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가을 아침. 햇살이 잔잔히 퍼지는 마당가 긴 빨랫줄에 각양각색의 빨래들이 널려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빨래가 뽀송하게 말라갔다. 그 때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저 빨래들처럼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며 사는구나. 잘났든 못났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나이가 젊든 늙었든 간에.
꼼짝없이 붙잡힌 허수아비 같은 인생살이. 저 젖은 빨래도 한때는 멋진 양복으로, 깨끗한 속옷으로 제각각의 역할이 있었을 텐데. 하지만 부대끼고 쥐어 짜이는 세월을 견디노라면, 빨래들에게선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비가 그치면 해가 나고, 힘겨운 시간이 가고 나면 밝은 날이 오듯, 햇살을 받으며 빨래는 서서히 그 모습을 회복해 간다. 더러움도 깨끗이 사라지고 보송보송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떤 것은 좀 더 넉넉해지고, 또 어떤 것은 빛깔이 바랜 채로. 이윽고 수렁 같은 축축함은 사라지고 상큼한 비누 향을 품은 채 제자리를 찾아간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11:11-13)
1978년 이 말씀을 크게 써서 벽에 붙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했다. (중략) 돌아보니 나의 환경은 궁핍했어도 기도는 늘 풍성했다. 가난하여 비천에 처하기도 했으나 기도로 이루지 못 할 건 없었다. 기도는 어떠한 형편에 놓여있든 제자리에서 자생력을 키워가게 했다.
누군가 나에게 물질복은 없는데 일복은 많다고 했다. 기도가 나의 일이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실제로 내 삶의 모든 필요는 기도로 채워졌다. 기도한다고 힘들고 속상한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바로바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큰 환란과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는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준다.
---「2장. 부르심과 연단」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성전이 채워져 갔다. 성도는 늘었지만 개척교회의 형편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기도 사역을 나가면 개척교회의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들이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었다.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사양하지 않고 받다보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위해 구두를 벗어 들고 맨발로 걸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눌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을 몰랐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 ‘한우물교회 사모는 장사하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매일 밤 보따리를 이고, 들고, 옆구리에 끼고 귀가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엔 지나가던 사람이 성전 창문에 돌을 던져서 깨고, 술 취한 사람이 성전 문짝을 발로 차며 목사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한 남자는 주일마다 인사불성이 될 만큼 술을 마신 채로 나타나서 강단 앞쪽에 앉아 “슈퍼스타 그리스도!”라고 외쳐대며 예배를 방해했다. 그는 목사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술값 좀 달라고 떼를 썼다.
막무가내로 교회로 뛰어 들어와 자신들의 울분과 설움을 토해내는 달동네 사람들. 처음에는 무섭고 이해되지 않던 그들의 모습이 차츰 품어지면서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그들의 모습은 우리부부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했다. 인생이 꼬이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마음이 점점 강퍅해진 사람들.
이제 더는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어떤 이는 소주, 어떤 이는 맥주, 어떤 이는 막걸리로 뜻을 맞춰주며 내가 먼저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누님, 사모님, 혹은 아주머니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술이 깨고 난 다음에 말을 건네 보면, 고개를 들지 못하며 미안해했다. 거친 세파를 헤쳐 오면서 마음속에 슬픔과 울화가 쌓인 그들은 수줍음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람들이었다.
---「3장. 교회 개척」중에서
어느 날 집사님이 “목욕탕에 가니까 다른 교회 사모님들은 때도 밀고, 우유로 전신 마사지를 하더라.”고 부러운 듯 말했다. 용량이 큰 팩 우유를 사서 그 집사가 보는 앞에서 세수를 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하며 웃어넘겼다. 그 후로도 가끔 성도들은 나를 다른 사모들과 비교해서 말할 때가 있었다. “작은 교회 사모님들도 메이커 옷을 입고 구두와 가방으로 치장을 하고 다니는데, 우리 사모님은 전부 길 거리표 아니면 시장표 뿐이다.”라며 속상해했다. 그때마다 나는 “메이커 제품이 왜 필요해? 내가 명품이잖아.”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사모니까 성도들 앞에서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도빨, 영빨, 하나님 끝빨이면 된다.’며 센 척하며 살았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조차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속내를 감추고 센 척하는’ 모습이 오히려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땐 알지 못했다.
---「4장. 사모는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중에서
남편을 보며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이와 펜을 주고 할 말이 있으면 쓰라고 했다. 심한 통증 속에서도 남편은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호남권을 성령의 불로 일으키기 전에는 가지 않겠다.”
만감이 교차했다. 수술실로 향하기 전 노회 목사님들과 형제들, 지인들이 모두 몰려와 간절히 눈물 어린 기도를 모아 주었다. 수술은 거의 5시간 동안 진행됐다. (중략) 남편은 수술 후 상태가 심각해서 중환자실 내 무균실로 이동했다. 일반인의 백혈구 정상수치가 3,500~8,000인데, 수술 후 백혈구 수치가 130으로 떨어졌고, 현재는 70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주치의는 내일 아침까지 O형 혈액을 가진 사람을 최대한 많이 채혈실로 보내 달라고 했다.
CBS, 목포 극동방송 등 방송과 인터넷에 글을 띄우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분들께 상황을 알렸다. 그때 우리 교회 학생들과 청년들은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연대 앞 신촌사거리에서 헌혈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른 아침 방송을 듣고 등굣길과 출근길에 모인 학생과 직장인들이 100명이 넘었다. 채혈실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병 원 관계자들이 크게 놀랐다고 한다. 계속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고마운 분들이 줄을 이었다. 신체검사 및 피검사 결과를 통해 아들 친구가 1순위로 결정되었다. 수혈 후 남편의 백혈구 수치는 70, 500, 1,000으로 점차 상승했다. 의사는 거듭 기적이라고 했다.
---「5장. 기도원 설립」중에서
남편을 보내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다. 기도원 성전에 들어갔다.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강단 위로 뛰어 올라가 미친 듯이 소리치며 하나님께 삿대질을 해댔다. “하나님, 미친 거 아녜요? 아니 하나님 미쳤어요!”
이렇게 앙칼지게 하나님을 비난하면서 울다가 지쳐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하나님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기도원의 강단 옆문을 열면 남편이 누워 있는 산자락이 보였다. 문을 열어 놓고 넓은 강단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통곡했다. “당신은 지금 미쳐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거야? 하나님은 나를 버렸어.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사람들도 무서워. 당신 있는 곳으로 나 좀 데려가 줘.” 좀체 시원해지지 않는 가슴을 뜯으며 나는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대들었다. (중략)
그때 음성이 들렸다. “그래 나 미쳤다. 어쩔래! 너 같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으니,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 순간 내 몸은 떨고 있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성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때 말씀이 다시 들렸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니라 (호 6:11)’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했다. 타들어 가는 내 눈물 속에 하나님이 있는 것 같았다.
---「6장. 암흑 속에 갇힌 세월」중에서
먹먹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많은 가지가 뻗어 있는 큰 아름드리나무였다. 나무껍질이 유독 눈에 띄었다. 울퉁불퉁 거칠고 갈라진 모양새가 볼품없어 보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한우물교회 성도들과 샘솟는기도원을 통해 만난 많은 성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마음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모진 세월 속에 네가 생명을 품고 길러낸 영혼들이다. 이제 그들이 성장했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되었다. 나무껍질이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나무를 지켜내는 생명싸개가 되었듯이, 볼품없다고 한숨 짓던 거울 속의 네 모습은 영혼들의 생명싸개가 되어 수고한 세월의 흔적이다.”
모두에게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사역의 길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셨다. 볼품없는 나의 육신조차 영혼의 생명싸개라 이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했다.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는구나!’
지나온 삶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하나님 앞에 가기 전까지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 갈렙은 85세에도 약속한 헤브론 땅을 달라고 했다. 내 나이 아직 갈렙 나이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니, 사역에 또다시 도전할 마음이 생겼다. 나에게 남은 날도 성령 충만한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7장.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중에서