원, 호수와 강, 심지어 바위와 작은 풀에도 신이 깃들어 있고, 그곳 사람들은 누구든 영적 기운을 지녀 무엇과도 교감할 수 있다는데.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난 그곳이 막연히 환상의 세계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뜻밖에도 그곳은 러시아 국경에 인접해 있는 몽골 홉스굴 인근의 초원 지대였다. 양들이 새끼를 낳는 봄이 오면 유목민들의 일손은 쉴 틈이 없다. 양이나 염소들에게 풀을 먹어야 하며, 길 잃은 새끼의 어미도 찾아줘야 한다.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는 그 사람들은 좀체 길을 헤매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아의 얘기가 조금은 낭만적으로 들렸다. --- 「춘천 사람들은 파인애플을 좋아해」 중에서

흰 것들을 볼 때마다 은빈이가 생각난다. 은빈이의 얼굴, 손, 교복 깃. 모든 면에서 너무 단정해서 의아했던 첫인상 때문에 ‘왕과 거지’라는 드라마도 함께 떠오른다. 거지 역을 맡은 배우의 치아 때문에 내내 몰입하지 못한 드라마였다. 얼룩 한 점 없이 하얗게 래미네이트를 한 치아가 빛나서 조금도 연민을 느낄 수 없었던 기억 위로 은빈이의 얼굴이 겹쳐진다.
선생님은, 내가 누군지 보여요? 은빈이의 목소리가 문득 바람에 섞여 지나간다. 그 순간과 공간으로 나는 속절없이 불려 들어간다. 은빈이가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는 제스처 안에서, 관찰되는 것을 아는 나를 알고 있는 은빈이와, 그것 또한 파악하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포함한 나를 아는 은빈이와, 나와, 은빈이의 겹겹이 관찰하고 관찰 당하는 세계를 그저 응시하는 내가 보인다.
흰 턱을 괴고 은빈이가 다시 묻는다. --- 「귀를 찾아서」 중에서

그 이후부터 그가 내 집에 자주 들렀다. 이번에는 차 마시고 가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고 라면 먹고 가라는 말도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차를 마시거나 라면을 같이 먹고 나서 그는 꼭 내 집 정리 정돈을 해줬다. 그는 마법을 부리듯,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새집, 새 공간처럼 깨끗하게 변해갔다. 그가 쓰는 청소도구는 항균 물티슈, 물걸레포, 쓱싹, 싹싹 등의 단어가 붙어있는 제품으로 늘 휴대하고 다녔고 필요에 따라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꼭 청소한다는 것이다. 왜 하냐고 물었더니 이 세상에는 온갖 집들이 방식이 있겠지만, 언젠가 돈이 없어서 청소해주고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고 너무나도 표정이 밝고 행복해해서 그때의 쾌감을 느끼며 청소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만약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떨어졌다면 청소업체를 차렸을 거라고. 계속하다 보니 곰팡이 제거는 물론이고 진득이 박멸, 냉장고 냄새 제거는 물론, 욕실의 막힌 배수구를 시원하게 뚫는 등, 가사의 달인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마지막에 작고 나지막한 소리로 이 말을 덧붙였다. 이건 비밀인데, 언젠가 저랑 결혼할 여자가 집안일로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려고 계속 연마 중이에요. --- 「조금은 귀여운」 중에서

유난히 춥다. 여자는 패딩모자 끈을 조이고 옷깃을 여며보지만 몸에 스미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떤다. 그럴 때마다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여자는 추위와 기침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사람들을 둘러본다. 지하철 출구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와 물결처럼 어디론가 흘러간다. 그들 중에 여자처럼 나이 든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젊고 어린 사람들이 추위나 바람 따위 아랑곳없이 여자를 스치거나 밀치고 지나간다. 여자는 점점 보도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피켓이 언 깃발처럼 흔들린다. 여자는 사람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틴다. 발바닥 가운데가 찌릿하면서 당기고 아프다. 통증은 발뒤꿈치에서부터 정강이를 칼로 긋는 것처럼 위로 올라온다. 처음에는 가끔씩 신호가 오던 것이 요즘은 지하철에 서있을 때도 자주 아파서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병원에선 족저근막염이라는 어려운 병명을 대며, 가급적 많이 서있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여자에게는 하나마나한 처방이다. 게다가 오늘은 온몸을 두드려대는 것처럼 아프고 기침까지 심하다. 자꾸 오한이 나는 건 열이 심하다는 표시다.
--- 「피켓이 된 여자」 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문학의 기능과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변화하는 사회 환경 탓만이 아니다. 창작활동을 하는 우리 문학인들의 책임 역시 크다는 점을 자성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은 극복하는 것이지 피해 가는 게 아니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우수한 작품은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게 한다. ‘신예작가 포럼’과 ‘신예작가 작품집’ 발행을 이와 같은 목적에서 시행하고 있다.
‘2022 신예작가’에 20명의 소설가가 선정되어 훌륭한 작품을 선보인다. 선정된 소설가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를 견인차로 더 활발한 활동을 하여 한국 소설문학을 빛내주기를 희망하며, 아울러 소설을 존중하고 소설가를 존경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꽃피우는 데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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